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10~16 국립중앙박물관

145년만에 한국에 돌아온 의궤, 그 감동의 전시

꼬양 2011. 8. 1. 07:30

[전시리뷰] 병인양요 이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한국으로 오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쯤 오려나 기다렸는데 정말 이제는 돌아왔습니다. 조선왕조의 의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인정받아왔습니다. 특히나 이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국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고 합니다.

 

참, 의궤란 의식의 궤범이라는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국조오례의가 국가와 왕실의 기본 의례를 규정한 의례서라면 의궤는 이러한 의례를 예법에 맞게 행하기 위한 전례를 기록한 책입니다. 왕실과 국가에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후 준비, 실행 및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왜 의궤를 만들었을까요? 의식이나 행사의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어 후대 사람들이 법도에 맞게 의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사업의 전말을 자세히 기록하여 이후에 참고하여 시행착오 없이 원활하게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의궤는 조선 건국 초기인 15세기부터 만들어졌지만 현재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것들만 남아있다고 합니다.

 

 

 

참, 전시중인 공간은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의궤가 오랜시간 전시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서책이기 때문입니다. 빛과 공기 노출에 약하기에 오랜시간 전시를 할 수 없기에 이 전시기간을 이용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간 때는 언론공개회이기때문에 다른 신문사, 방송국 기자분들과 함께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외규장각 의궤의 면모를 6부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 의궤의 개념과 구성을 설명하고, 정조대에 강화도 행궁(行宮)에 외규장각을 완공하여 어람용 의궤 등 왕실의 중요 자료를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한 내용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2부부터 6부까지는 외규장각 의궤를 내용별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2부의 주제는 ‘왕권과 통치’로서 의궤 속에 보이는 조선시대 통치 이념의 면모를 살펴보고자 종묘제례, 친경, 영건, 녹훈 관련 의궤를 전시합니다.  3부는 ‘나라의 경사’로서 왕실의 혼례, 책봉, 존호 등에 관한 의식을 기록한 의궤를 다룹니다.  4부의 주제는 ‘왕실의 장례’입니다. 조선시대 왕실 의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죽음과 관련된 의식이었습니다. 5부의 주제는 ‘추모와 기억’으로 3년상을 마친 후 혼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는 부묘, 세상을 떠난 왕과 왕비에게 일생을 함축한 이름을 올리는 시호, 왕의 초상을 그리는 영정 제작 등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선왕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추모하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구요. 마지막으로 6부에서는 1866년 병인양요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영녕전의 증축, 영녕전수개도감의궤

 

 

 

 

인선왕후 왕비 책봉, 인선왕후책례도감의궤

 

의궤에는 나라의 경사도 기록을 하죠. 가례라고 함은 원래 왕실의 큰 경사를 뜻하는 말로, 왕실의 혼인이나 책봉, 존호, 각종 진연, 진찬 등의 의식 예법을 뜻합니다. 조선후기 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가례는 왕실의 혼인 의식, 그중에서도 특히 왕이나 왕세자의 혼인을 뜻합니다. 조선시대 국왕은 대부분 앞의 왕이 사망하여 장례가 진행되는 도중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국왕의 즉위식을 기록한 의궤는 거의 없습니다.

 

 

 

정조 왕세손 책봉 옥도장

 

영조가 정조를 왕세손으로 책봉할 때 내린 옥인입니다. 옥인의 인면에는 "왕세손인"이라고 새겨져있습니다.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의 책봉례가 거행될 때 교명과 함께 죽책, 옥인이 내려집니다.

 

 

풍양조씨 만영의 딸로 순조의 장남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어 세자빈이 된, 후에 조대비로 불렸던 신정왕후의 기록도 의궤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세손인 헌종을 낳았으나 불행히도 부군인 효명세자가 22세 나이로 요절해서 왕비는 되지 못했죠. 다만 그녀의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의 신분이 되었으며 시어머니 순원왕후가 승하한 후에 대왕대비가 되었습니다. 83세로 장수하면서 헌종, 철종, 고종 대에 풍양조씨 세도 정치의 중심인물로 안동 김씨의 권력을 견제하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순원왕후와 신정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의식, 순원왕후신정왕후존승도감의궤

 

 

 

 

 

 

 

왕실의 장례는 어떻게 치뤄졌을까요? 왕과 왕실의 장례는 나라 전체의 애도속에서 엄숙하게 치뤄졌겠죠? 왕이 승하하면 당일로 장례절차를 담당할 임시 관서인 빈전도감, 산릉도감, 국정도감 등이 설치되어 일을 주관합니다. 국왕의 승하가 선언되면 5일간 그 혼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후 입관하였다고 합니다. 예법에 따라 입관후 5개월동안 빈전에 시신을 모신 재궁을 안치했는데 빈전도감에서 담당합니다. 산릉도감에서는 무덤인 산릉의 조성을 담당했습니다.

빈전에 모신 재궁을 장지인 산릉까지 모시는 의식은 왕이 임종한 지 5개월이 되는 달에서 길일을 골라 치룹니다. 국장도감이 주관하는 국장행렬은 재구을 대여에 옮겨 실은 후 노제를 거쳐 장지로 향합니다. 왕릉 조성이 끝나면 우제를 지내 혼을 위로하고 신주를 모시고 궁궐에 돌아와 혼전에 모십니다. 

 

사도세자 무덤의 이장

 

사도세자 새 무덤 조성, 현륭원원소도감의궤

 

그리고 사도세자 새 무덤조성의 기록도 만나보게 됩니다. 수원부 화산에 사도세자의 새 묘소인 현륭원을 조성한 내용을 정리한 의궤인데요. 원래 상, 하 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의궤는 상책만 남아있다고 하네요.

 

사도세자가 대리청정할 때 사용한 휘지

 

의소세손의 장례,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세살 어린나이에 죽은 사도세자의 맏아들 의소세손의 장례에 관한 의궤인데요. 상, 하 2권의 책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책에는 면류간, 푸른색 겉옷 등 의소세손의 각종 복완이 선명한 색감의 채색 도설로 수록되었습니다.

 

의소세손의 장례

 

의소세손 무덤의 부장품

 

숙종의 일생을 의궤로 살펴볼까요? 드라마 "동이"에서 깨방정 숙종을 기억하는데요. 조선 19대 임금 숙종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장남으로 일곱살에 왕세자가 되었고 14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숙종의 등극은 첫째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한 이상적인 예였기에 숙종은 처음부터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정치적인 분위기는 붕당간에 왕위 계승 및 학문적 견해에 대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해서 긴장감이 넘쳤다죠. 숙종은 45년 10개월간의 재위 기간동안 약 65건의 의궤를 제작했고, 아직 형식적 체제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당당한 품격과 고전적인 깊이가 있습니다.

 

숙종과 인경왕후의 혼례, 숙종인경왕후가례도감의궤

 

 

 

명성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심, 명성왕후부묘도감의궤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의 사당, 경우궁도 

 

 

 

의궤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시.

그리고 외규장각 의궤가 어떻게 귀환되었는지, 어떻게 프랑스에 가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1866년 병인앙요 당시 약탈당했던 의궤, 하지만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 존재와 행방이 알려졌고, 이후 국내 학술단체와 정부의 추진운동으로 1993년도에 한권이 가장 먼저 돌아오게 되었죠. 그리고 작년 G20 정상회의 중에 우리나라와 프랑스 양국 정상의 합의와 이후 후속조치에 따라 외규장각 의궤가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왔던 외규장각 의궤 297권이 145년만에 모두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의궤는 단지 한 때에만 행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만세에 걸쳐 행해지도록 만든 것이다.

- 세종실록 10년 9월 4일 기사 중

 

 

이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 병인양요에 참전했던 프랑스 해군 쥐베르의 "조선원정기 중"

 

 

145년만에 한국의 품으로 돌아온 의궤. 우리는 의궤를 통해서 미술사, 문화사, 조선시대의 사회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궤는 통치철학과 운영체계가 반영된 대표적인 기록문화입니다. 보면 볼수록 놀라움만 가득합니다. 이런 놀라움과 경이로움, 뿌듯함을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이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외규장각 의궤가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이 반환운동이 종료되기까지 무려 20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매체에 나와있지 않았지만서도 고생했을 모습에 마음이 참으로 아팠습니다. 프랑스 측의 지연 작전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구요. 이 외규장각 의궤반환을 통해 해외에 나가있는 문화재들의 한국의 귀환할 날도 머지 않았으리라는 한발짝 앞선 설렘도 가져봅니다.

 

 

145년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 기간 : 2011.7.18~2011.9.18

- 관람료 : 무료

- 전시시간

화,목,금: 오전 9시-오후 6시
수,토: 오전 9시-오후 9시
일,공휴일: 오전 9시-오후 7시
*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추천한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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