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스크린 세상-영화보기

[영화리뷰] 마음의 울림이 감동의 눈물로까지, 영화 더 콘서트

꼬양 2010. 11. 29. 08:30

가끔 클래식을 듣곤 합니다. 정신이 왁자지껄, 너무나 소란스러워서 집중할 수 없을 때 그때 듣는 클래식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을 선사하죠.

 

일요일 아침, 골목을 떠들썩하게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니라 후두둑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깼습니다. 빗방울 소리로 시작한 아침, 이왕 소리로 시작했으니 음악영화를 볼까해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160석 극장에 관객은 단 스무명. 하지만 영화관을 가득 채운 감동의 울림은 눈물로까지 이어집니다.

 

가지를 모두 쳐낸 간결한 제목의 영화 "더 콘서트",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의 감동과 여운이 진득하게 남았던 영화, 더 콘서트의 리뷰를 써봅니다.

 

 

<줄거리>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의 러시아. 볼쇼이 교향악단의 천재 지휘자였던 안드레이 필리포프(알렉세이 구스코프)는 30년 전에 과거 유대인 단원을 숨겨줬단 이유로 쫓겨난 적 있다. 하지만 음악에의 꿈을 접지 않은 그는 극장 총책임자 레오니드의 구박 속에서도 말단 청소부을 하면서 계속 볼쇼이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드레이는 레오니드의 사무실을 청소하다 파리의 명문 샤틀레 극장에서 보낸 볼쇼이 교향악단 초청공문 팩스를 발견한다. 그것을 몰래 가로챈 그는 절친한 첼리스트인 친구 사샤(드미트리 나자로브)에게 샤틀레 극장에서 30년 만의 복귀 무대를 가지자고 제안한다. 2주 안에 80명에 가까운 단원들을 모아 볼쇼이 교향악단으로 위장해 프랑스로 가자는 것. 우여곡절 끝에 스폰서를 구하고 비자까지 마련해 프랑스로 떠나면서 그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에 빠질 수 없는 바이올린 솔리스트로 당대 최고의 안느 마리 자케(멜라니 로랑)를 모시려 한다.

 

 

30년만에 재결성한 교향악단의 웃음 유발 소동극

이 영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단 음악영화니까 어떻게 음악으로 풀어나갈지가 궁금했습니다. 스토리도 스토리거니와. 러시아 체제에서 이들은 과연 프랑스에서 무사히 공연을 치룰 수가 있을까, 안드레이는 30여년전에 자신을 수식했던 전설의 거장이라는 별명을 다시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점을 두고 영화를 주의 깊게 봤습니다.

이 영화, 한 마리도 말하자면 말 그대로 오합지졸 단원들의 일대 소동극입니다. 가짜 볼쇼이 교향악단이 파리에 가서 벌이는, 아니 파리에 가기전부터 일으키는 소동 정도로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음악영화라서 그리 무겁게 흘러가진 않습니다. 왜냐? 30년만에 모인 교향악단, 생각을 해보면 오합지졸일 수 밖에 없죠. 생계를 위해 악기를 팔기도 했고, 시장에서 장사도 했고 구급차 운전까지, 너무나도 다른 일을 해왔기에 그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사람을 모으는 것도 고생이었지만, 공연을 위해 파리로 가면서부터도 말썽은 계속됩니다. 때문에 이 영화 장르에 "코미디"가 붙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이들이 벌이는 소동이 참 재밌거든요. 대절한 버스가 오지 않아 공항까지 단체로 걸어가고, 돈이 급한 그들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경비를 달라고 아우성치며 호텔을 엉망으로 만듭니다. 심지어 파리 도착과 동시에 악단 활동과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아르바이트를 뛰거나, 중국산 휴대폰 판매 등의 장사를 하는 단원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준비는커녕 연습 한번 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보는 관객들 입장에서도 이들이 과연 볼쇼이 단원이 맞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웃음속에 숨어든 해학코드

그리고 영화 내에는 현재 러시아의 모습과 겹쳐지는 장면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폰서로 나선 석유재벌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는데요. 프랑스 샤틀레 극장 관계자에게 큰 소리를 치며 쥐락펴락 하는 모습, "파리 생제르망을 사버릴까" 고민하는 석유재벌의 모습에서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클럽 첼시의 구단주를 떠올리기까지 합니다.

 

차이코프스키, 그의 음악은 시대와 경계를 초월한 절대적 존재

다시 돌아와서, 말썽많고 시끄럽기만 한 이 단원들은 공연 시작 몇 시간전까지도 리허설을 커녕 개인 사업하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이들은 호흡을 맞춰보지 못했을 뿐 실력만은 세월이 흘러도 최고입니다. 푼돈을 받으며 지하도에서 공연하는 이들일지라도 연주에 몰두하는 그 순간만큼은 관객들에게나 영화속에서도 경외심을 자아냅니다. 전혀 준비가 안된 모습에 협연을 취소해버리자고 성질내는 안나 마리 자케의 마음을 돌리게 만든 것도 사샤의 첼로 연주였기 때문입니다. 너무 소란해서 정신없는 가운데 역시 음악의 선율이 우아한 평정심을 선사합니다. 듣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어떤 걱정과 불안도 사라집니다. 음악이 주는 평화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안드레이는 왜 차이코프스키를 고집했을까?

위 단락과도 연관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30년전, 그가 불명예를 안고 볼쇼이를 떠나게 된 순간에도 지휘했던 것도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인데, 왜 지금에와서도 그는 그걸 고집했을까요? 그것은 다시금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으로 옛 명예를 되찾고 싶다는 안드레이의 자존심과도 이어지기때문입니다. 안드레이, 그 자신 혼자만의 명예이기도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교향악단 전체의 긍지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치다르면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죠. 말썽만 피우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제 실력을 되찾고 오묘한 화음을 이뤄가는 것, 그렇게 서로 다른 소리들이 조화를 통해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 감동이란.

또한, 러시아의 자존심인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깊은 애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에서 시대와 이념의 경계를 초월한 절대적 존재란 사실도 알 수 있었죠.

 

일본의 음악영화를 연상케 하는 익숙한 소동극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느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화 엔딩 10여분의 콘서트 장면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듣는 사람에게조차 피식 비웃음을 짓게 하는 불협화음으로 시작했지만 안나 마리 자케의 매끄러운 선율에 이내 감각을 되찾아 멋진 화음을 이루는 모습은 너무나도 감동적입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1장,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치다를수록 음악도 절정에 이릅니다. 혼을 쏙 빼놓는다는 표현을 이때 생각이 나더군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통해 누군가는 상처를 치유하고, 누군가는 생에 대한 감각을 되찾고, 마치 엉망으로 널부러졌던 퍼즐들이 기적처럼 맞춰져,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쫓겨났다 명예를 되찾으려는 지휘자,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통해 친부모의 진실과 만나려고 하는 천재 바이올린 솔리스트, 그리고 저마다 옛 기억을 잊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악기마저 다 팔아먹은 채 생업에 종사하다 30여년 만에 재결합한 교향악단. 영화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통해 저마다의 자아를 찾아가는 영화라고 정리내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