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10~16 국립중앙박물관

제주에서 만나는 대가야의 흔적, 대가야의 탐라나들이. 국립제주박물관

꼬양 2015. 3. 3. 06:30

 

 

 

[전시 리뷰]

화산섬 제주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의 거주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신석기문화가 시작된 지역이고,

탐라 건국 이전까지 적극적인 외부 문물의 수용을 통해 다채로운 선사문화를 가꾸었습니다.

 

탐라국의 출현은 그에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인 셈이죠.

 

물론 제주는 지금까지도 독특한 문화적 색채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색채를 띠게 된 것은 지리적인 이유가 큽니다.

더불어 제주지역에서 다른 지역 박물관 나들이로 가는 것은 더더욱 힘듭니다.

가끔씩 열리는 특별전시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랄까요.

 

국립제주박물관에 특별한 전시가 열려 다녀왔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대가야의 유물이 탐라 나들이에 나섰는데요.

대가야와 탐라의 후예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인연의 출발이 되길 기원하면서,

글을 시작합니다. 

 

▲ 국립제주박물관 입구

 

 

고령군은 경상북도 서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전 우리나라 고대사의 한 축을 이루었던

대가야의 옛 도읍지였습니다.

 

탐라는 다들 아시다시피 제주도에 있었던 옛 나라로,

가야를 비롯해 삼국과 밀접하게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가야를 주도했던 국가는 서기400년을 전후해 전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

후기에는 고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야입니다.

 

대가야는 정치, 문화, 영역적으로 가야의 최전성기를 이끌었고,

영,호남 지역을 아우르는 고대국가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를 삼국시대라 칭하지만,

가야는 삼국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가야는 약 600여년이나 삼국과 나란히 독립성을 유지합니다.

고대사를 삼국시대로만 인식한다면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꽃피웠던

고대 영,호남지역 사람들의 삶의 자취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최근, 고대사를 '사국시대'로 파악하는 '사국시대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문제의식의 결과죠. 

 

 

▲ 전시가 열리고 있는 기획전시실

 

국립제주박물관의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특별전시, '대가야의 탐라나들이'.

 

외부출입구도 있지만,

 상설전시관을 관람하면 바로 이어지는 통로를 통해

기획전시실의 대가야의 유물도 만날 수 있습니다. 

 

 

△ 기획전시실 내부

 

작은 기획전시실에는 유물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제주도민도 보였지만, 관광객들이 더 많았습니다.

 

제주도에 와서 대가야의 유물을 보고 가는 것이 이들에게도 상당히 독특한 경험으로 다가왔는지,

저에게 유물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달라며 부탁을 하더군요.

 

전시실 내부에는 플래시를 터뜨리지만 않으면 사진촬영이 가능합니다.

 

 

 

 

▲ 덩이쇠, 5~6C, 고령지산리

 

 

전시된 덩이쇠를 통해 대가야가 철의 왕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덩이쇠를 만들어서 중국, 왜, 삼국과의 교역을 했고,

대가야는 국가의 부를 크게 늘릴 수 있었죠.

 

국사시간에 배웠다시피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은

다름아닌 우수한 철기문화였다는 것.

 

철 생산도 물론이거니와 철기를 다루는 기술도 뛰어나 농사도구를 만들어

농업생산력을 높였음은 물론,

무기를 제작해서 군사력도 갖출 수 있었습니다.

 

△ 뚜껑있는 긴목항아리와 바리모양 그릇받침, 5~6C, 고령지산리

 

대가야의 무덤속에서는 무엇이 나왔을까요?

다른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토기, 무기, 장신구 등이 발견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덤속에서 나온 것들은 '대가야 양식'이라 할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 대가야의 토기, 5~6C, 고령지산리

 

글씨없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는 토기.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있던 곳에는 각 지역별로 독특한 특징을 지닌 토기들이 출토됩니다.

가야내에서도 고령, 함안, 김해, 고성 등의 토기는 차이가 있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토기의 분포를 통해 가야의 세력범위, 문화권, 대외교류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헌자료가 부족한 고대사회의 역사성은

토기가 밝혀내기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대가야의 토기는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그릇받침, 뚜껑접시 등으로 대표되고,

부드러운 곡선미와 풍만한 안정감을 갖고 있습니다.

 

사진속에서 보이는 바리모양의 그릇받침은 대야같이 넓고

깊은 몸체에 여러 겹의 물결무늬와 솔잎모양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확실히 대가야의 토기는 다른나라들과 다르더군요.

 

 

△쇠창, 5~6C, 고령 지산리

 

철의 왕국답게 전시실에는 많은 무기들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대가야의 고분에서는 큰칼, 쇠창, 화살촉 등의 공격용 무기와 갑옷, 투구와 같은 무기가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이 쇠창을 어떻게 쓰나 궁금했는데, 나무자루에 꽂아 사용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이렇게 녹슬어 발견되었지만,

날카로운 이 창은 한 때 어느 병사의 손에 쥐어졌었겠죠.  

 

▲ 봉황무늬 고리자루 큰칼, 5~6C, 고령 지산리

 

용이나 봉황으로 장식한 고리자루 큰칼은 대가야 무기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용과 봉황은 장식용으로 많이 쓰였네요.

 

△ 말안장(앞), 5~6C, 고령지산리

 

▲자작나무, 5~6C, 고령 지산리

 

무기를 살펴보는데, 자작나무가 전시되어 있어서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해할 수 있었죠.

 

지금처럼 테이프가 없던 대가야시대에는

얇게 벗겨지고 질긴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화살촉을 감아묶을 때 자작나무 껍질이 유용하게 쓰였고,

그 흔적이 화살촉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 목걸이, 5~6C, 고령 지산리

 

▲금동관, 5~6C, 고령 지산리

 

대가야 고분에서는 금이나 금동으로 만든관, 관모장식, 귀걸이, 목걸이 등의 화려한 장신구가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여러 가야 중에서도 대가야만 유일하게 금관과 금동관이 출토되었습니다.

신라와 가까이 있었지만,

대가야의 관은 신라와 구별되었는데요.

신라의 출자형과 달리, 풀잎이나 광배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신라의 관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던 금동관이었습니다.

 

 

△ 가야금

 

그리고 가야금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전시관을 둘러보던 시민 몇 분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고대 유물들과 가야금이 전시되었기에 조금은 의아했나봅니다.

 

고령의 대가야박물관은 대가야왕릉전시관과 대가야역사관, 우륵박물관, 이렇게 3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야금은 우륵이 가실왕의 명을 받아 만들었고,

대가야의 문화적 힘을 보여주는 악기이기에

이렇게 전시되고 있었던 것이죠.

 

갸야금의 형태와 12줄은 하늘과 땅, 1년 12달을 상징하고,

가야금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우주관과 시간관이 담겨있습니다.

 

사실 저는 고량의 대가야박물관을 진작에 다녀왔었습니다.

크나큰 대가야박물관을 보고왔었지만서도 제주에서 열린 특별전시를 다시 보니 정말 반갑더군요.

그때 봤던 유물들도 떠올랐고, 그 유물들이 제주로 나들이를 왔다는 것에 제가 더 설레었습니다.  

 

가야유물의 탐라국 방문.

참으로 흥미로운 전시였습니다.

 

제주에 가신다면, 제주도에 살고 계신다면,

시간내서 국렙제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를 꼭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가야의 탐라나들이

- 기간 : 2014.12.23~2015.3.22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 국립제주박물관 기획전시실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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