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안중근 의거 100주년이 되었던 해입니다. 101주년인 2010년은 좀 조용하게 지나가는 거 같군요. 추운 러시아땅,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안중근 기념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쁨은 아주 잠시, 슬픔이 몰아쳐옵니다. 제가 이 비를 보고 슬펐던 이유? 눈물까지도 얼 수 있는 추운 날씨에, 왜 눈물을 글썽여야 했을까요?
안중근 기념비가 위치해 있는 이곳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립의과대학교 앞입니다. 의과대학안에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어떤 이는 안중근 의사가...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의로운 지사를 뜻하는 의사(義士)가 아닌 병을 치료해주는 닥터, 의사(醫師)였기에 의과대학 안에 있다며 우스개소리로 말을 합니다.
웃자고 하기에는 참으로 슬프죠. 더 슬픈 이유들이 이 비석을 보고 있노라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따라옵니다.
뭐라고 쓰여있을까요?
하필.. 비석의 글씨는 초록색이네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글씨. 여기 비석의 글씨 컬러 코드가 그린인가?
자세히 살펴보면 "인류의 행복과 미래,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라고 쓰여진 걸 알 수 있네요.
눈 크게 떠서 봐도.. 잘 안 보이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립의과대학교
주립의과대학건물입니다. 눈이 소복히 쌓인 교정. 눈을 치우는 인부들과 공부하러 들어가는 학생들, 나가는 학생들이 오고가며 학교는 생기가 돕니다.
안중근 기념비를 만나는 시간. 협정서가 눈에 들어오네요. 응? 왜 하필 여기에 세웠을까요? 인류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서 안중근 의사가 폭탄 대신 메스라도 들었어야 했나요?
글씨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서글프고, 여기 있지 말아야 할 비가 여기에 있어서 더욱 더 속상하고.
무거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네요.
러시아와 중국에 건립된 안중근 의사 관련 기념물은 크라스키노의 단지동맹비와 블라디보스토크의 안중근의사역사기념비,하얼빈 인근 모얼샨 공동묘지의 동상 등 3곳입니다. 이 세 곳의 공통점은? 모두 엉뚱한 곳에 세운데다 무성의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점. 더불어 안 의사의 유업을 되새기자는 본 뜻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다른 지역의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 역시 다른 곳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 같지만, 이곳은 좀 더 그랬습니다.
2002년 건립된 안중근의사역사기념비는 안 의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구한촌, 신한촌에 세워져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여기에서 동 떨어진 주립의과대학 건물 앞에 세워져있구요.
더구나 비석에는 안 의사에 대한 설명도 없고 옆 자리의 협정서에도 ‘반일본 독립 운동에 있어서 동양의 상징인물’이라는 모호한 문구만 적혀있네요. 러시아 땅에 비석 하나 세우는데도, 우리는 할 말도 못하면서 이래야 할까요.
1937년 연해주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던 러시아 정부는 항일 유적이나 고려인의 활약상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설명 모든 게 없던 거였습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우리 땅을 뺏고 내쫓을 땐 언제고.. 비석 하나 조차 엄한 곳에 세우고, 글귀조차 이렇게...
인정할 것은 쿨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중국 동북공정에, 러시아의 이런 행위에 치여서 우리 한국사는 완전 등터지네요-_-;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기 전에 머물던 곳이 블라디보스토크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크게 보면 어느 곳에 세워져있든 의의를 갖고 있으면 되겠지만, 그것보다도 장소적 의의까지 갖춘 곳에 이 비석은 세워져야 마땅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던 구한촌이나 신한촌이라도 말이죠. 의과 공부를 하러 드나드는 러시아 학생들이 이 기념비의 뜻을 알까요? 오히려 신기하게 이 비를 보러 오는 한국 관광객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죠.
그래도 이 비석 하나 세우는데 3년이 걸렸다는데, 이곳에서라도 이 비석 보는 게 어딘가란 생각도 잠시 해봅니다. 어쩌면 이 비석은 아예 없었을 지도 모르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흩어져갔을지도 모르니까요.
비를 보고, 다시 버스로 이동하는 길. 내리막길이라 조심조심 내려갔죠. 마음에 납덩어리 몇 개를 매달아 놓은 냥, 너무나도 무거웠습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저 비석은 비석이 아냐...
혼자 터덜터덜, 길을 건너고 버스를 타고...
주립의과대학교내의 눈은 꽁꽁 얼어 빙판길이 되었고, 학교 앞 도로의 눈은 지나가는 차들의 자국으로,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더러워졌습니다. 어지러운 내 마음 상태가 바로 지금 사진?
그.렇.지.만.
안중근 의사의 마음은, 정신은 순백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니, 정열적인 붉은색이겠죠?
오늘의 생각.
"그래도 이게 어디야!"로 위로해봅니다. 장소가 맞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비석이라도 있으니, 사람들이 찾아오고, 잊혀지진 않겠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어떤 존재로부터 잊혀져가는 것입니다. 중국, 러시아, 한국 어느 곳에서든지, 앞으로 100년, 1000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꼭 기억할 수 있는 언제나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분들은 아마도 그를 기억하고 싶고, 역사를 잊고 싶지 않기 때문일거라 생각해봅니다. 슬프지만, 슬픈 마음은 고이 접어두고, 머나먼 땅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찾아온 분들이라면 이 비를 보면 정말 이를 꽉 악물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가슴 속에 눈물을 담습니다.
언젠간... 그 눈물이 웃음이 되길 바라며, 러시아 인들에게도 안중근이 醫師가 아닌 義士로 인정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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