기자 탐구생활/'10~16 국립중앙박물관

새롭게 선보이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과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예실

꼬양 2016. 8. 1. 13:03




새롭게 선보이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과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예실





국립중앙박물관은 6월 27일 서화관 서예실의 작품들을 전면 교체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의 작품세계를 조명했는데요.


김정희의 대표작 '묵란도' 글씨를 중심으로 편지, 인장 등

다채로운 작품 24건 31점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2층 서화관 서예실은 다른 전시실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편이랍니다~


서예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추사 김정희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기에

꼭 한번 관람해보길 권하는 바입니다.


상설전시관 2층 서화관 서예실로 떠나볼까요? 




서예실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죠?


▲서예실


조용한 서예실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추사 김정희의 작품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글씨,

다 똑같아보이는 글씨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고, 차이점이 있답니다.

서체의 종류를 잠깐 살펴봅니다.


▲왼쪽 : 김정희가 쓴 칠언시, 19세기 / 오른쪽 : 김정희가 쓴 칠언시, 19세기


좌,우 모두 김정희가 쓴 칠언시입니다.


왼쪽 칠언시를 먼저 살펴보면 골기가 드러나고 바짝 마른 모양새가 특징적인 추사 서풍을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추사의 젊은 시절 옹방강을 비롯한 청대 인물과의 교류를 통해

심화되고 발전된 그의 글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악의 장엄한 기상과 황하의 물결에서 글씨 쓰는 법을 찾는다'라는 시입니다.



오른쪽 칠언시는 붉은색 바탕에 금박이 있는 냉금지 위에 힘있고 빠른 필치로 써내려간 행서입니다.

'문장을 경건히 지어야 영험한 복이 생긴다'라는 시입니다.


이 두 칠언시 모두 대련으로 쓰여졌지만

현재 다른 폭은 함께 전하지 않습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탑본 / 김정희, 조선 1816년


국사책에서 정말 많이 봤던 진흥왕 순수비 탑본입니다.

김정희는 청나라 수도인 북경으로 사행을 다녀온 뒤 청나라 서론을 바탕으로

역대 글씨를 연구하는데 힘썼습니다.


신라 진흥왕순수비의 발견과 고증학은 그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순수비는 도선국사비 혹은 무학대사비로 알려져있는데,

김정희에 의해 순수비로 확인되고 이를 확인한 내용을 비석 좌측에 새겨놓았습니다.



▲김정희가 며느리에게 쓴 편지, 조선 1844년 3월 6일


김정희의 부인인 예안 이씨는 1842년에 세상을 떴고,

양자로 들어온 김상무의 생모도 그로부터 일년이 안되어 죽음을 맞았습니다. 


김정희 자신도 양자였고, 그의 아들 또한 양자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손자가 요절하고 그 이후에 아기가 태어났으니 얼마나 기쁠까요.

이 편지에는 그 기쁨을 형언할 수 없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김정희가 부인에게 쓴 편지, 조선 1842년 4월 9일


동생 김명희의 무남독녀가 35세에 요절했음을 알고

아우가 이에 상심할 것을 염려한 편지입니다.


동생의 건강을 염려해 약은 먹고 있는지 식사는 하는지를 걱정하는 편지인데요

이를 통해 두터운 우애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부인에게 며느리 교육에 힘쓸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김정희가 부인과 며느리에게 보낸 한글편지를 통해

강건하고 거침없는 필력, 활달하고 자유로운 운필,

치밀한 공간구성 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김정희 특유의 글씨 세계를 보여준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희가 자인현감에게 보내는 편지, 조선 1827


1827년 김정희 42세에 자인현감에게 보내는 초서체의 편지입니다.

자인현은 현재 경북 경산시 자인면입니다.


편지 끝에는 '김승지 올림'이라고 적었는데

김정희는 1827년 8월 19일 승정원 정3품직의 공조를 담당하는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습니다.


김정희의 40대 글씨는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그의 40대 초서풍을 보여주는 편지글로 의미가 있습니다.



▲주학년을 위해 쓴 행서 대련, 조선 19세기


김정희는 청나라의 학계 및 예술계의 문인들과 교류하였는데,

그 가운데 청대의 화가인 주학년(1760~1834)과도 교류가 깊었습니다.


주학년은 김정희가 연경을 떠나기전에 그의 부탁을 받고

조선 북학파의 한 사람인 유득공이 쓴 시를 빌어 '고목한아도'를 그려주었다고 합니다.


조선으로 돌아온 김정희는 그 내용을 행서 대련으로 만들어 주학년에게 보냈습니다.

진한 먹의 쓰임과 힘이 넘치는 이 글씨는 추사풍의 글씨 특징이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옹방강의 서론, 옹방강, 청 19세기



서화실을 둘러보다가 특이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바로 김정희의 스승인 옹방강이 쓴 행서였습니다.


청 건륭 4대가 중 한 사람인 옹방강의 글씨는 옛 것을 본받는데 충실했습니다.

부드럽고 중후함이 느껴지는 행서풍의 글씨인데요.


글의 내용은 옹방강이 당 글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것으로

'진의 글씨로 가기 위해서는 당으로 가는 것이 지름길이다.'라고 하여

당나라의 글씨를 중시했습니다.





▲묵란, 조선 19세기


김정희의 대표작인 묵란도입니다.


난초에 대한 시각적 재현이기보다는

글씨의 필묵과 운용이 만들어낸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씨가 그림보다 더 비중을 차지하기에 특이하죠.


'불이선란'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은

화제에서 난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와 방식,

그림의 주인이 바뀌게 된 사연을 알 수 있고,

더불어 김정희의 뛰어난 학문과 예술, 인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김정희 서첩 완당첩, 조선 19세기



홍우철의 부탁을 받고 김정희가 쓴 글씨 모음집, 완당첩을 사진에 담아봤습니다.

난정서 등의 글이 이 완당첩에 실려있는데요.


홍우철은 정조의 사위였던 영명위 홍현주의 아들입니다.


첫머리에는 '완당선생소조'라는 김정희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이 상은 허련이 판각한 탑본첩에 수록된 모습을 그린 것으로 우창생의 발문이 있습니다.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와도 인연이 깊죠.

유배를 와서 제주의 유생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고 많은 서화를 남겼습니다.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했고,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 전하기도 했습니다.


서귀포 대정읍에 위치한 김정희유배지는 오래전부터 종종 갔었던 곳이기에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더 의미있었습니다.


김정희의 학문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던 한글전시는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서예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김정희의 작품세계에 빠져보는 시간은 어떨까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한 휴가를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



새롭게 선보이는 추사 김정희의 작품

- 장소 : 상설전시관 2층 서화관 서예실

- 전시 내용 : 김정희 필 '묵란도'등 24건 31점 전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