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스크린 세상-영화보기

잔혹함이 없는 살인영화, 피터잭슨감독의 발상의 전환-러블리 본즈

꼬양 2010. 3. 11. 11:06

 

 

이때까지 많은 잔인한 영화를 봐 왔다. 물론, 그 잔인한 영화는 죽은자보다 살아남은 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졌기에 죽음의 입장에 처한 사람들은 피가 낭자한 혹은 잔인한 모습으로 스크린속에 담겨지곤 했다.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죽은 자의 입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그려본다면 어떨까? 이런 발상의 전환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피터잭슨 감독의 "러블리 본즈"이다.

 

 

 

 

<줄거리>

기다려 왔던 첫 데이트 신청을 받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14살 소녀 수지. 그러나 수지는 학교에서 돌아오던 어느 겨울날, 첫 데이트를 앞두고 이웃집 남자에 의해 살해된다. 돌아오지 않는 수지를 기다리던 가족들은 그녀가 살해되었다는 경찰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힘겨워 한다.

 누구보다 사랑했던 첫째 딸을 잃은 아버지 '잭 새먼'은 경찰이 잡지 못하고 포기한 살인범을 찾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집착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아름답고 똑똑한 엄마이자 아내였던 '에비게일'은 비극의 무게를 끝내 견디지 못하고 가족의 곁을 떠나가고 만다.

 그리고, 14살의 나이에 예기치 못한 비극을 맞이한 수지의 영혼은 천상으로 떠나지 못하고 지상과 천상의 '경계(In-Between)'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게 된다. 고통과 절망 속에 빠진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의 첫사랑. 그리고 살인범의 모습까지...

 14살 소녀의 예기치 못한 죽음.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 삶의 끝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 사랑은 아픔으로 더 단단해진다!


정말 영화다운 발상이 담긴 영화, 러블리 본즈

이 영화를 보면서 신비롭다고 느꼈다. 그 신비로움의 배경은? 바로 14살에 살해당한 소녀의 시점에서 얼마든지 스토리를 끌어갈 수 있다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앞에서 말했듯이 많은 영화들은 산 자의 시각에서 죽은 자를 생각하고, 남겨진 자신들의 삶을 그리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발상자체가 아주 독특하다.

영화는 14세 소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내 이름은 수지 새먼이에요. 내가 살해당했을 때 나는 14살이었죠.” 주인공 소녀가 죽는다는 것도 밝혀졌고 누가 범인인지도 초반부터 드러난다. 죽은 자의 시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실재처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정말 영화니까 가능한 것들이 러블리 본즈에서는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아하게도 감독은 범인을 밝혀내서 복수하는 과정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다. 서스펜스나 스릴 같은 오락적인 요소는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때문에, 그런 스릴, 서스펜스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재미없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함께 극장에 간 친구 역시 그것을 기대했다가 엄청 실망했다면서 투덜거리면서 영화관을 나왔으니.

어쨌든, 이를 통해 봤을 때 감독이 집중적으로 그려내고자 한 것은 억울하게 살해된 소녀의 감정과 무참히 살해된 딸을 둔 부모의 심리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슬픈 이야기,

하지만 영상은 잔인하지 않다.

피로 낭자한 영화, 스크린에서 피가 꿈틀꿈틀 흘러내리는 것만 같은 영화를 수없이 많이 봐왔다. 보면서 죽은 자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는 커녕 비위가 뒤틀리기도 했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 영화가 잔인한 것인가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제작자들은 왜 잔인한 영화를 만들까? 잔인함을 영화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면 영화 속 사건이 자신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느끼기에 사람들이 더욱 긴장하고 조심할 수도 있을 것이니, 잔인한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때까지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결국 법에 의해 처벌을 받거나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식의 마무리를 하기에 그 엔딩으로 잔혹성을 무마시키고자 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다. 

영화는 발상의 시험장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그것을 100%활용했다. 잔혹함이 없는, 잔인하지 않은 살인사건 영화가 가능할까? 섬뜩한, 끔찍한 장면 없이 죽은 자와 살아있는 이들의 아픔을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할 수 있다"라는 답변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각의 변화만을 통해 잔혹한 장면 없는 범죄 영화를 만들어냈다. 수많은 영화들이 잔인함, 악랄함 등 악의 강렬함을 보여줬지만 독특하게도 이 영화는 악의 초라함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섰다.

 

 

치유를 위한 영화

마지막으로... 러블리 본즈, 이 영화는 치유를 위한 영화이다. 영화 속 전반적인 감정의 흐름은 안타까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녀가 살해당하는 것도, 죽었지만 천국에 가지 않고 지상 세계, 부모의 곁을, 동생들의 곁을 떠도는 것도 안타깝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레이를 바라만 봐야 하는 것도 슬프고, 범인찾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도 안타깝고,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멀리 남부지방의 외딴 오렌지 농장으로 떠나버릴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심정도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하지만 수지의 마지막 독백에서는 역경과 고난을 견디긴 힘들지만 바로 이런 것으로 인해 인간관계는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수지의 죽음을 이겨내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가족의 모습은 많은 살인사건,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영화 장르가 판타지일 것이지만.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그들에게 러블리 본즈 이 영화 속 해피엔딩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치유를 위한 영화. 그리고 영상과 사랑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 러블리 본즈.

영화를 보고나서도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그 안타까운 마음들이 아직도 내 마음 곳곳에 스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