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강원도

[강원도여행] 강원도의 유일한 세계문화유산, 장릉

꼬양 2011. 2. 23. 07:30

[강원도여행] 세상에 억울한 일도 많고 쓸쓸한 일도 많다지만 어느 한 왕처럼 기구하고 쓸쓸하게 생을 끝낸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칼날같이 시린 겨울바람이 부는 어느 날 무궁화 열차를 타고 떠난 여행에서 만난 장릉.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세워진 능이라서 능이 형태도 많이 다릅니다. 강원도에서 유일한 세계문화유산 장릉. 그 쓸쓸한 왕의 무덤으로의 여행 느낌을 적어봅니다.

 

장릉

 

 

 

장릉에서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세계유산 조선왕릉이라 써진 비석입니다. 추운 날씨덕분인지 인적도 뜸합니다. 덕분에 해설사의 설명을 독차지하는 행운도 안게 되지요.

 

조선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능이 42기, 원이 13기, 묘가 64기입니다. 무덤 주인의 신분에 따라 능, 원, 묘로 나뉘는데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며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진의 무덤을 말하고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라고 합니다.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1기가 강원도 영월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구요.

 

 

장릉에 들어서서 길을 걸어봅니다.

 

 

너른 마당은 참으로 깨끗합니다. 그리고 재실과 단종역사관도 보입니다. 이날 단종역사관은 굳게 닫혀있어서 관람은 하지 못했네요. 다음에 또 찾아오라는 뜻으로 알고 아쉬운 마음을 접습니다.

 

 

나무계단을 따라 장릉으로 올라갑니다.

 

 

능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다른 능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가 "ㄱ"자로 꺾여있어 참으로 독특합니다. 일반적으로 일자형으로 조성되는데 이곳만큼은 "ㄱ"자라는 거죠.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 길이 예쁘게 잘 뻗어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런 길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장릉을 찾았을까요? 오른쪽에 비탈길을 오르고 올라서 장릉을 찾았다고 하네요. 능침 앞에서 바라보는 주변 전경은 정말 시원합니다.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았던 단종이지만, 이런 멋진 경치를 곁에 두고 있어서 더이상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참, 그리고 장릉의 특이한 점은 봉분 좌우에 세우는 기둥인 망주석에 조각하는 세호가 없습니다. 보통 동물의 형상을 갖추는데 이곳만 유독 아무런 세호가 없죠. 또한 무인석도 없습니다. 문인석과 무인석이 같이 있어야함은 물론이나 이곳에는 문인석만 자리잡고 있죠.

 

 

 

이제 길을 내려가 정자각으로 가봅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길은 참으로 운치있습니다.

 

 

 

이제 제향공간으로 진입합니다. 홍살문 앞으로 정자각이 보여야 마땅하나 홍살문 앞은 휑합니다. 정자각은 어디에? 오른쪽에 있죠. 사진상으로는 안 보여요^^;;; 그리고 그건 아시죠? 살짝 올라온 길이 신도, 옆으로 난 길이 어도. 신도는 신이 다니는 길이며, 어도는 임금이 다니는 길입니다.

 

 

왼쪽 : 정자각, 오른쪽 : 비각

 

 장릉의 정자각

 

"ㄱ"자로 꺾여 들어가는 정자각. 장릉을 보고 있는데 관광객들 몇 분이 오시더라구요. 그 분들입니다. 가족여행을 오신 것 같았는데, 이분들 역시 저처럼 문화해설사를 독차지하는 행운을 누립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이용했던 진입로

 

예전에 길이 없었을 당시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던 길입니다. 비탈이라 상당히 가파랐는데, 용케도 잘 올라가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무척이나 위험했던 길인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장릉을 보고 갔다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지금은 진입로 정비가 잘 되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리고 장릉의 독특한 점 하나, 정자각에서 왕의 능침이 보여야 정상이나... 그냥 비탈만 보입니다. 아무리 보려고 노력해도 보이지 않는 단종의 능침.

 

 

영천

 

제향공간 곡선의 참도 옆에 설치된 영천입니다. 일반 능역의 제정(어정)으로 가뭄과 홍수에도 마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곳을 본 신하 박기정이 조정에 알리자 정조가 친히 '영천(靈泉)'이라 이름을 정했다 하는군요.

 

 

 

강원도라서 그런걸까요. 장릉 주변의 나무들과 산이 너무나도 아름다워보였습니다. 능침에서 바라본 경관도 그렇거니와 내려와서 바라보는 것도 참 좋더군요.

 

 

재실

 

 

이곳이 다른 왕릉과 다른 구조를 띠는 것은 단종이 몰래 암매장되고 능침 앞이 좁아서 그렇습니다. 능역이 조성된 숙종 때는 임금 단종이 아니라 세자 '노산군'이었기 때문이죠. 중종 때 첫 능지 확인 후 숙종대에 이르러 혼유석과 장명등, 석호, 석양, 망주석 등 석물을 정비하고, 영조대에 제향공간을 만들고 정자각과 수복, 수라간, 그리고 산신석, 예감 등을 배치하고 정려각과 배식단, 장판옥을 만들었기 때문에 릉이 독특한 형식을 띠게 되었던거죠.

   
능의 형식이 다르면 어떻습니까. 한때는 노산군이라 불리었어도 그는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도 우리는 왕으로 기억합니다. 그의 지위에 걸맞게 그는 아름답고 장엄한 경치를 매일 바라보며 이제는 편히 쉬고 있습니다.

 

장릉의 능침에서 바라보는 나무들과 첩첩산중의 멋진 경치가 계속 떠오릅니다. 코끝을 스치던 차가운 바람도, 볼을 얼얼하게 만들었던 매서운 추위도 그렇게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아침이군요. ^^ 

 

 

오늘 하루도 힘내시길..ㅎ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구석구석(http://korean.visitkorea.or.kr)에서 꼬양의 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