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10~16 국립중앙박물관

제주 고산리 유적과 신석기인의 삶과 예술을 살펴보다. 국립제주박물관 기획특별전, 제주 고산리 신석기 시대를 열다

꼬양 2016. 4. 7. 16:45




[전시 리뷰]

2015년 10월 20일부터 2016년 1월 3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는

'신석기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전시가 열렸었죠.


약 1만년 전 무렵의 한반도는 어떤 모습인지,

신석기인이 그 시대에 생존한 삶의 방식은 어땠는지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숫돌, 돌자귀, 갈판과 갈돌 등의

제주 고산리 유물을 보면서

제주 고산리 유적을 중심으로 한

특별전이 열리면 좋겠다라고 잠시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이 정말 현실이 되었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


 2016년 3월 8일부터 6월 5일까지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제주 고산리 신석기 시대를 열다' 전시가 열립니다.


제주 고산리 유적은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신석기 유적입니다.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집터, 야외 노지 등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시설물과 수만 점의 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유적에서는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보다 2천 년 이상 앞선 '고산리식 토기'와

후기 구석기 전통의 작은 돌날몸돌, 화살촉, 창끝, 새기개, 뚜르개 등

다양한 석기가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화살촉은 그 수가 수 백 점에 이르며

길이와 형태가 매우 다양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산리 유적은 한국을 비롯해 동북아시아 초기 신석기 문화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기획전시실 입구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에 지구를 뒤덮었던 빙하가 물러나면서

생태계는 물론 인류의 삶도 바뀌었습니다.


신석기인들은 따뜻한 기후에 적응하면서

구석기 시대 이래 오랫동안 이어왔던 수렵, 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원시적인 농경을 했고,

바다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안정된 정착생활을 했죠.  


또한 토기를 발명하고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갔습니다.


△기획전시실 전경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매머드 아래턱뼈, 전곡선사박물관, 구석기시대


올 초까지 열렸던 '신석기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에서 보았던

매머드 어금니를 다시 제주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언제봐도, 다시 만져봐도 매머드의 아래턱뼈는 참 신기합니다.

단단하고 억센 느낌이 가득해요.


따뜻한 시대가 시작되면서

추운 기후에 살았던 매머드나 털코뿔이 같은 대형 포유류는 사라지고

사슴, 멧돼지, 고라니와 같은 중소형 포유류가 번성하게 되었죠.


사람들은 변화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새로운 도구를 개발합니다.

이를 통해 식량 획득과 함께 저장, 조리, 섭취하는 방법을 발전시켰고

자연을 개척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듭니다.


이것이 신석기 문화입니다.


△작은 돌날 몸돌, 제주 도련동, 국립제주박물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문화는 제주 고산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구석기시대 후기의 빙하기 동안

제주는 한국과 일본 구주지역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약 1만 년 전부터 기온이 올라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섬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제주지역에서는 제주 고산리, 오등동, 김녕리, 서귀포 강정동 등지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인 작은 돌날 몸돌과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토기가 출토되어 주목받았습니다.


이들 유적에서는 나무를 가공하는 간 도끼와 열매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는 갈돌과 갈판, 간석기를 만드는 숫돌 등이 출토되는 등

새로운 도구들이 나타나고 있어 신석기시대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속 작은 돌날은 작은 돌날 몸돌에서 돌날을 떼어내는 방법으로 만든 것입니다.

작은 돌날 도구들은 크기가 작아

나무나 뼈 등의 자루에 끼워 사용했다고 합니다.


▲뗀 돌화살촉, 제주 고산리, 국립제주박물관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뗀 화살촉들은 눌러 떼기 수법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보다 한층 더 발전된 형태를 하고 있어

신석기 시대의 도구 발달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판과 갈돌, 제주 고산리, 제주문화유산연구원


국사책에서 많이 봤던 갈판과 갈돌입니다.


갈판과 갈돌은 곡물이나 도토리 등의

열매 껍질을 벗기거나 가는데 쓰였던 식량 가공구입니다.


갈판과 갈돌은 양손으로 갈돌을 잡고 앞뒤로 미는 것과

갈돌을 손에 쥐고 찧거나 돌리는 것이 있답니다.  


이 갈판과 갈돌은 앞뒤로 미는 게 아닌

쥐고 찧거나 돌리는 것으로 보이네요.



▲고산리식 토기, 제주 고산리, 오등동, 국립제주박물관


▲고산리식 토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약 1만년 전에 등장한 토기편.

고산리유적에서 출토되어 '고산리식 토기'라 불리게 되었죠.


토기에 유기물을 넣고 빚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뗀 돌화살촉, 청주 사천동, 동해 기곡 외, 국립청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외


사냥은 채집과 함께 가장 오래된 식량 획득 방법이죠.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활과 화살을 만들어

작고 빠른 동물을 쉽게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돌을 깨서 만들었지만,

점차 돌을 갈아 만들게 되었죠.




▲사슴뼈, 부산 동삼동, 국립중앙박물관


신석기시대에 가장 많이 사냥한 육상동물은 사슴과 돼지입니다.

사슴은 거의 모든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온전한 개체보다 부위별로 출토되고 있어 포획한 개체를 해체한 후,

이용률이 높은 부위만을 반입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빗창, 부산 동삼동, 국립중앙박물관


따뜻한 기후가 시작되면서

신석기인들이 제일 먼저 눈을 돌린 곳은 강과 바다였을 것입니다.


한반도는 바다와 접한 지역이 많아 바다 자원을 이용하는데

사용했던 다양한 도구들이 확인됩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어로 활동은 기원전 6천년 무렵에 이루어졌고

부산 동삼동 유적, 창녕 비봉리유적 등에서 확인됩니다.


해녀들이 들고 다니던 날카로운 빗창만 보다가

1만년 전의 빗창을 보니 느낌이 새롭네요.


빗창은 전복, 굴과 같은 조개류를 채취하는데 사용한 도구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전복을 '빗'이라고 하는데요,

빗창은 전복을 따는 창이라는 말이겠죠 ^^


빗창으로 채집하는 전복이나 굴 같은 조개류는

수심 2~15m 사이에 서식합니다.


▲그물추, 창녕 비봉리, 국립김해박물관


그물추는 여러 유적에서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로 출토되고 있어

여러 형태의 그물을 이용한 다양한 고기잡이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물의 구조나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부산 동삼동 조개무지에서 표면에 그물무늬가 찍힌 토기가 발견되어

그물의 모양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왼쪽 상단 - 조흔적토기, 부산 동삼동, 부산박물관/ 오른쪽 상단 - 참나무 화석, 서귀포 하모리, 국립제주박물관 /

하단 -  참나무, 울진 죽변리, 국립경주박물관



한반도 식생이 낙엽활엽수림으로 변화되면서

도토리처럼 새로운 식량자원이 번성하게 됩니다.


낙엽활엽수를 대표하는 참나무는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참나무 등

여러 수종을 가리키는 명칭이죠.


그리고 조 흔적이 남아있는 토기를 보면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에는

곡물 재배가 생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에서야

조, 기장 등 일부 식물의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물토우, 부산 동삼동, 통영 욕지도 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외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흙이나 돌, 동물 뼈를 이용해 사람이나 동물의 상을 조각하는

작은 조형물이 종종 발견됩니다.


동물은 곰, 멧돼지, 말, 뱀, 개, 새, 바다 포유류 등을

형상화한 것이 많은데

특정 동물에 대한 관념이나 수렵과 관련된 주술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물은 여인상이 많고 산모의 안전한 출산 혹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상징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크기가 10cm 이내로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긴

주술적인, 상징적인 유물이자

신석기인의 내면세계가 표출된 예술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왼쪽 - 동이, 중국 양사오문화, 한성백제박물관 / 오른쪽 - 동이, 중국 샤오허옌문화, 한성백제박물관


그리고 작게나마 중국과 한국의 신석기토기를 비교해볼 수 있었습니다.


토기는 변형이 쉬운 점토를 붙여 형태를 만들기 때문에

제작하는 지역이나 집단, 시기의 특성이 반영되기 쉽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화남 이남 등지의 신석기시대 토기는

동식물 혹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린 채색토기가 주를 이루는 반면,

한국, 중국 동북지역, 시베리아, 북유럽 등지의 토기는 겉면에 무늬를 새긴 것이 많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채색토기에 눈이 가더라구요~



▲간 돌도끼, 울진 후포리, 국립경주박물관



신석기시대를 공부하면서 많이 외웠던 매장풍습이 떠올랐습니다.

신석기인들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매장풍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공동체 일원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를 기억하기 위해 무덤을 만들었고,

이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집니다.


무덤에서는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도구나 장신구가 발견되는데

이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연속된 삶을 영위한다고 믿는 신석기인들의 내세사상을 보여줍니다.


사진 속 간 돌도끼는 경북 울진군에 위치하는 집단 묘지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바닷가 산꼭대기의 자연적인 구덩이를 이용해

40인 이상을 이차장(二次葬)으로 매장했습니다.


출토유물인 간 돌도끼로 사람의 뼈를 덮는 역할을 했습니다.

20cm 이상으로 길고 커서

실제로 사용하기에 적당하지 않았고

껴묻거리 용도로 특별히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시를 방문한 사람들이 작성한 고산리 소년 산이와 소녀 달이에게 보내는 편지


국립제주박물관의 기획전시실을 찾은 이들은

고산리 소년 산이와 달이에게 편지를 남깁니다.

일본인도 있었고, 중국인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산이와 달이에게 남긴 이야기는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한국 신석기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제주 고산리 유적을 비롯해

신석기인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특별전,

'제주 고산리, 신석기 시대를 열다'


고향이 제주라서 고산리는 너무 익숙한지라 

 고산리 유적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고산리 유적에 대한 이해는 물론 우리나라 선사 문화와

수천년 전에 일어났던 환경 변화에

인류가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제주 고산리, 신석기시대를 열다 *

-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

- 전시기간 : 2016.3.8~2016.6.5

-관람료 : 무료

-관람시간 : 평일 -09:00~18:00 / 토,일,공휴일 - 09:00~19:00/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21:00시 개관, 3~10월 매주 토요일 21:00 개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