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가장 한산하고, 가장 조용한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3층.
이곳에서는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등의 문화재를 전시,
이웃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의 다양성도 체험할 수 있는데요.
(물론~ 무료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중요하죠^^)
가깝지만,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먼 나라 일본.
마음에 켜켜이 쌓인 감정은 접어두고, 일본 미술의 흐름을 살펴봤습니다.
▲일본실 입구
일본실에서는 일본 미술의 흐름을
고대부터 개항 이전과 근대,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섬나라인 일본의 미술은 외부에서 새로운 문화가 전래될 때마다 흐름이 변했습니다.
우선 조몬, 야요이, 고훈 시대로 이어지던 일본 고대의 문화는
6세기 중반 불교와 함께 전래된 불교미술에 의해 크게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교 전래로 미술이 크게 달라졌듯이,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아스카, 나라 시대에 걸쳐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은 불교 미술이 융성하고,
헤이안 시대에는 귀족적 취향이 반영된 화려한 밀교와 정토교 미술이 발전합니다.
무사 집단인 막부가 정권을 잡은 가마쿠라시대에도 사실적 표현이 두드러진 불교 미술이 성행했고,
13세기에 전해진 송의 문화에 의해 일본 미술의 흐름은 두 번째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때 전래된 선종은 일본 고유의 미의식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여 다도와 노의 체계를 완성시켰습니다.
△에도시대(17세기) 일본 검의 날
△갑옷과 투구(에도시대 19세기), 철, 금, 가죽, 철, 비단 등
전시실 안에서 날카로이 빛을 내고 있는 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일본에서는 중세 가마쿠라 시대 (1192~1392) 이후
무사들이 정치력을 장악하면서 무사 소용의 물품들이 본연의 기능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갑옷과 칼인데요.
이것들은 대대손손 전해지면서 단순히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와 신체 보호용 의복의 차원을 넘어
일본 무사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도검과 갑주는 미적가치를 인정받아 예술품이 되었고
더 나아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한 봉헌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새와 인물 그림 병풍, 가이호 유쇼, 17세기 초, 6곡 병풍
관람중에 독특한 병풍 앞에서 한참을 멈춰섰습니다.
새와 인물을 그린 병풍인데 먹으로 채도만 조절해서 그린 그림이지만
그림속에서 절제미를 비롯해 독특한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이것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화가 가이호 유쇼의 그림 6장을 붙여 만든 6곡 병풍입니다.
본래 무사 출신인 유쇼는 당시 화단을 장악한 가노 파에게 그림을 배웠지만
장년에 이르러 가노 파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이룩합니다.
그 중에서도 중국 남송의 화가 양해의 인물화를 연상시키는 '포대자루 인물' 고사도가 잘 알려져있는데,
전시된 병풍은 이러한 인물화에 새와 꽃 그림을 조합시킨 독특한 예입니다.
▲손잡이가 달린 대야와 받침, 오하구로 도구와 오하구로 도구상자, 에도시대 19세기
화장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들 하죠.
일본의 화장법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에 금가루와 옻칠을 한 상자가 참 예뻐보여서 이게 무엇에 쓰이는 건가 싶었어요.
이것들은 오하구로를 위한 도구들이었는데요.
오하구로란 치아를 검게 칠하는 화장법으로,
고대에 일부 상류 계층에서 시작되어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에도 시대에 이르면 거의 모든 기혼 여성들이 이를 검게 물들였기때문에
신부의 혼수품에는 반드시 오하구로를 위한 도구와 재료가 담긴 상자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오하구로의 재료인 오배자는 매우 떫은 맛이 날뿐더러 진한 차나 식초에 쇳덩어리를 담가
산화시킨 액체를 함께 발라줘야 하기 때문에
화장이 끝난 후에 입안을 헹구기 위한 물과 그릇도 꼭 필요했습니다.
요즘은 하얀색, 고른 치아가 미인인데,
일본 에도시대에는 정반대였다는 사실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화훼권 중 '물고기와 연잎', 와타나베 가잔, 1835년, 종이에 채색
연잎 아래 숨은 물고기의 표정이 생생하고 익살스럽습니다.
이 그림은 와타나베 가잔의 '물고기와 연잎' 그림입니다.
와타나베 가잔은 에도 시대 후기 미카와 다하라 번(현재의 아이치 현 동부)의 무사로
에도(현재의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인 동시에 지식인이었습니다.
가잔은 무사로서 갖춰야 할 전통적 유학은 물론이고
서양의 새로운 학문에도 정통했습니다.
가잔에게 있어 그림은 빈곤한 가계를 꾸리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초상화 등에는 그의 학문 세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잔은 또한 충효를 중시하는 인품으로 문인화가 쓰바키 진잔(1801~1854)을 포함한
많은 제자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도카이도 53역의 풍경, 오쓰'하시리이 찻집', 우타가와 히로시게, 에도시대, 종이에 인쇄, 다색판화
도카이도란 에도와 교토를 잇는 태평양 연안의 간선도로로,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 도로 중간에 53개의 역참을 두어 정비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도로는 도교와 오사카를 연결하는 신칸센이 지나는 주요 도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주변에 후지산 등 명승지가 많아 예로부터 그림의 소재로 자주 이용되었는데,
우타카와 히로시게가 호에이도에서 출판한 풍경판화 '도카이도 53역의 풍경'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도카이도의 종착지 교토에 도착하기 전의 마지막 역인
오쓰에는 '하시리이 찻집'이라는 유명한 가게가 있었습니다.
이 가게 앞에는 '하시리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는데,
언제나 맑은 물이 샘솟아 지나는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림 왼쪽 하단에 물이 넘쳐흐르는 우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가게 앞을 쉴새 없이 지나는 우마차의 행렬을 보면,
이곳이 교토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가미지시, 가도이 기쿠스이,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노는 14세기 말에 발달한 가면극입니다.
중세 무로마치 막부 무사들의 후원속에 성장해
에도시대를 지나 지금의 격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600년동안 이어진 노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은
일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뇌리속에 하나의 이미지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그림들을 이해하려면 노 '샷교'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합니다.
당나라에 건너간 일본의 승려 자쿠조는 문수보살의 성지인 청량산을 향해 가던 중
매우 험한 계곡에 걸려있는 돌다리(샷교)앞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동자가 이 다리를 건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고하지만
그 다리 건너편이 청량산임을 알게 된 자쿠조는 목숨을 걸고 이를 건너려 합니다.
그때 사자가 나타나 아름다운 춤을 추자 그 뒤로 모란이 피어납니다.
이것이 모두 문수보살의 현현이었던 것이죠.
그림을 살펴보면
화려한 옥색 고소데를 입은 여인이 긴 천이 달린 사자머리를 들고 있는데,
그 뒤로 모란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제목인 '가가미지시'란 1893년에 초연된 가부키 '순쿄 가가미지시'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노 '샷교'의 영향을 받아 에도 시대에 성립된 가부키 '샷교모노'의 한 종류입니다.
▲란부, 기무라 시코,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흰 가발을 쓰고 모란과 부채 장식을 머리에 얹은 여인이 두 손에 역시 모란꽃을 들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얼핏보면 사자가 없지만 여인의 의상에 중요한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즉, 기모노의 검은 치맛자락에 '돌다리(샷교)'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죠.
이는 18세기 후반에 '샷교모노'를 연기하고 있는 가부키 배우의 모습을 그린 우키요에를
모델로 해 제작한 근대 일본화입니다.
여인의 흰 가발이 노 '샷교'에서 사자가 쓰고 나오는 것과 동일하며
역시 그림 속에 사자와 모란이 함께 등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닭부리 모양 꽃병, 가와무라 세이잔, 1938년 제2회 신문전 출품작, 채색자기
▲탑 모양 향로, 2대 미야가와 고잔, 채색자기, 1940년 이왕가미술관 전시
16세기부터 시작된 서양과의 접촉으로, 자유로운 기질을 지닌 에도(江戸)의 도시 상인들은
우키요에나 가부키 등과 같은 새로운 대중문화를 꽃피웁니다.
이후 19세기 후반 개항으로 인해 서양 근대 문명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일본도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서양의 문화를 통해 자문화를 재인식하게 되면서, 소위 ‘서양화’에 대응하는 ‘일본화’의 개념이 형성되었습니다.
당시의 일본화가들은 재료와 기법은 물론 주제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전통 문화를 고수하면서도
서구적 요소의 융합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공예 영역에 있어서도 엿볼 수 있는데
전통적 장인들이 새로운 기법과 요소를 활용하고자 한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닭부리 모양의 꽃병과 탑 모양 향로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1층 테마전시실에서는 11월 22일까지 일본 가면 '노'에 관한 전시가 있었습니다. 비록 노 전시는 막을 내렸지만 그 전시의 여운을 이곳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미술관,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역사와 미술을 살펴본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비용과 시간이 꽤 들기에 망설여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무료 관람으로 편하게 관람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역사와 더불어 미술의 흐름을 다시 곱씹었기에 유익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점차 말라 죽어가던 지식(?)들이 물을 먹고 다시금 살아나는 느낌이랄까요.
중앙박물관을 간다면, 3층 아시아관 일본실도 둘러보길 추천합니다~ 조용하게 일본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답니다. ^^ 공감 ♡ 꾹 눌러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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