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제주

내가 어렸을 때부터 걸었던 길이 올레 17코스로 돌아오다

꼬양 2010. 10. 18. 07:30

도심으로 진입한 제주올레.

제주 올레 17코스가 생긴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 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생기는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늘 걸었던, 어렸을때부터 함께 해온 길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걷는 길이 되었다니.  

 

지난 9월 25일 올레 17코스를 개장했다. 그 전에, 난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그 올레 17코스의 모든 길을 걸었었다. 그리고 어릴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걸어보니 느낌이 너무나도 색달랐다.

 

◇17코스 경로 (총 18.4km, 6~7시간)

광령1리 사무소 → 광령교 0.9km → 무수천 숲길 2.3km → 창오교 2.9km → 외도 월대 5.1km → 알작지 해안 6.1km → 이호테우해변 7.2km → 도두 추억愛 거리 8.7km → 도두 구름다리(오래물) 9.4km → 도두봉 정상 10.2km → 농로 10.5km → 사수동 약수물 11.6km → 어영소공원 13.1km → 수근연대 13.8km → 레포츠공원 14.5km → 용두암 15.6km → 용연구름다리 15.8km → 동한두기(갈마수)16.2km → 무근성 16.8km → 제주 목관아지 17.1km → 남문로터리 17.7km → 오현단 18km → 동문시장 18.2km → 제주시 동문로터리 18.4km
 
◇ 제주공항↔도두봉 연결 경로

제주공항 → 먹돌세기 삼거리 1.2km → 레포츠공원 2.8km → 공항동산 3.4km → 어영소공원 4.3km → 사수동 약수물 5.6km → 송죽이 들길 6.7km → 도두봉 정상 7km

 

 

 

▲ 7번 버스를 타고 바라본 바다

 

비행기 지연 도착으로 인해 제주도에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었고. 늦은 오후,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나를 반겨줄 곳 어디일까? 아무래도 어렸을때부터 함께 해온, 바다밖에 없을 거란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공영버스 7번에 몸을 실었다.

 

▲ 7번 버스에서 내리자 보이는 도두항 어귀 

 

일단 도두에서 내렸다. 도두에서 내린 후, 이호를 거쳐 내도 알작지, 외도 월대까지 걸어가리라 생각했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이 내도이기에. 고등학교때까지 봐 왔던 바다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흐린 날씨, 바다도 뿌옇고 하늘도 뿌옇다. 나란히 매달린 집어등이 하늘을 밝게 비춰줬으면 좋으련만. 하늘엔 빛 하나 보이지도 않는다.

 

 

여기는 도두항의 구름다리, 오래물 다리이다.

 

 

오래물 다리로 가려던 중 리본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제주 올레 리본.

"여기가 올레로 되었나? 16코스까지 밖에 없는데..."

이 당시만 해도 17코스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던 상태였다. 언론에서 17코스라고 말은 많이 했지만서도 자세히 듣지 않았던 내 탓도 있겠지만서도, 늘 집에서 골목어귀까지 나와있는 올레길처럼 편하게 걸었던 길이기에.

 

 

리본에 대한 궁금증을 한아름 안고 계단을 오른다. 오르기 전에, 도두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시퍼런 바닷물 옆으로는 도두봉이 보인다. 정말 질릴 정도로 자주 갔던 도두봉. 이제는 마음 먹고 와야 볼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오래물 다리에 올라서 바라본 제주시내의 모습.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이고 그 앞으로는 비행기 한 대가 보인다. 도두항 근처에 제주공항이 있기에 비행기 보는 건 참 쉽다.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는 비행기.

 

 

위에서 찍은 도두봉과 항구의 모습. 즐비한 배들은 언제면 조업을 나갈 수 있을까? 거친 풍랑으로 인해 오늘은 이 배들도 쉬는 날인가보다.

 

 

이 길을 지나는 몇 몇의 사람들을 위해 만든 의자인 걸까?

빛바랜 나무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향해 있는 게 아니라 바다를 등지고 있음에 분명 이 의자는 사진찍으라고 만들어진 게 분명하다.

 

 

아이들이 말타기 놀이를 하는 이곳은 도두의 추억의 거리이다.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거리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초등학교 때 했던 놀이들이 다 이곳에 있었다. 

 

 

한라산에서 몰려오는 저 시커먼 구름. 왠지 불안했다. 설마 비가 쏟아질까?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제주도 날씨는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동쪽에서 비가 와도 서쪽은 햇빛 쨍쨍하고. 북쪽에서 눈이 오면 남쪽은 눈 한방울 오지 않고. 설마 설마 하는 불안감을 안고 도두동 추억의 거리를 걸어본다.

 

 

 

딱지치기는 아무래도 남자아이들의 주 놀이임에 틀림없다. 딱지를 쳐야 하는데 종이가 없자, 교과서까지 찢어서 만들었던... 남자 아이가 생각난다. 별명이 개똥이였는데... 개똥이는 잘 살고 있는걸까?

(이러고 보니.. 내가 참 나이가 들어보인다. 아직 20대인데-_-;)

 

 

그리고 팽이치기. 팽이 하나가 나동그라져있다. 그런데 팽이채는 어디로?

 

 

남자아이들이 딱지를 친다면 여자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한다. 처음엔 다섯 공기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10개의 공기로 놀았던 일이 떠오른다. 손이 작은 나는 공기 열개 잡는게 버거웠지만, 지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서 공기 안 떨어뜨리려고 무지 빠른 속도로 공기 놀이를 했었다. 그 생각에 웃음이 피식.

 

 

추억의 놀이를 찬찬히 떠오르며 걷다보니 굴렁쇠 아이가 보인다.

 

 

도두의 추억의 거리임을 알리는 푯말이 보이고 그 뒤로는 제주 올레 표시가 살포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을 것이라 생각을 해본다. 이때 날씨가 이래서 걷는 사람도 없었지만...

 

 

추억의 거리를 지나 해안선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검정 돌과 퍼런 바다, 거친 바람이 나를 반긴다. 해안가의 야자수는 길다란 잎을 마치 머리카락 흩날리듯이 그렇게 서 있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만난 돌담. 돌담이 여기 있어서 반갑고, 뒤에 콩잎을 보니 더 반갑다.

저녁은 콩잎에 쌈 싸 먹자고 엄마한테 말할까? 말했다가 괜히 또 반찬투정한다고 구박받을라.

 

▲ 이호해변 

 

발길 닿는대로, 예전에 걸었던 대로 걸으면서 도착한 이곳은 이호해변. 좀 더 서쪽으로 가면 해수욕장이다. 그리고 해수욕장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내도 알작지, 외도바다, 월대까지 다다를 수 있고...

 

해수욕장에는 고운 모래가 가득하지만, 이곳은 그냥 해변이기에 검은돌과 모래가 섞였다. 때문에 수영보다도 간단히 돌 던지면서 퐁당퐁당 놀기에는 적당한 곳.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며, 가족끼리 사진찍으러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언덕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해안가 모래사장에서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가득차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해안가에는 일가족 세명과 나. 딱 4명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갑자기 비가 쏟아지자 해안가에는 덩그라니 나 혼자. 사진상으로도 급하게 뛰는 아빠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던 순간이었기에.

어쨌든, 제주도의 비는 그냥 혼자 내리는 게 아니라 바람을 동반해서 내리기에 더이상 사진은 무리. 우산을 쓰고, 카메라를 품에 안고 사진은 찍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걷는 걸 좋아해서 어렸을 적부터 돌아다니기도 많이 했었는데, 그렇게 돌아다녔던 길들이 이제는 올레 17코스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여름방학때면 친구들과 함께 튜브를 안고 달음박질 했던 월대와 알작지, 이호해수욕장. 살을 뺀답시고 운동 삼아 걸었던 해안도로, 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고 환경정화홀동으로 맨날 갔던 레포츠 공원, 내 모교 축제 이름이기도 한 용연을 비롯, 그리고 지금 사는 집 길목에 위치해 늘 지나다니는 남문로터리까지.

 

이 올레길은 내가 어렸을적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길의 경로를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신기했다. 하지만 신기함도 잠시, 아쉬움도 밀려왔다. 솔직히 혼자만 알고 있고, 나혼자만 이 길을 걸으면서 추억을 하려 했는데, 순전히 내 욕심이었나보다.

 

이젠 이 17코스는 내가 옛날부터 걸었던 길이 아니라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을 길이 되었다.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서 좋은 추억을 갖고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