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여행] 러시아에서도 동쪽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 우리에게는 연해주로 더 잘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익숙한 것은 국사시간에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죠. 동방의 진주라 불리는 이곳에, 우리 민족은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일제 치하에 있어서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피와 땀을 흘렸구요.
안중근의사와 이상설 선생, 최재형 선생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분들이 이 연해주를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한국인들이 살았던 신한촌에는 한국인들은 없고, 이제 러시아인들만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들은 어디로 간걸까요?
비만 쓸쓸히 남아있던 그 곳의 모습.
신한촌 기념비
신한촌 기념비를 보러가는 길은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추운 러시아,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는데...
대체 기념비는 어디있단걸까?
낯선 러시아 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게 바로 신한촌 기념비 입구라는 것!
아, 어려운 키릴문자 >.<
어쨌든.. 둥그렇게 쳐진 철문 사이로 비가 보입니다. 이것이 신한촌 기념비입니다.
1863년 연해주에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신한촌이 형성되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신한촌은 일제 치하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스스로 땅을 일구며 자리를 잡았지만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더 척박한 한 곳으로의 이주가 진행되고. 한국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신한촌도 사라지게 되었고,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못할뻔했죠. 하지만 1999년 8월 한민족 연구소가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아 신한촌 기념비를 건립하면서 우리는 이곳을 찾아올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기념비는 3개의 큰 기둥과 8개의 작은 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념비에는 ‘민족의 최고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며,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정신이며.. 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죠.
주변을 덮은 하얀 눈때문에 여덟개의 작은 비석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저 비석 앞에 꽃이라도 한 송이 두고 와야 하는게 바람직하나 철문이 굳게 닫혀있어 철조망 사이로 그냥 사진만 찍을 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신한촌 기념비의 건립을 알리는 비석에는 우리민족의 이야기가 짧게 쓰여있었습니다.
그 짧은 글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녹이 슨 철문 위로는 눈이 소복히 쌓이고...
그리고 길에도 눈이 어찌나 많이 쌓였는지 발도 푹푹 빠졌어요.. ㅠㅠ
신한촌 기념비 근처 도로를 달리는 차
이렇게 추운 곳에서 마을을 형성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던 우리 민족.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주변에는 높다란 아파트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 신한촌.
하지만 기념비만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50만 한민족의 근원지이며 마음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신한촌이 형성된 지 100여년, 중앙아시아로 흩어진 지 60여년이 지나도록 기념물 하나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던 신한촌.
이곳에 이 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높은 아파트 사이에서 철문에 둘려쌓여 있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도 하지만.
이 비석이 있음으로 인해 우리는 이 신한촌을 더욱 마음에 담아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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