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스크린 세상-영화보기

불친절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영화-김복남살인사건의 전말

꼬양 2010. 9. 20. 07:30

드라마를 봐도, 영화를 봐도, 심지어 생활 속에서도 친절한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 친절속에는 무언가가 숨겨져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누군가가 나에게 잘해줘도 뭔가 있을 거란 의심부터 하게되는 게 우리네 현대인의 삶이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불친절하게 만들었는가?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발을 밟고, "죄송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욕부터 나오는 현대인의 일상. 자신밖에 모르는, 참으로도 불친절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한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스포일러 성이 있습니다. 미리 알려드립니다]

 

<줄거리>

은행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해원(지성원 분)은 휴가를 받아 어렸을 때 잠시 머물렀던 무도로 향한다. 어릴 적 친구 복남(서영희 분)이 해원을 환대하지만 다른 섬주민들은 해원의 방문이 반갑지만은 않다. 복남의 배려로 편안한 휴가를 즐기며 서울에서의 스트레스를 잊어가던 해원에게 어느 날 부터인가 복남의 섬 생활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흘이 멀다 하고 남편에게 매를 맞고, 하루 종일 노예처럼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육욕에 집착이 강한 시동생에게 성적인 학대까지 받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섬사람 모두 복남이 처한 상황을 외면할 뿐이다. 해원 역시도 자신과 딸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는 복남의 간곡한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게 된다. 이제 무도에서 복남을 도와 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복남은 이 섬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되고 만다.

 눈부시게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날, 복남은 낫 한 자루를 집어 든다. 그리고 시리도록 아프고, 미치도록 잔혹한 핏빛 복수가 시작된다!

 

영화 속 공간 무도,단절된 현대인의 공간을 의미

온라인 공간에서의 인맥 맺기가 열풍이 되고 있는 요즘, 실제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도 그렇게 친하게 지내고 있는지 반문해본다. 복남이 살고 있는 무도는 겉으로는 정말 평온해보인다. 하루에 배 한번 다닐까 말까 한 오지섬의 주민들 역시 이상없고, 다들 친해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남편에게 매를 맞고, 노예처럼 생활하는 복남의 일상은 여느 섬 여인네들이 응당 그래왔으니 너도 견뎌야 한다며 외면하는 일이 대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도 그렇다. 길가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면 창문부터 닫아 잠그는 우리네 일상과 노예생활을 하는 여인의 삶을 눈감아 버리는 무도 주민의 삶과 뭐가 다를 것이 있는가?

이렇게 관심과 친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은 연약한 주인공 복남을 복수의 화신으로 변질시킨다. 삭막한 현대사회가 우리를 거칠게 변화시키듯 말이다.

 

 

 

막장영화? No, 잘 만든 영화

이 영화의 장르를 보면,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자칫 막장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10명의 사람도 살지 않는 섬에 남편과 그의 남동생, 시어머니 그리고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복남은 왜 저렇게 사나 싶을 정도로 답답한 복남의 모습을 보면 혀를 쯧쯧 찰 수 밖에 없다. 어렸을 적부터 남자들에게 번갈아 성폭행을 당하는 것은 물론, 결혼 이후에는 가정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인물이기에. 정말 안 좋은 상황은 모조리 다 갖고 있는 캐릭터 김복남. 요즘 드라마가 막장이 대세라지만서도, 이 영화를 그렇게 따진다면 정말 막장 중에서도 막장이다. 하지만 막장 영화같지만서도 이 영화는 막장 영화가 아니다. 이유는? 여자의 복수가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된다는 점이 이 영화가 막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복남이 낫을 들고 섬을 헤메며 피바다로 만드는 순간 장르가 뒤바뀌는 반전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이때부터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을 느끼게 된다.

 

 

잔인한 복수를 참신한 영상으로 연출, 이 영화의 백미

순박한 복남이 마을 사람들을 죽이게 되는 계기는 복남을 폭행하는 아빠를 말리던 딸은 아빠의 힘에 밀려 돌부리에 머리가 부딪혀 그만 죽는 순간이다. 여타의 영화들이라면 복수극은 이때 바로 시작된다. 칼을 들던가, 달려들어 너죽고 나죽자, 또는 뭔가 일을 꾸미겠지만. 이 영화는 좀 다르다. 복남이 미친듯이 복수를 하는 부분의 영상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손꼽을 정도니. 딸 죽음 후 그녀 앞에서 시원하게 수다를 떠는 주민들 앞에서 미친 듯 감자를 캐기 시작한다. 주민들이 쉬었다 하라고 하지만서도 복남은 듣지도 않고 감자만 캔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의 태양은 마치 밭 한가운데에서 감자를 미친듯이 캐는 복남만을 향해 내리쬐 듯 작렬한다. 복남의 빠른 손에 감자가 하나씩 튕겨져 나올 때마다 영화의 긴장감 역시 팽팽해진다. 그리고 복남은 눈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태양을 노려본다. 눈앞이 흐릿흐릿해지고... 그때부터 복남의 복수가 시작된다. 수다 삼매경에 빠진 마을 할머니들에게 다가가 "참고 살면 병난데유"라고 말하곤 돌연 낫을 휘두르고 밭은 피바다가 된다. 그녀의 복수를 빠져나간 사람은 없다. 남편도 시동생도 살아남지 못한다.

 

 

서영희의 놀라운 연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다

개봉전부터 이 영화를 보겠노라고 다짐했었지만 영화는 상영관도 많지 않았고 하루에 고작 두편 정도 밖에 상영되지 않았다. 아마도, 여배우의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영화관 확보가 어렵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하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은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서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이제는 많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도록 만드는 매력으로 작용했을까? 참신한 영상도 한 몫했지만서도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김복남을 연기한 서영희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김복남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영화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한 몫했다. 또한 여배우들이 가장 망설이는 분장을 서슴없이 받아들였다. 자신의 몸매를 가리는 몸빼바지, 얼굴을 망치는 멍 분장, 먼지 분장을 누가 하려고 들겠는가? 하지만 서영희는 영화 런타임 2시간 내내 검은 칠을 한 얼굴에 몸빼 바지를 입고 사투리를 구사하는 김복남 캐릭터를 휼륭히 소화해냈다. 대부분의 여배우라면 모두 거절할 시나리오를 그녀는 용기있게 선택했고,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배우로서 휼륭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문득 생각해본다. 그녀의 친구 해원이 조금만 친절했더라면, 마을 주민들이 조금이라고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그녀의 남편이 약간만이라도 친절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오늘 내가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불친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낫 또는 칼을 들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선착장에서 계단을 오르던 복남이가 뱃사람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 친절한 사람도 있네. 별일이네"

 

복남이 무심결에 한 말이지만서도 별일이 많았으면 하는 세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친절한 사람이 일상이고, 친절하면 별일인 지금. 내가 아무 생각없이 베푸는 친절이 정말 특별한 일일지도 모른다. 무관심, 불친절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현대사회. 관심과 친절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