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람 일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모른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사람은 허망하게 떠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재난과 사고로 세상을 떠야하는 이들도 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동일본 대지진,
우리에게는 세월호.
세월호 사고는 참으로 큰 충격이었고,
아직도 그 고통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차디찬 바다를 헤매고 있을 어린 생명들의 억울함과 회한이
부모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산 자와 죽은 자.
죽은 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살아있는 사람은 죽은 자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
물론 무속신앙 등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알 수 있다고도 하지만,
실제로 그 대화를 일반인이 나눌수는 없기에 그것 역시 완벽하다고 볼수는 없다.
서두가 너무 길었기에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상상라디오, 이 책은 죽은이들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 동북 지역의 깊은 산 속,
높은 삼나무 꼭대기에서 DJ 아크가 휴대전화 하나 들고
라디오 방송을 하는 이야기다.
방송국도, 스튜디오도 없고,
마이크도 없이 상상으로만 전파되는 라디오다.
죽은이들에게만 들리는 라디오.
살아 있는 사람은 결코 들을 수 없는 라디오.
과연 이런 라디오가 있을까 싶다.
상상라디오의 DJ 아크는 자신의 과거사를 이야기하면서
유쾌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DJ 아크는 밝고 경쾌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그는 높은 삼나무 꼭대기에 걸리기까지 몇 시간전까지 함께 있었지만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내를 애타게 찾는다.
상상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는 점점 늘어나고,
아크에게 사연이 속속들이 도착한다.
부모를 피신시키고 해일에 휩쓸린 동창,
여관에 갇힌 회사 임원, 차가운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는 사연을 보낸 익명의 여자까지...
그의 라디오를 듣고 있는 이, 그에게 사연을 보낸 이는 모든 죽은 사람들이었다.
DJ 아크는 이들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목소리가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소설은 온전히 아크의 시점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아크가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작가인 S씨가 등장하는데,
항공성중이염을 앓던 그는 수술로 다시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예전과 다른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한다.
S씨는 재해지역의 자원봉사를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삼나무에 올라가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나무 위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어쩌면 그 사람의 방송이 들리는 것이 아닐까 짐작도 해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S씨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봉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다른 봉사자들과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
죽은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한 청년은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 반박한다.
작가 S씨가 죽은 사람과의 소통을 바랬던 이유는
그 역시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애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는 그녀를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고,
죽은 그녀도 살아있는 자신의 부름을 통해 존재하고, 생각할 것이라며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함께 껴안고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한다.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아크였다.
글의 흐름상...
아크는 쓰나미에 높다란 삼나무에서 생을 마감한 시민이었고,
그는 자신이 죽은 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나마 자신의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연락이 없는 아내와 아들이 살아있음에 기뻐한다.
그리고 아크는 상상력과 집중력을 발휘해 아내와 아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
생각을 갖고 있는지 흐릿하게나마 듣는데 성공한다.
DJ 아크가 여운 속에서 프로그램을 끝내며 들려줬던 곡은 구원의 노래.
소설은 죽은 자와 산 자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살짝 드러내며 끝을 맺는다.
"아무리 귀를 기울인다해도 물에 빠져서 가슴을 쥐어뜯다 바닷물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괴로움은 절대로, 절대로 살아있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들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고집이고, 설령 뭔가가 들린다고 해도
살아갈 희망을 잃은 순간의 진짜 두려움, 슬픔을 우린 절대로 알 수 없어요."
본문 중에서...
가장 마음아프게 읽었던 대사였다.
마음아프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했다.
살아있는 우리가 죽은 자들의 슬픔, 두려움을 알 수는 없다.
때문에 더더욱 가슴이 아리고 아팠다.
어떤 이는 사고의 진실이 다 밝혀지지 않앗다고 생각하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고통이 헛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어떤 이는 상처와 아픔을 잊기를 바라고, 살아있는 사람은 현실에 충실해야하며,
죽은 사람을 계속 마음에 담고 아파하는 것은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것도 정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살아남은 사람의 추억도 역시 죽은 사람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다.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인데,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웃기면서도 짠했던 소설, 상상라디오.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위해 저자는 이 책을 썼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나로서는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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