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10~16 국립중앙박물관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 조선묘지명전

꼬양 2011. 4. 11. 07:30

[전시리뷰] 누구나 한번 세상에 태어나면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며, 그렇다고 천년만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나는 어떤 이로 어떻게 기억될 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맞으나 내 이름과 내 생, 죽음을 기록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묘지명입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 그리고 망자가 세상에 기억될 수 있게끔 하는 연결고리, 묘지명. 조선묘지명전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왠지모르게 무섭고 섬찟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시회가 그렇게 무섭고 음습한 느낌이 들 것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서 조선시대,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엿볼 수 있기에 오히려 두근거리는 느낌입니다.

묘지명이란 무엇일까요? 묘지란 무덤안에 묻힌 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기 위하여 무덤 내부 또는 그 부근 땅속에 남기는 기록입니다.

묘지에는 주로 묻힌 이에 대한 칭송이나 찬양 혹은 추도의 내용을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 명이 추가 되는 경우에 이를 묘지명이라 구분하여 부릅니다.

 

배처승 묘지, 통일신라시대 

 

묘지명은 삼국시대에 처음 등장한다고 합니다. 위에 보이는 게 배처승 묘지입니다. 895년에 돌아가셨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지금이 2011년이니.. 이 묘지명의 나이는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겠죠.

 

참, 모두 다 묘지명이 같은 스타일로 쓰여진 건 아니구요. 고려시대, 조선시대 모두 다릅니다. 고려시대에는 죽은 이의 출신지와 생몰일시, 가족관계, 발자취, 생애를 요약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운문의 명이 포함된 묘지명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관료계층의 것으로 12세기가 가장 많죠.

 

 

황진 가장초, 조선시대 

 

황진이 1666년에 32세의 나이로 죽자 그의 형이 쓴글입니다. 행장이란 그 사람의 일대기를 정리한 글인데, 그 행장을 집에서 가족이 지으면 가장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황진 가장초"가 되는거죠.

 

 

 

 

조선전기의 묘지명은 고려시대에 비해 내용도 다양하고 형태, 재질도 다양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도자기로 만든 묘지명의 출현입니다.

 

 

 

부장품으로 아주 작은 도자기들과 인형들도 발견되곤 합니다. 정말 이걸 어떻게 다 빚어냈을까 놀라울 뿐이구요. 실제 크기는...

정말 보면 놀랍습니다. 사진을 이리 찍어서 그렇지 정말 작습니다.

 

이수광 묘지명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수광의 묘지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 판으로 제작된 네모난 판형의 백자청화 묘지명으로 일정한 두께와 밝은 색조, 매끈한 유약 처리 등에서 조선 중기 명문 사대부 묘지명의 세련되고 정제된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연군주 부장품 (조선 순조)

 

그리고 왕실에서 제작한 묘지명은 일반 사대부에서 만든것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그리고 성격상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는 왕과 왕비의 능지이고 다른 하나는 세자를 비롯한 왕자, 왕녀, 왕손의 묘지입니다.

능지는 석제로 제작한 대형의 묘지로 왕의 행벅을 기록하고 이를 탁본으로 제작하여 왕실에서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김경한 묘지 

 

좀 독특한데요, 밑이 뚫린 단지에 쓴 묘지입니다.  

 

 

정귀웅 묘지명 (조선영조)

 

정몽주의 7대손인 정귀응의 묘지명입니다. 신주를 담아 묻은 함의 겉면에 묘지명을 적었습니다. 속은 비어 있고 네 곳에 뚜껑을 고정시킨듯한 정사각형의 귀가 약간 위로 솟아 있습니다. 현재 뚜껑은 없는 상태이구요.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받았으나 할머니의 상을 치르다가 슬픔이 지나쳐 몸을 훼손하여 23세에 죽었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성씨를 알 수 없는 용득묘지

 

제목이 없는 묘지명인데요. 아우의 성품을 칭찬하고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은 사실을 적고 여러 사람들이 천연두로 계속 죽는 슬픔을 겪고 있음을 탄식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이런 기록이 없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요? 이들을 기억하지도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기록의 중요성이란 게 이렇게 소중하구나라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에는 한글로 적은 묘지명까지 등장하는데요.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꾸준하게 이어온 묘지명을 통해 각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이야기. 몸은 비록 아스라져 흙으로 돌아가지만 묘지명은 수백년의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남습니다. 우리는 그 기록을 토대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알아갑니다. 그들의 생과 사의 연결고리인 묘지명을 통해 마치 과거로의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입니다. 

 

 

 

전시명 : 삶과 죽음의 이야기, 조선묘지명

국립중앙박물관 1층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기간 : 2011. 3.1 ~ 2011.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