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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베르사이유 궁에서의 프랑스 문화 엿보기-베르사이유 특별전

꼬양 2010. 12. 17. 07:30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것, 베르사이유 궁. 베르사이유 하면 생각나는 것은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프랑스 문화는 익히 많이 들어왔지만, 실제 그 프랑스 문화에 대해 정의내리기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가서 배우지 않는 이상은 귀로 아무리 수백번을 들어도 책으로 본 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직접 베르사이유에 가보진 않아도, 전시회를 통해 베르사이유의 찬란한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세상은 참 좋아졌다는 느낌이네요. 지구가 좁은 걸까...? ㅎ


예술의 전당에서는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휴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전당을 찾아 이 특별전을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문화의 갈증, 궁금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예측할 수 있었는데요.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특별전. 물론, 사진 촬영이 안됩니다. 제가 사진을 어떻게 찍었냐구요? 아, 이건 리플리카입니다. 복제본이죠^^;; 기념품 가게에 떡하니 붙여있는 것을 아이폰으로 살짝쿵 찍은 겁니다. 

예의를 갖추고 전시회를 관람하니... 도촬한 게 아니라는 사실 밝혀둡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그 만화는 아직도 가슴을 설레게 하죠. 아, 오스칼을 떠올리면... 아직도 두근두근! 옆에 있던 친구, "페르젠이 더 멋있어!". 아.. 네에.. (__)

저와 제 친구는... 그 두근거림을 갖고 특별전 관람을 시작합니다. 제주도의 직장에서 모처럼 며칠간 휴가를 받고 올라온 친구는 서울에서의 문화생활을 즐기는 게 너무나도 부러웠나봅니다. 문화의 갈증이란... 





전시회에서는 베르사이유의 200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데요. 루이 14세에서 루이 16세까지의 왕의 모습과 궁에서의 문화를 담고자 했습니다.


부조나 조각상도 보였지만, 회화가 대부분이었는데요, 쨘한 느낌의 그림도 몇 개 있었습니다.


먼저 루이 14세, 정말 찬란한 시기였죠. 다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 기억력은 엄청나게 비상했다고 합니다. 총명한 아이로 성장했고, 무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처럼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이 당시 문화 예술에 대한 전례없는 전폭적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이 그 상징이겠죠. 이 궁전을 짓기 위해 건축가, 화가, 조각가 등 수많은 인재들이 동원되었죠. 


위의 그림은 루이즈 마리 안 드 부르봉, 일명 마드무아젤 드 투르입니다. 루이 14세와 그가 총애했던 정부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인데, 여섯살에 세상을 떴다고 하네요. 그 사실을 그림속에서 알 수 있기에 더욱 슬프기도 하구요.

17세기 당시, 삶의 허무함을 상징하던 이미지는 비누방울이었습니다. 소녀의 손에 들려진 비누방울과 그리고 얼굴에 드리어진 구슬픈 그늘이 참으로도 슬펐네요.  



그리고 루이 15세. 프랑스 예술의 절정기였죠. 1710년 2월 15일~ 1774년 5월 10일까지의 시기인데요. 

두 살 때 부모를 여의고 형제 자매도 없던 루이 15세는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언제나 애정을 갈구하던 아이였다죠. 정치수업을 통해 왕의 직무에 충실히 대비했고 분명한 책임감과 규칙을 갖고 있어서 왕의 책무를 이행할 수 있었는데, 자신감이 부족해서 늘 스스로의 판단에 확신하지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나름 공부를 많이 한 꼬양!)



어여쁜 이 아가씨의 그림은? 지금봐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 루이 15세와 왕비 레슈친스카 사이에 딸이 여덟 명이나 있었는데... 그 중 한명입니다. 루이즈 공주입니다. 근데 공주인 그녀가 왜 수도원에 갔을까요?


딸들이 궁전에 체류하자 예산 지출이 막대해지자 제일 어린 네 명의 딸들을 수도원으로 보냅니다. 수녀원장에게 맡겨진 딸들은 무용과 음악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고 하는데. 왕은 왕비를 기쁘게 해주고자 이렇게 초상화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 초상화를 그릴 당시 루이즈 공주는 열살이라고 하네요. 



대관식 복장을 입은 루이 15세의 모습이네요. ^^ 배경을 보아하니 궁전이고, 백합꽃 무늬가 새겨진 커다란 망토를 두르고 있습니다. 목에는 목걸이를, 손에는 왕홀을 들고 있네요. 


이 작품은 공식초상화였기에 왕실 여러 화가들에게 다랴응로 복제되어 국가 주요 행정기관들 및 대사관, 이웃 국가들의 왕들에게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도 원작을 바탕으로 다른 화가가 그린 것이며 당시 이 작품은 다른 곳으로 보내지지 않은 채 왕실에 소장돼 있다가 이후 베르사이유 궁에 소장되었다고 하죠.


왼쪽 :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의 모습으로 표현된 퐁파두르의 부인, 오른쪽 :퐁트브로 수도원의 루이즈 공주


그리고 가장 주의 깊게 봤던 루이 16세와 마리앙트와네트.

프랑스 루이16세와 오스트리아의 대공녀 마리 앙투와네트의 결혼. 이둘의 결혼은 오랫동안 적대시 해왔던 두 나라 간에 새로운 정치적 연합관계가 성립되었음을 공표하는 것이었죠. 겨우 열네살이었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상냥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프랑스 궁정과 국민을 사로잡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엄격한 예법들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고 비엔나의 간소하고 자유로웠던 궁정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엄숙한 궁정 행사들에 거부감을 느꼈고.. 만화에서 나오듯... 무용, 사냥, 무도회, 연극에 빠져듭니다.



만화 속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의 마리 앙투와네트입니다. ^^; 비엔나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내기 위해 제작한 초상화가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새로 제작한 초상화라고 하는군요. 눈 앞에서 왕비를 모델로 하여 초상화를 제작하는 일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초상화는 공식초상화로 임명되고 마리 앙투와네트는 이 초상화를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는군요.


이후,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 탕플 탑에 유배된 루이 16세의 모습, 마리앙트와네트와 루이 16세의 자녀인 마리 테레즈와 루이 조제프의 그림 등이 전시됩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왕과 왕비의 모습을 아련히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이 많았지만, 리플리카로 나온 그림들은 몇 개 되지 않아.. 그림 설명은 이걸로 끝! (__) 

궁금하시면.. 직접 가서 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ㅎ


프랑스 역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베르사이유 궁. 단순하게 하나의 궁전이나 한 시대를 대표한다기 보다 그곳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야기 되고 있기에 더욱더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궁 하면 떠올랐던 것은 왕과 왕비의 이야기였지, 그 뒤에 가려진 공주, 왕실의 화가, 역사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였기 때문이죠. 


19세기에 이 궁전은 박물관이 되었으며 프랑스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거대한 상징으로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큰 자부심이 되었구요.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그 속에 살았던 왕과 왕비, 공주, 왕자, 궁전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박함과 부드러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서양문명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과 그 안의 인물들.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 왕실의 일가들과 궁정대신, 궁정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던 전시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전시회. 하지만 "프랑스에 직접 가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봤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제 욕심이 좀 많이 큰가봅니다. ㅎㅎㅎ


참, 사진이 엉망이라 죄송합니다. 많은 인파속에서 아이폰으로 급하게 리플리카를 찍다보니 빛반사도 심하고 그러네요.. ㅠㅠ


프랑스 국립 베르사이유 특별전 - 루이 14세에서 마리 앙투와네트까지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기간 : 2010년 11월 5일~2011년 3월 6일

-문의 : 02) 325-1077~8 (한가람미술관)

-관람가격 : 일반 13,000원 ~ 어린이 8,000원



추천 한 방에 꼬양은 미소 방긋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