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10~16 국립중앙박물관

정조가 시서화 삼절의 예술이라 칭송했던 표암 강세황의 예술세계. 강세황 특별전

꼬양 2013. 7. 2. 06:00

 

오늘은 조선시대 그림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타임머신을 탄 기분으로 수묵화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

강세황이 살았던 조선 18세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며 문예가 활짝 꽃피었던 시기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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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강세황 탄신 300주년을 기념,

"표암 강세황-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표암유고 등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유물들과 "송도기행첩" 등

산수화, 초상화, 사군자화 등 대표적인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강현, 강세황, 강이오 초상 등 보물 6점이 포함되어 있지요.

 

어려운 그림들이지만, 그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찬찬히 보면

뭔가 보이는 것만 같은 느낌도 받습니다.. ^^

이래서 박물관을 자주 가게 되네요 ㅎ

 

 

 ▲ 여름날의 산수

 

 

 

 

 

이번 특별전은 6부로 구성되었는데요.

1부의 주제는 문인화가의 표상으로 강세황 초상을 한 자리에 모아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2부는 가문과 시대라는 주제로 강세황의 일생을 담고 있는 각종 자료들을 소개하구요,

3부에서는 문인의 이상과 꿈이라는 주제로 안산에서 교유했던 여러 문사들, 화가들과의 만남을 살펴봅니다.

4부에서는 여행과 사생이라는 주제로 실경을 그린 강세황의 그림들을 만날 수 있고,

5부에서는 다양한 화목, 청신한 감각으로 소재와 채색 구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추구했던

강세황의 면모를 조명합니다.

마지막 6부에서는 당대 최고의 감식안이라는 주제로 강세황의 비평이 담겨있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합니다.

 

18세기 대표적인 문인화가 강세황의 대표작품을 한 자리에 모인 이 전시는

역동적인 삶 속에서 평생 이어간 서화 세계를 통해

정조가 삼절의 예술이라 칭송했던 그 예술의 정수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 강세황 초상

 

"내가 어용도사 감동관으로 규장각에 있을 때

화사 한종유에게 부채위에 나의 작은 초상을 그리게 하였는데 제법 비슷하구나"

 

부채에 그린 69세 때 강세황 초상입니다.

부채에 초상화를 그릴 생각, 그 누가 했을까요.

 

짚방석을 깔고 앉아 노송에 기댄 채 독서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강세황의 야외초상이지요.

여유가 가득 느껴지는 초상입니다. ^^

 

 

 

▲ 강세황 초상

 

그의 초상중에서 유일하게 정면상인 그림입니다.

정면상은 츠견으로 그릴 때보다 이목구비를 표현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얼굴의 실재감을 부여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말 생생한 느낌이죠.

 

 

 

 △ 상단- 삼세기영지가(김정희), 하단- 강세황 입기사서(임희성)

 

 

강세황의 집안은 삼대가 나란히 기로소에 들어간 명문가인

"삼세기영지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삼세기영 가문은 다섯 가문 밖에 되지 않을 만큼 보기 드뭅니다.

문중에 전하는 강백년, 강현, 강세황 관련 관직 임명교지, 각종 필묵들,

유고 등을 통해 명문가의 전통을 살필 수 있습니다.

 

특히 강세황은 아버지 강현이 64세때에 태어난 막내아들인데요,

명문가였지만 형 강세윤이 과거 부정 사건에 연루되면서

강세황도 출세를 포기하고 처가가 있던 안산에 정착합니다.

 

근데 첫째 아들 강인이 과거에 합격했을 때 영조는 강세황을 전격발탁합니다.

61세에 영릉참봉으로 시작한 관직생활은 한성부판윤까지 오르고 기로소에 들어갑니다.

 

시서화에 뛰어났던 강세황의 예술가적 재능은 대대로 이어져

강이오, 강이천, 강진이 대대로 화업을 잇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로 따진다면 정년퇴직할 때쯤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는 건데...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죠 ^^

물론, 강세황의 아버지도 대단하십니다.

강세황은 엄청난 늦둥이..였어요 ^^;;;

 

 

 ▲ 묵국도 (강완)

 

단아한 국화가 인사를 합니다.

먹으로 그린 국화그림인데, 강세황의 아들 강안이라고 하였는데.

강안이라는 없고, 강완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그림에 잘못 쓴 거겠지요~

 

 

 △ 송하망폭도, 강안주유도 (강이오)

 

 

강이오에 대해 조희룡은 매화와 산수 그림에 능하다고 기록했지만

현재 전하는 강이오의 그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중앙박물관에는 이 두 폭의 그림이 소장되고 있습니다.

송하망폭도에는 세 명의 인물이 소나무 아래 앉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를 감상하고 있고,

강안주유도에서는 한 노인이 찬합과 술병을 배에 싣고 소나무가 자라있는 기암절벽 아래에서

한적한 뱃놀이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담백하고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데..

저만 그런 걸까요 ^^;;

 

 

 

 △ 현정승집도 (강세황)

 

복날에 개를 잡아 여럿이 먹는 모임을 즐기는 것이 풍속이죠.

그의 벗들은 초복에 청문당에 모여, 강세황에게 그림을 부탁해 훗날의 볼거리로 삼으려 했다합니다.

참. 그림 속에는 강세황도 있습니다. 가운데 앉은 사람이구요 ^^

 

 

 

 ▲ 무이구곡도 (강세황)

 

"무이산 정상에 신선세계 있었으니 산 아래 계곡이 흘러 굽이굽이 맑고 맑다.

그 가운데 아름다운 곳 알고 싶으면 즐거운 뱃노래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게"

 

아홉굽이의 골짜기를 중심을 펼쳐지는 자연 경관을 화폭에 담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연원은?

중국 무이산시에 위치한 무이산 구곡계죠.

 

주희가 강학에 열중한, 성리학의 발원지로 유명해진 곳인데,

성리학의 선현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그리게 된 것 같다고 하는데요.

당시 학자들 사이에는 많이 애호되었다고 합니다.

 

성리학... 글쎄요.

학문을 좋다 나쁘다 따지는 건 좀 그렇지만,

저는 성리학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쨌든, 학자들은 참으로 많이 무이산 구곡계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

 

 

 

 △ 이금산수도

 

"붉고 푸른 여러 나무는 가을 바람으로 무르익고

금빛 푸른 빛 모든 봉우리는 낙조로 피었네."

 

 

검은 바탕에 금으로 그려진 이 그림.

멋진 그림 중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은 이금산수도에 집중되지요.

 

강세황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금니로 그려졌습니다.

이금산수는 조선 중기에 많이 그려졌는데, 후기에는 드물게도 강세황이 남겼네요.

그의 다양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어요.

 

 

 

 

 

 ▲ 약즙산수도 (강세황)

 

 

손자 장희가 여덞 살때 천연두를 앓았는데, 증세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고 해요.

병을 앓을 때 작은 종이를 갖고 그림을 그려달라기에

강세황은 책상머리에 있는 약즙으로 붓가는 대로 이렇게 그렸다죠.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한편으로는 근심을 덜기 위함이요, 한편으로는 그의 요청에 부응한 것이니 부디 잘 간직하여라.

후일에 당시의 정황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는데요.

 

그림이 사진이 되고, 추억이 되는걸까요ㅎ

할아버지의 진한 사랑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 벽오청서도, 강세황

 

한 쌍의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선비를 그린 그림.

선비가 어찌나 부러운지 ^^

이런 여름날 보면 딱인 그림이라 생각되는데요.

벽오청서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종종 그려졌던 주제죠.

 

개자원화전, 심석전벽오청서도를 따라한 작품이지만,

방작이 원작보다 뛰어난 창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이 그림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구요,

잠시 동안 중앙박물관으로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 칠탄정십육경도, 강세황

 

경남 밀양 단장면 미촌리에 위치한 칠탄정이라는 정자 주변의 빼어난 경치

16곳을 노래한 시화첩을 말합니다.

 

강세황은 안가본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수많은 풍경들이 녹아있는데,

사진을 찍는 것보다 사실 그림 그리는 게 더 시간이 오래걸리고 힘들텐데

그는 이렇게 그림으로 풍경을 남겼네요.

 

덕분에 우리는 조선시대의 산수를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거구요.

 

이익의 시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화가가 그린 초본이 수록되어 있고

그 뒤 강세황의 그림에 강세황과 친구 이현환의 칠언절구가 면마다 1수씩 적혀있습니다.

일반 시화첩에 비해 첩의 크기가 큰 편이고

보관상태는 좋지 않지만 강세황 특유의 담채와 인물 표현의 특징들이 보이는 화첩이죠.

 

 

 

 

 

 

 

 

 △ 영대기관첩, 강세황

 

 

 

 

 △ 태종대도, 강세황

 

 

송도 (현재 개성)와 북쪽의 여러 산 주변의 풍경을 그린 16점의 그림과 3건의 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개성 주변 명승지 그림을 한데 모은, 현존하는 유일한 서화첩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죠.

 

강세황 스스로 세상사람들이 일찍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라 평했듯이

조선시대 여느 그림과 달리 원근법, 음영법 등의 서양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가까운 곳은 크게, 먼 곳은 작게,

수묵위주지만서도 노란색, 청록, 갈색 등의 맑은 담채도 사용했구요.

 

 

 △ 우금암도

 

 

아들 완이 부안현감으로 재임할 시기,

부안의 변산 일대를 유람하며 그린 실경산수화입니다.

 

명승지를 지나며 빠른 필치로 각 장소의 특징을 사생한 작품인데,

이 시기 금강산을 주로 그리던 다른 화가들과는 다른 독보적인 행보죠. ^^

 

금강산 말고도 아름다운 산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는 것!

 

 

 

△ 산수, 사군자도

 

 

 

 △ 난죽도권, 강세황

 

말년의 대나무와 난초 그림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3m에 가까운 대폭의 두루마리죠.

난초는 간들간들 웃는 듯 하고 대나무는 한들한들 춤을 추는 것 같은,

모두 취한 모습을 띠고 있다며 그는 그렇게 글을 적어놨습니다.

 

 

 

 

 △ 십로도상첩

 

강세황이 마지막 기년작 중 하나인 십로도상첩.

 

 

 △ 협접도, 강세황 글, 김홍도 그림

 

 

 △ 행려풍속도, 강세황 글, 김홍도 그림

 

김홍도는 강세황의 제자지요.

그리고 김홍도의 그림을 얻은 사람들은 강세황을 찾아와 한 두줄의 평을 써주기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강세황의 화평이 남아있는 그림 중에 김홍도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 병풍은 김홍도가 34세 되던 해에 그린 것으로 폭마다 강세황이 평을 남겼는데

"신품의 경지에 들어갔다",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듯 하다" 등 그림의 품격에 대한 칭찬과

생생하고 유쾌한 감상평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시서화 삼절, 18세기 예원의 총수로 알려진 강세황의 예술세계.

그를 통해 화려하게 꽃 피운 글씨와 글.

.

그림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흘러가던지요.

한 두번 봐서는 이 그림들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저도 보는 내내 많이 어렵더라구요.

집에 와서 도록을 한참동안을 살펴봤답니다. ^^;;;

근데 수묵화는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이 전시회를 보러 가는 거겠죠?ㅎㅎ 

 

강세황 특별전이 예전에 간송미술관에서 열렸을 때, 줄을 서면서 사람들이 관람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전시기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무료로 강세황의 그림을 볼 수 있고,

특히 81건 103점의 그림을 만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기회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

 

 

- 전시기간 : 2013. 6.25~8.25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 전시유물 : 송도기행첩 등 81건 103점

-입장료 :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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