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스크린 세상-영화보기

꿈이 없는 자에게 던지는 이준익감독의 메시지-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꼬양 2010. 5. 11. 08:30

어른들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있다면.

뭘까?

 

"꿈이 뭐예요?"

 

어렸을 적, 가슴 속, 마음 속에 담아둔 꿈들은 이미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쌓여 흔적조차 없고, 꿈이란 말조차 생소하게 되어버린 지금. 당신은 꿈을 꾸고 있는가? 아니면 꿈을 잊어버리고 사는가?

꿈에 대해 묻게 한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준익감독은 꿈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일까?

 

 

<간단줄거리>

1592년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임진왜란의 기운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오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던 선조 25년. 정여립, 황정학(황정민 분), 이몽학(차승원 분)은 평등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관군을 대신해 왜구와 싸우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 대동계를 해체시킨다.

 대동계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몽학은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우고 친구는 물론 오랜 연인인 백지(한지혜 분)마저 미련 없이 버린 채, 세도가 한신균 일가의 몰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반란의 칼을 뽑아 든다. 한때 동지였던 이몽학에 의해 친구를 잃은 전설의 맹인 검객 황정학은 그를 쫓기로 결심하고, 이몽학의 칼을 맞고 겨우 목숨을 건진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 분)와 함께 그를 추격한다.

 15만 왜구는 순식간에 한양까지 쳐들어 오고, 왕조차 나라를 버리고 궁을 떠나려는 절체 절명의 순간. 이몽학의 칼 끝은 궁을 향하고, 황정학 일행 역시 이몽학을 쫓아 궁으로 향한다. 포화가 가득한 텅 빈 궁에서 마주친 이들은 운명을 건 마지막 대결을 시작하는데… 전쟁과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 끝까지 달려간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를 살린 배우들의 연기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특히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느냐가 영화를 살리고 못 살리고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속에서 황정민은 황처사의 연기를 완벽하게 해 냈다. 능청스러운 맹인 검객의 역할을 해낸 황정민의 연기는 영화 속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웃음과 재미까지 더해준다. 견자가 장님 황처사와 동행하며 자연스럽게 검술을 터득하고 훈련하는 장면들은 웃음을 자아내는데, 황정민의 능청스러운 봉사 연기가 정말 심청전의 심봉사 뺨칠 정도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황정민의 지팡이에 엄청 맞았던 견자도 웃음을 빵빵 터지게 한다.

이처럼 영화 곳곳에는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좀 지루해질만 하면, 심각해질법 하면 뭔가 웃음거리를 툭하니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이준익 감독.

또한 차승원의 독기어린 칼잡이 연기 역시 빛났다. 하지만 주인공이 분명 견자같았는데 견자의 이야기가 황처사와 이몽학의 부딪히고, 왜란까지 겹쳐서 견자의 자아찾기가 살짝 묻히는 것만 같아 그건 상당히 아쉬웠다. 물론 견자, 백성현의 연기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살짝 아쉬운 것은 한지혜. 유일한 여자 주인공이었던 것 같은데, 그녀의 연기는...

글쎄...?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 영화속에서 코믹하게 그려내다

요즘, 선거가 다가오자 정치판도 시끌벅적하다. 편가르고 싸우던 것이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요즘들어 더 시끄러운데... 그 시끄러움을 영화속에서 다시 만났다. 편 가르기의 결정판, 왕을 가운데 두고 벌이는 그들의 신경전, 붕당정치를 영화속에서 감상(?)하는 것도 은근한 즐거움이 있다. 

잠시 국사공부를 하자면... 15세기 말 지방에서 성장한 사림파는 훈구파를 몰아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시 중앙정계를 장악하고 동인과 서인으로 분파된다. 서인은 이이와 성혼이 중심, 동인은 이황과 조식, 서경덕의 제자로 구성되고 나중에 다시 또 북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되는데...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었지만,영화속에서는 동인과 서인이 서로 티격태격, 동서로 나뉘어서 임금을 사이에 두고 싸운다. 아무 이유없이, 상대방이 저러하니 우리는 무조건 반대, 이런 입장으로. 영화는 당시의 무기력하면서도 무책임한 왕과 무조건 반대의견만 내세우는 동서인들의 부패한 정치를 냉소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의 선조의 모습은 어떨까? 기존의 드라마에서 나왔던 선조와 전혀 다른 선조를 만나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우리가 이때까지 생각해왔던 선조와 전혀 다른 선조를 만나볼 수 있는데, 그것도 정말 큰 충격이었다. 물론, 영화속이라서 그렇게 표현했겠지만.

어쨌든, 영화를 보며 지금이나 옛날이나 정치는 별반 없음을 보면서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어서 좋긴 하나, 입가에 감도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큰 웃음을 주고 있지만 그 웃음에는 뼈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문득 드는 또 하나의 생각. 아.. 후대의 사람들도 지금의 정치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겠구나라는 생각에 다시 또 정신이 퍼뜩!

 

 

꿈을 가져? 말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늘 스스로를 지키려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나비는 풀잎, 나무껍질과 비슷한 색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 사람은 어딘가에 숨어 자신을 지키려 한다. 예로부터 양반은 권력 뒤에 숨고, 광대는 탈 뒤에 숨고, 칼잽이는 칼 뒤에 숨어 왔듯이.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여전히 권력자는 권력 뒤에 숨고, 돈이 많은 자는 돈 뒤에 숨으니.  

어쨌든, 영화 속에서 이몽학(차승원)은 자신을 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드러낸 송곳니처럼 그는 자신의 마음을, 꿈을 대놓고 드러낸다. 권력 뒤에 숨는 것을 싫어했고, 칼 뒤에 있는 것보다 칼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꿈이 있는 것이 좋은 것인가, 없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이뤄질 수 없는 꿈을, 모두가 사는 꿈이 아니라 모두가 죽는 꿈임을 알면서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이몽학의 모습을 보며 씁쓸하기만 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라는 가타부타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이 꿈에 대한 논리인 것 같다. 생각하기 나름이며, 세상에는 꿈 없이도 사는 사람이 있고, 꿈을 안고 사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꿈이 있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그.래.도. 감독은 은근히 관객들에게 던진다. 마지막 엔딩장면을 통해 보면 알 수가 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견자와 황처사의 동행. 꿈이 없는 견자가 꿈을 갖게 되는 것. 긴 여운을 주기도 하지만, 꿈 없는 자 꿈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져주는 것만 같아 긴 여운속에서도 피식 웃음이 났다.

 

대낮의 해는 바라볼 수도 없다. 해로 인해 세상은 밝지만, 하늘의 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달은 자기도 빛나면서 주위의 별도 빛나게 한다. 달과 같은 사람으로 황정학과 견자를 상징하는 듯 하지만 대사만으로는 이 영화에서 담아내고자 하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녹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도 같아 살짝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아 있다.

 

"꿈을 안고 있는 자, 진정 그 꿈이 옳은 것인가?", "꿈이 없는 자, 꿈을 갖고 있는가?"

 

이렇듯 영화는 나에게 줄곧 질문을 해댔다.

그리고 난 다시 또 다른 나에게 되묻는다.

 

 "아직도 꿈을 갖고 있지? 잃어버리지 않을 자신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