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중국 - 베이징

충격과 경악의 전쟁기념관. 일제의 만행의 끝은 과연?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中国人民抗日战争纪念馆

꼬양 2014. 12. 9. 06:30

 

 

 

 

[베이징 여행]

충격과 경악...

베이징 완핑청(완평성)에 위치한 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다녀오고나서의 느낌은

이 단어로 요약되었습니다.

물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기념관은 수위가 상당합니다.

일제 만행에 치를 떨고 분노하게 되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마음은 '일본'이란 나라를 두고는 통하는 것 같습니다.

반일감정은 중국도 참으로 만만치 않아요.

일본에 대한 코드는 맞는다랄까.

 

 

 

비위가 약한 저는...

정말 토할뻔했습니다.

 

왜 이리 오버가 심하냐...라고 하겠지만.

흑백사진이라하지만서도...

너무나도 처절하고 잔인했습니다.

더 있다가는 눈물이 쏟아질 것도 같았어요.

 

저절로 욕이 한바가지로 나오기도 했지만요.

 

 

 

기념관에 들어서면 중국 군인들을 형상화한 암벽화를 맨처음 만납니다.

중일전쟁 당시에 앞장서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죠.

 

명나라 시기에 축조된 완평성.

성 안쪽 북쪽에는 인민항일전쟁기념관이 세워져있습니다.

 

중국에는 3대 항전기념관이 있습니다.

베이징의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과 심양시의 9.18 역사박물관(9.18-만주사변),

남경시의 남경대학살 희생동료 기념관입니다. 

 

아, 이곳은 무료관람입니다.

신분증이 있으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곳이죠~

 

 

 

 

성벽에는 일본군이 이곳을 공격했을 때 생긴 총탄 구멍이 남아있죠.

 

 

 

 

1987년 항일전쟁 50주년을 맞아 설립된 이 전쟁기념관.

1931년 9.18 사변부터 1945년까지 항일전쟁에 대한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7년 7.7사변의 발생지인 루거우차오(노구교) 옆에 있죠.

완평성과 노구교는 제가 다음 포스팅으로 보여드릴게요~

 

3개의 주제전시관으로 되어있는 전쟁기념관은

각종 사료와 사진 등 여러 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장면을 그림과 조각, 모형 등으로 보여주고 있죠.

 

 

 

 

일본군의 중국인 수용소를 공격하는 모습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일제치하의 지도는...

아무리 봐도 슬프네요.

 

 

 

중국인이지만 이슬람 종교를 가진 Ma Zhanshan이 사용한  그릇과 담요등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종교를 초월해 다들 일제에 저항했다는 것.

 

 

 

그 시대의 돈과 우표, 각종 증서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중국 내부적으로 일제에 저항해 동맹이 이루어지기도 했죠.

 

 

 

 

동북항일연합군대의 사령관 Zhou Baozhong이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를 비롯한 중국인들은 자발적으로 군인이 되어 일제에 저항했죠.

 

 

1936년 서안사변도 알 수 있었는데요.

12월 12일 공산당 토벌을 격려하러 서안으로 온 장개석을

만주군 지휘관인 장학량과 양호성이 감금하고 국공내전의 정지와 항일 투쟁을 호소한 것이죠.

 

장개석은 공산당 토벌을 포기하고 함께 항일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후 장학량은 지휘권이 박탈되고 10년 금고형에 처해집니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가면서도 장학량을 데리고 갑니다.

무려 54년의 연금이 이어진것이죠.

이 이야기는 일요일 아침에 하는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도 언급되었죠.

 

 

 

 

 

왼쪽 상단에서 젊은 시절의 마오쩌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군인, 투쟁가, 혁명가이자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초대 국가주석이죠.

 

 

 

 

항일군이 사용했던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일제의 만행이 전시관에서 보여집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습니다.

 

무방비로 보고나서...

전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거든요.

 

일반전시와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이렇게 유골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난징대학살...

30만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죽어나간 사건이죠.

 

오른쪽 하단의 사진은,

난징 외곽 양쯔강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일본군입니다.

 

백기를 들고 항복한 중국군은 물론,

패잔병을 처리한다는 이유로 모자를 오래 쓴 흔적이 잇거나 손에 굳은 살이 박힌 젊은 남자를

닥치는 대로 모두 모아 기관총으로 죽이고 양쯔강에 쓸어넣었습니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사령관이 도망가면서 난징성이 허무하게 일본군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남아있던 시민들과 병사들에게는 말 그대로 재앙이 닥친 것입니다.

 

중국군 포로와 민간인 남자들은 일본군 총검술 훈련용으로, 목베기 시합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아 석유를 쏟고 기관총을 난사하기도 했습니다.

 

심심하면 중국인을 죽였고, 산채로 묻거나 장작불로 태워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잔인한 인간사냥을 하다가 이제는 여자와 어린이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죠.

집단윤간을 비롯해서 강간을 하고 죽여버리기도 하죠.

10살도 안되는 어린이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잔인하게도 강간직후에 주로 일본군은 팔 다리를 절단하는 잔인한 방식으로 살해했다고 하죠.

 

 

 

 

 

그리고 일본은 의학연구기관을 설치해 마루타 형식으로 생체실험연구를 합니다.

 

일본의 만행...

이에 저항하는 중국인들...

 

하지만 일본의 극우파는 난징대학설은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교과에서도 난징대학살을 언급하지도 않죠.

 

그리고 이때 사상자들의 숫자에 대해서도 4만명 10만명 등 일정치 않습니다.

중국은 30만명이라 말하고 있구요.

 

일본의 사학자들도 중국에서 말하는 숫자를 받아들이는 학자는 거의 없다고 하는군요.

 

 

 

국민당 정부가 떠나고, 민중들은 자력으로 항일 자위조직을 만들어 일본군에 대항합니다.

무책임한 정부를 대신해 스스로 일어나 나라와 스스로를 지켰던 것이죠.

일본군은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꼬마 영웅 동상이 있었는데요.

적극적으로 일본에 맞섰던 목동이었습니다.

 

 

 

일본은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그들 나름의 돌파구를 찾으려 하지만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었죠.

1945년 8월 15일 포츠담 선언 수락과 함께 항복합니다.

일본이 국제적인 자리에서 항복을 선언하는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있었습니다.

 

고개숙인 일본의 최후를 이곳에서 그림을 보는군요.

 

 

마지막 전시관의 마지막은 중국의 국가주석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9월 시진핑 주석은 이곳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69주년 행사를 참여했습니다.

 

다가오는 12월 13일은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날이로군요.

죄없이 칼과 총에 잔인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날...

 

사실 처음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는

'전쟁기념관'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전쟁의 아픈 상처를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전시관을 생각했습니다.

막상 전시를 다 보고나오니 '항일'보다도 '반일' 감정을 더 진하게 만드는 곳임을 느꼈네요;;

 

전쟁영웅과 그들의 무기, 그들의 편지, 사진 등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잔인한 일본군의 학살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쟁기념관은 참으로 얌전하고 양반이었네요.

 

역사를 바로 보는 것은 사실 그대로를 마주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말로 수백마디를 듣는 것보다도 사진 한 장은 더 강렬했습니다.

컬러도 아닌 흑백사진 한장이 던져주는 충격은 너무나도 컸으니까요.

 

 

中国人民抗日战争纪念馆

Beijing, Fengtai Chengnei St, 101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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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