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국립중앙박물관의 1층은 사람들로 늘 붐빕니다.
1층은 구석기 시대부터 발해까지 10개 전시실로 이루어졌는데,
우리나라 선사 및 고대 문화를 명품 위주로 전시,
고고박물관의 성격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1층의 제일 끝자락에 위치한 발해실은
전시관 중에서 가장 규모는 작습니다.
올해 초에 발해실과 고려실이 단장을 해서 재개관을 했는데요,
고려실과 발해실을 함께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발해실에 대해서만 글을 써볼까 합니다.
제일 구석의 박물관 내에서도 가장 작은 전시실이지만,
이 전시관이 의미하는 바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발해'가 의미하는 것이 크니까요.
△발해실 전경
발해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발해를 꿈꾸며' 노래입니다.
조용한 박물관과 가요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전시관람을 하면서는
잠깐동안 발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나라였는지,
잠시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발해 연표
연표를 보면서 발해의 역사를 한눈에 정리해봅니다.
670년, 신라와 당의 전쟁 이후 한반도와 주변 정세는
당을 축으로 신라와 발해가 공존하는 틀이 확립됩니다.
한반도는 대동강 이남의 지역을 통합한 통일신라와 고구려의 옛 땅에서
고구려 계승을 표방한 발해가 새롭게 건국해
남북국 시대가 되었습니다.
발해(698-926)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만주 동모산 일대에 세운 나라입니다.
전성기 발해는 대동강 이북의 한반도 북부지역,
중국의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 성과 러시아의 연해주 일대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중국에서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로 칭송할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루었고,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각종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발해5경은 상경 용천부, 중경 현덕부, 동경 용원부, 남경 남해부, 서경 압록부로 구성되었습니다.
발해가 5경제를 택한 것은 국력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당과 같은 황제체제를
취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초기의 수도는 동모산으로 현재 길림성 돈화시 성산자산성인데요,
문왕 대 756년 수도를 중경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로,
문왕 말년에 수도를 일시적으로 동경 용원부로 옮긴 적이 있으나,
5대 성왕 대에 다시 상경 용천부가 발해의 수도가 됩니다.
상경 용천부는 당시 동아시아 왕조의 도시와 같이 정연하게 계획된 도시였고,
왕권의 통치이념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공간이었습니다.
또한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도 발해를 기본적으로
고구려 부흥국가 또는 후계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발해는 이러한 고구려의 전통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였으며,
당을 비롯한 동아시아 주변 국가들과 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갑니다.
▲속일본기의 표현
발해와 관련해 중국은 당의 지방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발해를 구성하는 사람이 말갈인이 더 많았기 때문이죠.
발해는 고구려인과 말갈인으로 구성된 나라였지만,
말갈인의 나라가 아니라 고구려의 계승국이며,
당의 지방 세력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황제국을 지향한 엄연한 독립왕조였습니다.
여러가지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발해 2대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는
발해가 스스로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부여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발해를 고구려 후계 국가로 가장 강하게 인식했습니다.
발해 멸망 후 건국된 정안국 관련 기록을 통해서는 당시 발해인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견고려사 목간
이 목간은 고대 일본의 궁성이었던 헤이조 궁터에서 출토되었습니다.
길이 24.8cm, 너비 2cm, 두께 0.4cm인 목간에
모두 22자가 적혀있는데요.
여기서 고려는 발해를 가리키며,
이는 당시 일본에서 발해를 고려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증하는
가장 오래되고 귀중한 사료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인정했다는 사실도 말해줍니다.
△용머리상, 중국 헤이룽상정 닝안시 상경성 제1궁전지, 남북국시대(발해) 8-9세기
발해실에서는 발해의 건축미술도 엿볼 수 있습니다.
용머리 상은 상경성 제1궁전지에서 출토되었는데,
건축물의 기단 장식품입니다.
양쪽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에는 이빨 사이로 드러난 커다란 앞니가 위아래 4개씩 표현되어 있습니다.
목 둘레에는 머리털과 갈기가 새겨져있죠.
▲녹유괴수면와, 중국 지린성 허룽시 서고성, 1937년발굴, 서울대학교박물관, 남북국시대, 녹유
이 특이한 유물은 녹유괴수면와라 불리는 것입니다.
발해 궁전이나 사원 건축물의 지붕을 장식하던 마루 기와의 일종입니다.
△녹유치미,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상경성, 평양조선중앙력사박물관, 복제품, 남북국시대 8-9세기
녹유치미는 지붕 용마루 양 끝에 세워 건축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권위를 드러내는 장식입니다.
녹유괴수면와, 녹유치미는 용머리 상과 더불어 발해 건축양식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해의 건축양식을 살펴보다보면,
무엇보다도 '녹유'를 많이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발해의 흙으로 구워만든 불상 (남북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그랬듯이
발해 왕실 역시 불교는 왕권 정당성 강화의 이념적 도구였습니다.
발해 불교의 원류는 고구려에 있었고,
9세기가 되면서 크게 융성하게 됩니다.
상경지역은 관음상으로 대표되는 관음신앙이,
동경지역은 이불병좌상으로 대표되는 법화신앙이 유행했습니다.
△'불'자를 새긴 기와,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상경성, 1933.1934 발굴, 서울대학교박물관, 남북국시대(발해)
발해 문자 기와중에는 불(佛)자의 고(古)자가 새겨진 것이 있는데,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시야마 다라니경, 일본 시가현 오츠시 이시야마 사, 복제품, 남북국시대(발해)861년
이 이시야마사의 다라니경은 발해 사신이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밀교의 일본 전파뿐만 아니라
발해 불교도 밀교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암시해 줍니다.
▲당, 발해, 통일신라, 일본의 연꽃무늬 수막새
발해는 건국 이후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당, 통일신라,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주변 세계와 우호 관계를 맺었습니다.
주변 국가와의 교류를 위해 동경, 남경, 서경과 같이 거점도시를 설치하고
신라도, 일본도, 거란도, 영주도, 조공도라는 교통로를 열었습니다.
이 교통로는 외교만이 아니라 당시 아시아 물류 유통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정치 제도,
유학, 문학, 예술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문화를 더욱 발전시킵니다.
▲청동 물고기모양 부절, 러시아 연해주 파르티잔스크구역 니콜라예프카 성터 1980년대 발굴, 복제품, 남북국시대 발굴
주변 세계와의 교류를 알려주는 유물 중에서
손가락 2개 정도 합친 크의 작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청동 물고기모양 부절이었는데요.
부절이란 사신이 신표로 가지던 옥이나 대나무로 만든 부신입니다.
이를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졌습니다.
▲네 귀 달린 그릇,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동, 1964년 입수, 남북국시대, 토제
경북 울릉군 북면에서 발견된 네 귀 달린 그릇 역시
이 교류를 알려주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더불어 발해의 문화에는 중앙아시아의 요소뿐만 아니라 당, 말갈의 정서까지,
모든 문화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주변 나라에서 발해를 해동성국이라 부를 정도로 수준 높은
문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고려실로 연결되는 통로, 잠시 쉬었다가도 좋아요.
새로 단장을 마쳐 올 초에 재개관한 고려실, 발해실은
개선된 조명, 저반사 유리를 활용해
전시된 유물이 더 돋보였습니다.
쾌적한 환경에서 유물을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발해 문화의 특수성과 보편성도 엿볼 수 있었고요.
남아있는 유물이 별로 없어서
가장 작은 공간에 마련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 유물들로나마 잠시 발해를 꿈꿔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 관람시간 : 화, 목, 금요일 - 09:00~18:00 /수, 토 - 09:00~21:00/일, 공유일 09:00~19:00
* 휴관일 : 1월 1일, 월요일
* 관람료 : 무료(상설전시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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