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10~16 국립중앙박물관

이 시대의 가벼운 사랑을 무색하게 만든 450년전의 편지

꼬양 2010. 8. 16. 08:00

문득 어떤 말이 떠오릅니다. "사랑이 영원할 것 같니?",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 움직인다는... 2000년대의 사랑을 부끄럽게 만든, 이 모든 말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그리움,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450년전의 편지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적어 관 속에 넣어둔 편지였는데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12년전인 1998년 4월... 안동 고성 이씨 이응태의 무덤에서 미투리 한 켤레와 그리고 편지 한 장이 나옵니다. 조선시대 부부의 사랑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자료인 편지와 함께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시와 한문편지, 복식 등도 함께 출토되었죠.

 

 ▲ 원이엄마가 죽은 남편에게 보낸 한글편지. 1586년경

 

450년전의 편지지만 어떤 내용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아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여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

 

 ▲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사진이 살짝 흔들렸습니다. ㅠㅠ

 

미투리는 삼과 머리카락을 섞어 짚신으로 짠 신발로 편지와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미투리를 쌌던 한지에는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라고 쓰여있는데요, 이로 미뤄볼 때 병석에 누운 남편의 쾌유를 빌며 부인은 머리카락을 잘라 이 미투리를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부채에 쓴 만시.

부채에 쓴 만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우님의 곧음은 대쪽같았고

아우님의 깨끗함은 백지같았다.

내가 손수 쓰던 이 부채를

길을 떠나는 아우에게 준다.

형이 곡을 하며...

 

아우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형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만시였습니다. 자신이 쓰던 부채를 관에 넣어줄 때 형의 마음 역시 찢어졌을 것입니다.

 

 

 이응태 묘에서 발견된 복식

 

국립중앙박물관은 5주년 개관을 맞아 조선실을 열었는데요. 이 조선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나라 조선’이라는 주제 아래 조선 1실부터 조선 5실까지 모두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됐습니다.  제1실에서는 태조 이성계의 개국으로부터 세종 대의 찬란한 과학문화와 한글의 창제 과정까지를 당시의 대표적인 유물을 전시하구요, 제2실에서는 조선의 지식인인 사림들의 고유한 문화를 소개하고 주변국인 중국, 일본과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실에서는 전란을 극복한 뒤의 새로운 정치질서와 사회제도 그리고 생활풍습과 관련된 유물들을, 제4실에서는 영·정 치세로 불리는 시기의 실학과 문화예술의 변화상을, 마지막 제5실에는 열강의 각축 속에서 척사와 개화를 지향하는 상반된 움직임과 함께 근대국가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실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다섯개의 전시실 중에서도 1실에서의 미투리와 한글편지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안동을 방문했을 때, 월영교를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그곳에 어려있던 원이엄마의 편지, 사랑이야기가 뭔가 이야기를 하려는 듯 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재 우리가 하는 사랑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요? 날짜로 말한다면 하루도 안 가고, 몇 시간도 가지 않는 사랑도 있습니다. 몇 년을 사귄 커플에게,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는 우리들의 사랑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450년 전 이 부부의 사랑은 지금 시대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명예기자 고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