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10~16 국립중앙박물관

1300년만의 귀향, 왕오천축국전의 세계 첫 공개전시

꼬양 2010. 12. 21. 08:00

 프랑스의 한 동양학자가 둔황의 막고굴에 3주간 머뭅니다. 그는 그곳에서 다른 동료학자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죠. 예상 밖의 엄청난 발견으로 긴장하고 흥분이 묻어나는 편지글에는 그가 손에 넣은 잔권 상태의 두루마리 문서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걸 즉각 알아챘음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눈먼 거북이 한 마리가 바다 한 가운데서 나무조각을 만나는 것처럼 고문서속에서 이 문서를 찾아낸 건 거의 기적에 가깝습니다. 처음에 혜초가 신라인이라는 사실도 몰랐다고 합니다. 식민지라는 특수성때문에 일본학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나중에 국내학자들에 의해 알려지게 되죠.

 

국사책에서 많이 봤던, 이 여행기. 왕오천축국전. 왜 학자들은 이 기록에 열광하고, 외치는 걸까요? 세계 첫 공개 전시를 한국에서 하는 의미는 무얼까요?

 

 

3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난 동아시아 출신은 대략 860명정도 된다고 합니다. 혜초의 바로 앞 시대인 7세기에는 62명에 불과하고 생활율은 30% 이내에 그쳤다고 합니다. 그나마 살아 돌아온 인물 가운데 극소수만 자신들의 기록을 남겼으며 그 가운데도 다시 일부만이 지금까지 기록이 전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왕오천축국전인 것이죠. 펠리오가 발견한 유일무이한 두루마리 필사본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요.

 

담황색 닥종이로 아래, 위가 떨어져 나간 기록. 연구자들은 왕오천축국전이라고 부르지만 달리 부리기도 합니다. 프랑스 학자 펠리오가 둔황에서 찾아냈기에 "둔황본",  발견자의 이름에 따라 "펠리오본". 또는 "프랑스도서관본"이라고도 합니다.

 

혜초가 걸었던 길을 따라 우리도 실크로드를 걸어봅니다.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서역을 거쳐 둔황을 지나 신라의 경주까지 이어진 그의 여정을 따라가봅니다.

 

 

 

황금대구

 

실크로드의 길을 나타내는 지도

 

실크로드의 길의 주 무대는 중앙아시아입니다. 흔히 투르키스탄, 즉 투르크인의 땅이라고 불리죠.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 천산산맥 남쪽의 산록지대를 따라 형성된 서역북도는 카슈카르, 쿠차, 카르사르, 투루판 등의 오아시스가 연결되어 있는 길로, 혜초가 직접 지났던 길이기도 합니다.

 

경교석비 

 

기독교의 한 종파였던 경교, 네스토리우스파라고 하죠. 이 비석은 경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중국이니까 왠지 불교일 것만 같은데, 이 석비는 기독교도의 무덤 앞에 세워져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7세기 실크로드를 통해 이 경교도 중국에 들어왔구요.

 

 

나무인형 (남자, 여자, 돼지)

 

이 인형들은 투루판 지역의 나무인형으로 4~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말을 탄 인형

 

중앙아시아 지역 기후의 특징은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많다는 점입니다. 물이 있는 지역, 즉 오아시스 지역을 중심으로 생존에 필요한 자원, 물품을 교환하는 무역이 일찍부터 발달해왔습니다. 무역은 낙타 행렬을 이끌고 목숨을 걸면서 사막을 오갔던 대상들에 의해 더욱 발달하였고, 오아시스가 있는 도시는 거점도시로 점점 커져갑니다. 대상들은 부피가 작으면서 가치가 큰 비단, 보석, 향신료 등을 운송하였고, 이 길이 바로 실크로드가 된 것입니다.

 

여인이 그려진 비단

 

호탄의 왕 

 

중국 바깥의 국가 호탄. 중국 외의 국가에서 최초로 비단을 생산한 곳이라고 하죠. 이곳에서 우리나라 문익점 이야기와 같은 전설이 전합니다.

호탄의 국왕은 비단의 비밀을 알기 위해 중국의 공주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공주에게 "우리나라는 비단이 나지 않으니 비단 옷을 스스로 해 입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중국 공주는 자신의 머리 장식에 누에 고치와 뽕나무 종자를 숨기고 호탄으로 들어왔고 호탄의 비단직조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나무빗 

 

 

 

새머리 모양 베개 

 

채색토기 

 

남색 방한화 

 

신장위구르자치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 중 하나입니다. 8세기 투루판 인들이 신었던 비단 방한화입니다.

 

복화와 여와 

 

여기서 중국 고대신화에 대해 공부도 할 수 있는데요. 남녀신인 복화와 여와. 오른쪽의 복화는 왼손에는 원을 그리는 구를 왼쪽의 여와는 오른손에 사각형을 그리는 도구인 규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천지창조를 위한 도구로 불려지죠. 두 신의 머리 중앙에는 빨간 책이 있는 둥근 태양을 배치하고 아래쪽에는 두꺼비 머리가 있는 둥근 달을 그리고 주위에는 각종의 별들을 그려져있습니다.

 

 위구르 문자로 쓰여진 마니경

 

 

 

 

중국의 중원지역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하서화랑에 위치하고 있는 둔황. 서역의 문화와 중국의 문화가 만나는 관절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4~5세기 중국의 영향이 약화되자 둔황은 실크로드의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남측 교외에 인도의 석굴사원 양식을 모방한 무수한 석굴사원, 즉 천불동이 건립됩니다.

둔황 천불동의 내부에 장식된 수많은 벽화와 조각에는 동서 문화의 영향이 농후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의 설명을 듣는 주한 프랑스대사 

 

그리고 이 전시회의 하이라이트, 왕오천축국전.

727년 11월 상순 혜초는 당나라 안서도호부가 있는 카라샤르에 도착합니다. 바다를 통하여 인도에 도착한 혜초는 불교의 8대 성지를 순례한 후 서쪽으로 간다라를 거쳐 파미르 고원을 넘습니다. 그가 직접 들었거나 겪은 것을 기록한 지역은 모두 40여곳입니다. 8세기 초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그는 한 권의 책 왕오천축국전으로 남깁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이 왕오천축국전의 중간을 전시하길 바랬습니다. 끝 부분일 경우 아무래도 펼쳐서 전시하기에는 안정성이 떨어졌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 테마에 맞춰 왕오천축국전은 끝부분으로 전시 돼 있습니다. 정말 보기 드물게 말입니다.

 

 

청동마차행렬 

 

비단은 서쪽으로 불교는 동쪽으로, 어느덧 길은 동쪽으로 다다르게 됩니다. 둔황에서 동쪽, 란저우를 거쳐 장안에 이르는데요.  장안에 모였던 각종 문물은 보다 동쪽으로, 신라 경주에까지 이릅니다.

 

뿔이 하나 달린 동물(유니콘)

 

거짓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마에 뿔이 돋아나 뿔로 사람을 받아버린다는 이 동물. 이 동물이 지금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웃음도 피식납니다.

 

어느덧 실크로드와 둔황, 전시회를 다 관람했습니다. 정말 오랜시간,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 머물러 있는 이 유물을 보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잠시 머물다가는 석달동안만이라도 많은 분들이 이 왕오천축국전을 함께 봤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세계 3대 여행기 중 하나로 손꼽히는 문화유산. 1283년만에 한국에 최초 공개되는 귀중한 유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파미르 고원 동쪽, 혜초의 여정을 따라 구성된 이 전시는 주변 지역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 삶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잊지 못할 전시회였어요^^

 

ㅇ전시명 : 실크로드와 둔황 - 혜초와 함께 하는 서역기행

ㅇ전시유물
 -중국 신강위구르자치구, 감숙성, 영하성 등 실크로드 관련 유물 200여 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왕오천축국전’ 대여 전시

ㅇ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Ⅰ.Ⅱ

ㅇ전시기간 : 2010. 12. 18 - 2011. 4. 3

ㅇ관람요금 : 성인 ; 10,000원, 중고등학생 ; 9,000원, 초등학생 ; 8,000원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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