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스크린 세상-영화보기

픽션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하는 논픽션, 울지마 톤즈

꼬양 2011. 1. 10. 08:00

[영화리뷰] 드넓은 우주, 그 속의 작은 푸른별 지구. 그 지구속 수억명의 사람 중에서도 한 사람이 소리없이 세상을 울리고 있었다. 그가 떠나고 나도 그의 빈자리를 느끼는 사람들, 그를 그리워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눈물 짓는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나도 내내 울었다. 울지마, 톤즈. 정말 울지마...

 

 

<줄거리>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종교가 아닌 인간으로서 접근하는 영화

많은 장르의 영화를 봐 왔다. 보통 다큐멘터리 영화라도 종교가 다르거나, 없는 사람이라면 종교인을 다룬 영화는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종교를 초월한 한 사람의 삶을 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영화 장르가 다큐멘터리였기에, 기존에 텔레비전에서도 방영이 됐기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가 설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예상만큼이나 영화는 그를 애도하는 태도로 접근한다. 그리고 그 접근 방식은 영화가 끝날때까지도 계속 이어진다. 다큐멘터리가 큰 감동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 법이 하나, 이 영화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그의 삶을 사실적으로 구성해서 보여주지만 보는 동안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논픽션이 픽션보다 더 큰 감동을 준다는 표현, 이 영화에서는 통용된다.

 

 

이태석 신부, 그의 삶은...

이태석 신부, 그는 내전으로 상처입은 수단 사람들에게 자신을 던져 헌신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종교가 있고 없고, 종교가 같고 다름을 떠나서 그의 숭고한 삶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제작진 아니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이태석 신부가 거쳐간 수단의 톤즈를 찾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미 이태석 신부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톤즈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톤즈에서 의사였으며, 친구였으며, 선생님이었다. 신부였지만 재능도 많았던 그는 다양하고 많은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상당한 결실을 맺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찾아 병을 치료했고, 나중에는 직접 병원을 만들기도 했다. 강가에서 모래를 퍼다가 벽돌을 만들고 지붕위에 올라가서 못을 박는 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병원을 짓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었다.

 

배고픈 아이에게 물고기를 잡아다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듯 그는 배고픔을 달래주기보다 자립할 용기를 주고 싶어 학교를 만들었고, 소년병으로 끌려가 총과 칼을 잡았던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하지만 하늘은 왜 그리도 무심할까. 그러던 어느 날, 휴가차 한국을 찾았던 그는 건강검진을 통해 말기암 진단을 받는다. 말기암 진단을 받으면서도 너무나도 덤덤한 그의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났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 생명이 끝나는구나, 삶이 다한다는 걱정에 오열을 하고, 살고 싶다는 엄청난 의지를 보이겠지만... 그는 암 앞에서도 초연했다. 그에게 걱정이 있었다면 수단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암 선고를 받은 저녁날, 수단의 어린이들을 위해 직접 기타연주를 하며 공연까지 펼치지만... 그는 다시 수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톤즈로 가기 위해 열심히 투병했지만, 결국 그는 한국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의 헌신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수단으로 향했던 것, 그가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신부의 길을 갔던 것...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도 다가가려 하지 않는 나병환자들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던 그. 하루 종일 아픈 환자들을 진찰하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 없었던 그.

이태석 신부.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낼 일을 그는 했다. 종교를 떠나 그의 헌신적인 삶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스크린에 투영되고 있었기에 눈물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수식어가 꼭 붙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슈바이처라고 해도 이태석신부만큼 다재다능하진 않았으리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고. 어쨌든, 그보다 나은 수식어가 있다면 그에게 줘야할 것이다.

생전의 이태석 신부는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들이자 동생이었다. 또한,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는 톤즈 사람들에게 있어 그는 신부, 의사이기 전에 톤즈의 평화를 지켜준 유일한 친구로 기억한다. 나에게는 세상을 울리는 헌신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여정에서 가장 감동받았던 점은 그의 사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며 음악을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침이면 군인들의 훈련소리로 가득한 톤즈, 늘 총소리가 울리던 곳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집회마저 금지된 톤즈지역이지만, 아이들의 행렬을 군인들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다친 군인도 치료해줬기에, 군인들에게도 남다른 존재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남자들에게 눈물은 절대 보여서 안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 눈물을 가장 큰 수치로 생각한다는 딩카족은 구슬프게 울고 만다.

 

그처럼 그렇게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열정적인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의 삶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같은 지구상에서 살고 있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부족의 슬픔. 그리고 그 부족을 진실한 마음으로 보듬어 안았던 이태석 신부.

어차피 태어나면 죽는 게 인생이라지만, 사람의 인생은 가벼운 깃털과 같다고도 하지만, 이태석 신부의 삶은 짙은 여운과 무게를 남긴다.  그의 희생, 헌신이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변화시키는지를 알 수 있기도 했다. 신은 왜 착한 사람을 먼저 자신의 곁으로 데려갈까라는 의문을 갖다가 하나의 결론을 내려본다.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람이 신의 곁에서 푹 쉴 수 있도록 먼저 데려가는 것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빈자리를 채울 사람, 이제는 어느 하나 없다는 것이 더더욱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열정적으로 톤즈 사람들을 사랑하고, 나병환자들에게 따스함을 전해준 그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수단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사랑으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 가슴속에 그는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마음에 진한 감동과 깊은 여운을 안겨준 영화. 울지마 톤즈.


 

 


울지마 톤즈 (2010)

Don't cry for me sudan 
9.6
감독
구수환
출연
이태석, 이금희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0 분 | 2010-09-09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