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뜨거웠던 80년대...
사실 80년대에 태어났던 나는
폭압적 정원에 맞섰던 이들의 이야기를 커서야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많이 자란 후에 말이다.
그 당시 정권에 맞서 앞장섰던 사람도 있었고,
뒤로 숨었던 사람도 있었다.
청동정원은, 맞서지도, 숨을 용기도 없었던
경계인을 그려냈다.
제목으로 쓰인 청동정원은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과 겹쳐지는 풍경을 묘사한 표현이다.
즉, 쇠와 살이 부딪치던 시대의 분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386세대라면 더 공감할 이야기, 청동정원.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
우리 엄마 시대의 싱그럽지만 황폐했던 젊은 날의 풍경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시인인 저자가 26년만에 완성한 소설.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문학활동을 펼쳐왔던 저자가
유일하게 거절했던 주제가 있었다.
바로 80년대다.
다루기도 까다로웠겠지만,
이 시대의 이야기를 몇 장, 몇 십장으로 말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이었다.
그 시대를 시가 아닌 소설로 풀어내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애잔한 문체속에서 시대의 비극과 함께
청춘의 아픔, 사랑, 절망을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예쁜 옷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길 바라며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꿈꾸는 애린.
하지만 그녀의 대학생활은 순탄치가 않다.
학교는 시위와 집회로 조용할 날이 없었는데,
현장을 보면서도 모른 척 지나치던 어느 날 운동권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애린은 독재 권력에 저항의지는 있었지만,
앞장설 용기가 없었기에 경계인으로 대학생활을 해나간다.
정치학과 대학원생이자 운동권 선배인 동혁에게 빠져 결혼하지만
독재 정권에 맞섰던 동혁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애린에게 독재와 다를바없이 대했다.
결국 애린은 이혼을 하고,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는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는데...
'80년대를 살아온 청춘들에게 남은 것은 이념이 아닌 정서'
이 말이 참 기억에 남았다.
어느 시대를 살아오든 청춘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정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 청춘을 옭아매던 것이 취루탄과 화염병, 쇠였다면
지금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과 스펙, 집일 것이다.
2000년대를 청춘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신발장과 옷장, 책장속에서 이 시대의 정서는 계속 남아있을 것 같다.
책 속 주인공 애린이 그렇게 느꼈듯이 말이다.
앞장서며 뜨겁고 치열하게 분노했던 사람들,
그 뒤에 서서 그러하지 못했던 사람들.
그 시대의 20대를 보냈던 사람들에게 작가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라 말하는 것 같다.
교정의 푸른 나무들과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겹쳤던 그 풍경을 벗어나면
누구든 쓸쓸하고 외로운, 불안한 한 사람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읽다보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느 시대든 청춘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80년대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고통스러웠고,
지금 시대의 청춘은 역시 아파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지 않아도 청춘이다'라는 말을 갑자기 하고싶어졌다.
시대가 변했지만서도 청춘에게만큼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은 계속된다.
그 고통에 앞장서는 사람, 뒤로 숨는 사람,
그 사이에 있는 경계인도 있다.
이 책은 그 경계인들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며 토닥이고 있다.
싱그럽지만 황폐하고 아팠던 젊은 날의 풍경.
누구나 가슴속에 담고 있었던 그 풍경을 꺼내게 되는 책이었다.
물론... 지금 나는 그 풍경속에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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