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가 '예술의 신'이라고 칭송한 작가.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이자 위대한 사상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1910년 82세로 그는 생을 마감했는데, 2010년 올해는 거장의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톨스토이, 그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 내용은 모르더라도 이름은 아는 사람이 많을것이다. 하지만 알려진 이름과 작품과는 다르게도 그의 말년의 삶을 아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드물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1년의 여정을 담은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인생. 그 속에서 러시아 대문호의 삶의 아닌,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 톨스토이를 보았다.
줄거리
존경하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크리스토퍼 플러머)의 개인 비서로 고용된 문학 청년 불가코프(제임스 맥어보이). 그를 채용한 톨스토이의 수제자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폴 지아마티)는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야(헬렌 미렌)를 유심히 지켜보고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라고 지시한다.
불가코프는 톨스토이를 만나 그의 인품에 감격하고 체르트코프의 이야기와 다르게 소피야가 톨스토이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는 사이 톨스토이의 공동체에서 생활하던 불가코프는 마샤(케리 콘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런 가운데 톨스토이는 체르트코프와 딸 샤샤 등의 조언을 듣고 자신의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려 하지만 부인 소피야는 이를 반대해 극심한 갈등에 빠지는데….
소피야는 악처가 아니라 사랑받고픈 내조의 여왕이었을 뿐
왜 위인의 아내는 악랄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톨스토이의 처, 소피야 역시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나와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와 더불어 희대의 악처라는 별명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악독하다는 면은 영화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톨스토이보다 더한 톨스토이주의자인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 그리고 그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했다는 딸 샤샤가 더욱 더 독해보였다.
악처라고 핍박받고, 연일 신문에 그와의 불편한 부부관계가 오르내려 신경이 예민해지지만, 소피야는 톨스토이가 자신의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랄뿐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여느 평범한 아내들이 원하는, 남편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머무르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했고. 소피야는 모든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톨스토이로부터 가족의 재산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만, 톨스토스주의자들에겐 그녀의 모습이 돈만 밝히는, 돈에 눈먼 여자였지만. 어쨌든 마이클 호프만 감독은 톨스토이와 소피야의 이러한 갈등과 애증을 매우 인간적인 시선으로 묘사했다. 19살 연상의 톨스토이와 결혼해서 악필인 그를 대신해 전쟁과 평화를 여섯번이나 옮겨쓴 그녀야말로, 13명의 아이를 낳은 그녀야 말로 진정한 내조의 여왕이 아닌가?
사상과 현실의 고뇌, 톨스토이의 고민이 느껴지는 영화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 초등학생들도 다 알 법하다. 세상도 그렇거니와 사람 마음 역시 논리대로 되지 않는다. 톨스토이도 그랬다. 사상과 현실속에서 늘 고민했고, 때문에 늘 힘들었었다. 생전에 톨스토이는 스스로는 만족할만한 톨스토이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블라디미르는 소피야와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톨스토이의 모든 일정을 장악하고 톨스토이보다 더 톨스토이답게 하나둘씩 결정한다. 때문에 블라디미르와 소피아는 대립각이갈수록 서게 되고, 톨스토이와 소피야의 관계 역시 소원해진다. 결국, 폐렴 증세가 있는 톨스토이가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가출까지 감행하는데, 톨스토이가 가출을 하는데도 톨스토이주의자들의 입김이 거셌던 것으로 보인다. 톨스토이즘의 극적인 승화를 위해서는 그의 죽음자체도 드라마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를 신처럼 모시고자, 사상처럼 박제하고픈 톨스토이주의자들이 있었지만, 정작 톨스토이는 사람이었다. 톨스토이의 인생을 거의 완벽하게 분석해낸 한 학자는 톨스토이를 "욥"에 비유하기도 한다. 신에 가까운 인간으로 살기를 원했지만 톨스토이도 인간이었다. 완전한 인간이기를 바랬지만, 톨스토이 스스로 인간적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1900년대 초의 톨스토이의 고뇌를 100년이 지난 지금 느낄 수 있었다.
사랑, 결국에 그가 말하던 사상의 시작점이며 종결점
영화 속에는 두 커플이 나온다. 오래된 사랑을 간직한 톨스토이와 소피야 커플과 사랑을 막 시작한 발렌틴과 마샤, 이 두 연인이 등장한다. 사랑의 의미란 무엇일까? 사랑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 톨스토이 비서 발렌틴 역의 맡은 제임스 맥어보이는 마샤(케리 콘돈)와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가르침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깨닫고 더욱 성장하게 된다. <전쟁과 평화>의 한 구절인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의 부분이 영화 시작에서 말해주듯, 톨스토이가 일생을 바쳐 작품과 사상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사랑이라는 점을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깨닫게 되었다. 사랑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 사이의 부부 사이의 정, 사랑이 그 시작점이 아닌 가 싶다. 그것이 더 나아가 평등과 박애로 이어지고...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노년의 커플과 풋풋한 커플의 러브스토리는 영화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작품은 화려한 영상도, 스펙터클한 액션도 없는, 잔잔한 감동의 영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스크린에 담긴 각국의 이국적인 정취와 유려한 건축물, 생생하게 재현된 의상, 톨스토이가 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야스나야 폴라냐의 저택, 톨스토이가 마지막 순간을 맞은 아스타포보 기차역, 19세기 러시아의 거리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부분이다. 더불어 관록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하는 섬세함도 갖고 있는 매력적인 영화였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2010)
The Last Station
8.4
- 감독
- 마이클 호프먼
- 출연
- 제임스 맥어보이, 헬렌 밀렌, 크리스토퍼 플러머, 폴 지아매티, 앤-마리 더프
- 정보
- 드라마 | 영국, 독일, 러시아, 미국 | 112 분 | 2010-12-15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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