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석가탄신일을 맞아 어디 절이라도 다녀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절에 가서 등을 달고 기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발걸음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원래 매주 월요일이 국립중앙박물관 휴관일인데요,
5월 25일 석가탄신일만큼은 특별하게도 관람이 가능합니다.
다만, 5월 26일은 휴관하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종교가 어떻든, 우리가 기도를 하는 이유, 소원을 비는 이유는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석가탄신일을 비롯해 평상시에도 절을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그렇다면, 옛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그 정답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발원, 간절한 마음을 담다' 전시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5월 23일부터 열린 이 전시는 8월 2일까지 진행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람료일텐데요,
무료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부담없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연가칠년명 불입상, 국보119호
승려 40인이 발원한 불상, 국보119호인 연가칠년명 불입상이 전시회 입구에서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불상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제작연도, 제작목적을 기록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입니다.
명문에 의하면 이 불상은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 있는 동사에서
승려 40인이 발원한 것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발원의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시회 제목에도 나와있는 '발원'이라는 단어의 뜻이죠.
이번 전시는 불교미술과 함께 전해지는 '발원문'에 주목합니다.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발원이란 불사를 일으켜 공덕을 쌓으며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사'란 사찰을 세워 탑을 건립하고, 법당에 불상과 불화를 봉안하거나
경전을 간행하는 일을 뜻합니다.
불사를 후원하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려 큰 공덕을 쌓는 것이죠.
후원자들의 소원은 국가가 평안하고, 살아서는 건강하며
죽어서는 극락왕생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불교는 중앙집권적 국가성립의 정신적 기반이었죠.
왕실에서는 탑을 세우면서 국가의 안녕과 선대의 명복을 기원했지만
국력을 과시하고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갖고 있었습니다.
▲계유명 아미타불비상, 국보106호
돌에 정교하게 아미타불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조각실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어요.
이것은 백제 유민이 조성한 불비상으로 국보10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방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이 새겨진 비석 모양의 조각상인데요.
정면에는 전씨를 비롯한 주요 발원자들의 이름과 나라를 위해 발원한다는 내용이 새겨져있습니다.
측면에는 50명의 후원자들이 모든 중생을 위해 발원한다고 기록했습니다.
△ 초조본 대보적경 권59, 고려 11세기, 국보246호
고려시대에는 왕과 귀족, 고위 관료의 후원을 바탕으로
화려한 불교문화가 피어났습니다.
경전제작은 그중에서도 가장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는데요,
물론 최고 계층의 후원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이기도 했습니다.
대장경은 거란, 몽고와의 전쟁으로 위기에 몰렸던 고려 왕실이
국력을 결집시켜 부처의 힘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간절한 바람의 산물이었습니다.
무신 정권시절 팔만대장경은 최고 권력자들의 아낌없는 후원과
백성의 참여로 완성될 수 있었죠.
1010년 거란이 침공하자 고려 현종은 공덕을 쌓고
부처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자 대장경 조성을 발원합니다.
대장경이란 경, 율, 론의 삼장을 집대성한 것으로,
강력한 통치력과 경제력, 문화적 역량이 있어야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국력이 표상이었습니다.
국가의 지속적인 후원으로 1087년에 고려의 첫 대장경 570함 6,000여권이 조성되었습니다.
이후 대구 부인사로 옮겨 보관했지만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습니다.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과 경갑, 고려 1206~1219년, 보물691호
흥미로운 유물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재앙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마치 부적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경이 있었는데요.
바로 '불정심다라니경'입니다.
고려 최씨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인 최충헌과
그 두 아들 최우, 최향을 위해 발원한 불정심다라니경과 경전을 넣었던 경갑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최충헌 삼부자가 재난이 소멸되고 복을 누리며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는 발원문이 있습니다.
경갑 위에는 끈을 맬 수 있는 고리가 있는데요.
고려시대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삼부자도 재앙은 무서웠나 봅니다. ^^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고려1334년, 보물 752호, 호림박물관
호림박물관에 있던 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모처럼 마실을 나왔네요.
원나라 황제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며 발원한 화엄경이 그것인데요.
고려 충숙왕때의 인물인 안새한이 발원한 사경으로,
안새한은 원나라와 가까이 지냈던 인물입니다.
부모의 은혜와 원나라 황제, 황태후, 태자 등의 덕으로
위계 2품을 받은 것에 감사하며 좋은 금으로 화엄경을 옮겨썼다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개인이 발원한 사경은 발원의 내용이나 목적도 개인적인 것이 특징이죠.
△월인석보 권11.12, 조선 1459년, 보물935호
한글로 쓰인 낡은 책이 범상치 않아보이는데요.
세조가 죽은 아들을 위해 간행한 월인석보였습니다.
월인석보는 세종이 간행한 '월인천강지곡'과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간행한 '석보상절'을 합쳐서 만든 것으로
부처의 생애를 기록한 책입니다.
1455년 조카인 단종을 멀리 유배보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아버지와 죽은 아들 도원군의 명복을 빌고자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수정, 보완해 월인석보를 간행합니다.
여기에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뜻과 널리 불법을 알리고자 했던
세조의 바람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세조는 이를 통해 왕의 계승의 정통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복장물을 넣은 관음보살상, 고려13세기, 목조
△관음보살상 머리 안에 봉안한 복장물(대수구다라니경, 오색실)
불상을 만들어 봉안하는 것은 사찰의 가장 중요한 불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불상 제작에 참여한 수많은 후원자들이
불상을 만든 경위와 자신들의 이름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의도치 않지만... 미래에 후손들이 봤을때는
불상이 이른바 타임캡슐의 역할을 한다랄까요?
어쨌든... 복장이란 불상 안에 발원문, 사리, 경전, 직물, 곡물 등
다양한 물품을 넣는 것으로
불상이 단순하게 조각상이 아닌 부처, 그 자체임을 보여줍니다.
하나의 불상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봉사,
물질적, 정신적 지원이 이어졌고요.
임금, 신하, 백성...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동참합니다.
△아미타삼존불상, 고려1333년
이 아미타삼존불은 관료부터 천민까지 함께 조성한 불상입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즐거움만 가득한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했던
중생의 간절한 바람은 아미타신앙의 유행을 가져옵니다.
△대혜원명종, 고려1223년, 보물1781호, 우학문화재단, 용인대학교
은퇴한 호장이 발원한 대혜원종입니다.
호장은 고려시대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향리의 수장으로
사찰의 주요 후원자였다고 합니다.
종을 만들면서 국왕의 만수무강과 국토의 평안함,
그리고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기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왼쪽 - 딸이 아버지의 명복을 기원한 향완(경술명 향완, 고려, 청동, 국립부여박물관),
오른쪽 - 지방 향리들이 발원한 사내사 향완 (사내사명 향완, 고려, 청동, 국립청주박물관)
지역 사회의 신도들은 소리와 향을 공양하기 시작합니다.
예불 의식에 필요한 범종과 금고, 향완, 촛대와 접시 등은
사찰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필수적인 불교공예품입니다.
이러한 공예품에도 제작을 주관한 사람과 장인, 후원자의 이름을 기록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왕실에서 후원하는 대형 범종을 제외한 다른 품목들은
지역 사회의 불교신앙 공동체인 향도들이 중심이 되어 제작하는데요.
고려 후기에는 중앙의 고위관료, 지방행정관료, 하급관료, 무관, 여성, 향촌민등
다양한 집단이 등장합니다.
▲이성계와 부인 강씨가 발원한 사리구, 고려 1390-1391
여성은 불교미술의 중요한 후원자로
고려시대부터는 거의 모든 계층에서 발원 주체로 부상합니다.
발원의 내용을 살펴보면 보통 여인들의 바람처럼
딸, 아내, 어머니로서 부모와 남편, 자식의 안위, 명복을 기원했다는 점에서
여성의 정서가 드러납니다.
▲불정심다라니경, 조선1485년, 보물1108호, 호림박물관
인수대비하면, 드라마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다라니경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불정심다라니경은 인수대비로 알려진 소혜왕후가 아들 성종을 위해 간행한 경전입니다.
인수대비는 장인을 시켜 중국의 경전을 본떠 만들게 했는데요.
상단에는 그림을 그리고 하단에는 글을 실어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다만, 전시실에 펼쳐진 페이지는 좌측에는 글이, 우측에는 그림이 있죠. ^^
이 유물을 통해서는
아들 성종의 만수무강과 안녕을 기원했던 어머니의 모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영산회상도, 조선1777년, 동국대학교박물관
숭유억불정책을 폈던 조선...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나고 국가에서는 전란 중 활약했던
승군의 공적을 인정해 사찰의 중건을 지원하고, 승려의 사회적 신분이 향상됩니다.
이전과 다른 점은 불사의 비용은 특정 계층이 부담하지 않고
일반 백성과 승려가 분담해 마련한다는 것인데요.
조선 후기의 불상, 불화 등 모든 장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입니다.
특히 희생된 수많은 영혼을 위로하는 영산재나 수륙재 같은 대규모 의식들이 개최되면서
일반 백성들이 불화 제작에도 활발하게 참여합니다.
인도 영취산에서 열렸던 석가모니불의 설법모임을 묘사한 영산회상도는
조선후기에 가장 많이 그려진 불화 주제 중 하나로,
이 불화 조성에는 승려와 일반인들이 후원자로 참여합니다.
▲불연, 조선1670년, 목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397호, 불영사
전시실 끝에는 불연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법회를 열 때 사용되며 나라의 임금을 태우는 연처럼 존귀한 부처와 보살을 모시는 가마를
불연이라고 합니다.
이 불연 역시 승려와 신도들의 후원으로 제작된 것이기도 합니다.
불연을 통해 승려와 신도들의 불심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절이 참 많죠.
사찰에 들어서서 세월의 흔적을 먼저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찬찬히 둘러보면, 통일신라 석탑 뒤에 조선시대 전각이 있고,
고려시대의 불상과 현대의 불화가 어색함없이 조화롭게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부모와 가족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정성들여 만들었던 불사의 흔적들이죠.
세월을 돌고 돌아 지금까지 이어온 옛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국왕과 귀족, 관료부터 천민까지
사회적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곳곳에 드러나는
불교미술 후원자들의 삶의 희노애락과 신심을 엿볼 수 있었던 전시.
과거의 공덕으로 이루어진 불교미술품을 통해
현재의 의식에 참여하는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공덕을 쌓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원, 간절한 바람을 담다
2015.5.23~8.2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 입장료 : 무료
- 매주 월요일 휴관 (단, 5월 25일 정상운영, 5월 26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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