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전라도

백제 왕궁에서 사찰로. 백제역사유적지구 익산 왕궁리유적. 익산여행

꼬양 2016. 4. 25. 06:30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

그리고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륵사지에 이어 찾은 곳은 왕궁리 유적이다.






우중충했던 하늘이 점차 푸른빛을 찾는 듯 했다.

거센 바람은 구름을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왕궁리 유적은 백제 말기 왕궁으로 조성되어

일정기간 사용후에 왕궁의 중요한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이 들어선 복합유적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백제 왕궁으로서는 처음 왕궁의 외곽 담장과 내부 구조가 확인되었다. 




왕궁리는 예로부터 왕궁평, 왕검이, 왕금성으로 불렸다고 한다.

고대 백제의 왕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다.


성벽을 쌓고 나서 내부 경사면을 따라

석축으로 단을 만들어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을 지었는데

왕궁내에서 물과 조경석을 이용한 조경 시설이 발견되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유적지 내에는 왕궁 건물터와 금당 등의 사찰 건물터가 여럿 남아있다.

사찰 유적 중 국보로 지정된 왕궁리 오층석탑은

조형미가 뛰어나 백제계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벚꽃은 이미 다 떨어지고 없었지만,

봄 분위기는 이미 미륵사지에서 충분히 느낀터라 괜찮았다.


터만 남은 이곳의 주인공은

국보 제289호 오층석탑이었다.


건물과 사찰은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의

상상력속에서나 완전하게 복원될 수 있겠지.





왕궁에서 사찰로 변화하는 과정에 건립된 5층석탑.


처음에는 목탑이 있었는데,

후에 석탑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석탑의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일치가 되지 않았기에 더 많은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미륵사지석탑에서 볼 수 있는

백제 탑의 흔적이 남아있어

다시금 반가움을 느꼈다.






유적지를 보면서 느꼈던 궁금증을 해소하는 자리는

바로 이 왕궁리 유적전시관.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왕궁리유적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유적 전체 축소모형과 화장실 유적,

정원 유적의 축소모형도 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백제 사비기 유적에서 확인되는 백제 와적기단.



그리고 익산 백제왕궁의 특징 중 하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백제 화장실 유적이 확인된 것이다.


과거의 화장실은 어땠는지

잠깐 살펴보는 시간.


화장실의 규모는 상당히 컸고,

의외로 과학적이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기생충, 곡물 등으로 미루어볼 때

백제인들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도 예측해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


그 외에도 중국 고대 왕궁에서와 같이 남측 담장에 3개의 문을 설치했다는 점과

왕궁 내에서 필요한 금, 유리, 동 등을 직접 생산했다는 것,

기암괴석과 장대석, 강자갈을 이용해

물의 흐름을 조절한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이 확인되었다는 것 등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익산 백제왕궁의 특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뚜껑있는 완, 익산 왕궁리 유적


▲왕궁사가 새겨진 기와, 통일신라, 익산 왕궁리유적




유적전시관을 둘러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왕궁에서 사찰로 왜 바뀌게 되었을까?

그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누구도 모르니 더 신비스럽게 느껴지고,

그 이유를 더 알고 싶어만 진다.

사실 이곳이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유적은 조용했다.


학생들과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잠깐 놀라기도 했지만 다시 평정심을 찾았다.


사람이 적게다고 해서

이 유적의 가치가 결코 없는 것이 아니니까.


오히려 이 유적을 알고 찾는 이들이

진짜 안목이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