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전주하면 한옥마을이 바로 생각나지만,
다른 곳도 들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주의 역사, 전주의 예술, 문화를 한 눈에 다 살펴볼 수 있는 이곳은
국립전주박물관입니다.
1990년에 개관한 이래 전라북도의 문화유산을 수집, 보존하고
연구, 전시, 교육하는 일을 해오고 있는데요.
특히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전시를 통해
전라북도의 역사와 문화를 심도있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
1997년에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석전 선생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개최했었습니다.
이후 아드님인 유당 황병근 선생이 석전 선생의 유작과 유품,
그리고 본인이 수집한 문화재를 5천 점 넘게 기증한 것을
기념하여 1999년에 '황병근 기증유물특별전'을 열었는데요.
이번에 국립전주박물관에 가면 특별한 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석전 선생의 흉상과 '황병근 선생 기증유물특별전Ⅱ'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박물관 1층에 마련된 기획전시실
▲기획전시실 입구
전시품은 석전 선생의 서예작품을 중심으로 서맥을 잇고 있는
손자 성재 황방연의 글씨,
황병근 선생이 수집한 유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전북의 서예사는 아마 이분들이 주가 되지 않나 싶어요.
전시를 보기전엔 석전의 생애부터 살펴보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석전 황욱(1898~1993)은 한국의 근현대기 격동의 시절을 보내며
그 시대만큼이나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분이었습니다.
노년의 신체적 한계를 굳은 의지로 극복하고
자기만의 새로운 경지를 이룬 서예가였습니다.
한국 전쟁과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두 아들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고,
가세는 기울었습니다.
아픔을 지필묵과 시조, 가야금으로 달래야만 했는데요.
환갑 이후에는 수전증이 찾아와 손바닥으로 붓을 쥐고 글씨를 쓰는 악필로 전환,
87세 이후에는 수전증이 샘해 오른손 악필마저 어렵게 되자
왼손으로 바꾸어 이를 극복합니다.
▲정관, 1977년
석전의 서예작품을 살펴봅니다.
사실 국립전주박물관에 오기전까지는
석전 황욱 선생의 서예 작품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별전을 관람하면서 새로운 분야에 눈이 트인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말과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앞서 설명했듯이 석전 황욱은 손바닥으로 붓을 잡는 악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손이 떨리는 수전증을 극복하고 글씨를 쓰기위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악필로 전환합니다.
악필과 함께 하나의 필획을 쓸 때 세 번을 꺾는 듯이 쓰는
삼과절법을 폭넓게 활용하는데요.
이 두 가지 필법을 함께 적용해
마치 바위나 쇠와 같이 굳센 기운인 금석기가 돋보이는 서예가 되었습니다.
'고요히 있는 그대로를 본다'라는 뜻의 정관.
송나라 정호는 '추일우성'이라는 시에서
'만물을 고요히 있는 그대로 보면 스스도 얻음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한벽진구천세기, 1981년
'한나라 옥과 진나라 옥은 대대로 아름다운 기물'이라는 뜻입니다.
'봄날에 부는 바람과 아름다운 달은 사계절 봄이네'
라는 구절과 함께 많이 쓰였습니다.
작품의 끝에 '석전노인'이라고 썼습니다.
▲칠언시, 1979년
송나라 악비(1103~1142)의 시입니다.
작품의 끝에 '태평노인 석전'이라 썼습니다.
'술 마시고 책 읽기 40년, 오마소 위에 푸른 하늘이라.
남아가 태어나 능연각에 오르려 하니,
공명을 제일로 삼고 돈을 가까이 하지 않네.'
▲상국설송, 1984년
분청항아리에 '상국설송'이라 썼는데,
'서리를 맞고 꿋꿋이 핀 국화와 눈을 맞고도 의연히 푸른 소나무'를 뜻합니다.
분청항아리는 박부원이 1984년에 제작한 것으로,
바닥에 '지당'이라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전시실의 작품들
▲상단 - 강구연월, 1987년 / 하단 - 망중한, 1985년
'번화한 거리와 달빛이 연무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으로 태평 세월을 뜻합니다.
작품의 끝에 '석전모옹'이라 썼습니다.
'바쁜 가운데 얻은 한가한 여유'를 뜻하는 망중한.
두인으로 찍은 '종오소호'는 '내가 좋은 대로 따른다'라는
논어 '술이'의 글귀입니다.
작품의 끝에는 '석전미수'라고 썼습니다.
▲황방연이 쓴 사무사, 2016년
성재 황방연이 쓴 글씨입니다.
'마음에 조금도 사특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황방연 선생은 석전의 손자로 서맥을 잇고 있는 제자입니다.
1993년 석전이 돌아가시는 날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황방연이 쓴 윤공재시, 2016년
윤두서의 '옥에 흙이 묻어'라는 시입니다.
윤두서는 조선의 화가로 윤선도의 증손이며
숙종때 진사에 급제했죠.
▲간재사고, 1927년
유당 황병근은 우리 문화재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흩어져 사라져가는 문화재 수집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수집품은 서책, 간찰, 서예작품 등 다양합니다.
문집은 학문의 결집체로 의미가 있고,
간찰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명인들의 필적을 볼 수 있는 재료입니다.
이렇게 수집한 유물을 국립전주박물관에 기증해
연구 자료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유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간재 전우의 문집으로 30책 중 27책입니다.
연활자본이며, 1927년 문인 김정호 등이 진주에서 간행했습니다.
전우는 전주 출신이며 이이와 송시열의 학통을 계승한
임헌회의 제자입니다.
1908년 이후 계화도 등의 섬에 거주해 많은 제자를 양성하여
정통 도학의 중흥을 도모했습니다.
▲영조어필, 1728년 이후
1728년 4월 23일에 영조가 최규서에게 내린 글을 베낀 서첩입니다.
최규서는 무신란에 공을 세웠는데,
영조는 '일사부정'이라는 글씨를 직접 써서 주고,
최규서의 집에 정려를 세우고
이 글씨를 새기게 했습니다.
'일사부정'은 지조와 신의가 하나가 되어 사직을 지켰다는 뜻입니다.
비망기에 '80세 노인의 나이로 백리의 길을 달려 난을 고한 것은 천고에 드문 일이다.'
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송태회가 그린 묵죽도, 1939년
전시관에는 병풍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강직함이 엿보이는 병풍입니다.
염재 송태회가 그린 묵죽도 10폭 병풍인데,
신경준이 지은 화죽병음 8수에 석죽과 월죽을 더해 열 폭으로 만들었습니다.
송태회는 전남 화순 출생으로 1920년 전북 고창 오산고등보통학교 한문교사로 초빙된 이후
고창으로 이주해 조선 역사와 한문, 서화를 가르쳤습니다.
산수화와 사군자를 비롯, 다양한 화목을 잘 그렸다고 하는군요.
▲석전 황욱 흉상
석전전시관앞에는 석전 황욱 선생의 흉상이 서 있었습니다.
전시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지긋하게 응시하는 느낌이랄까요.
엄숙한 표정을 짓고 계시지만 표정과 달리 마음은 따스할 것 같았어요.
전시를 관람하면서 석전 황욱 선생의 힘차고 활달한, 독특한 서풍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직하는 날까지 내가 지닌 가능성을 불태우고 가겠다'는
석전의 신념도 찾아볼 수 있었구요.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던 서예와 조금은 친해진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습니다. ^^
전주에 간다면
국립전주박물관을 들려서
전시를 관람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입장료도 무료랍니다 ^^
*황병근 선생 기증유물특별전Ⅱ*
- 국립전주박물관 기획전시실
- 전시기간 : 2016.04.07~2016.07.17
- 관람시간 : 평일 09:00~18:00, 토,일,공휴일 09:00~19:00, 3~10월 매주 토요일 야간개장 21:00까지
- 관람요금 : 무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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