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스크린 세상-영화보기

자르는 사람과 잘리는 사람들의 슬픈 자화상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꼬양 2010. 3. 21. 20:47

우리나라에는 없는 직업, 해고전문가. 직업적인 면에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영화인데...

근로자의 입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사장이 아니라 해고전문가다. 해고를 전문으로 하는 남자... 그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본다. 그 앞에서 구구절절 가정형편을 이야기하고, 회사에 꼭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해도, 그는 회사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가차없이 자른다.

 

해고대상자들의 입장에서 해고전문가인 그는 "단절"을 상징한다. 열심히 일했던, 또는 그 반대로 시간만 축냈던 회사로부터 안녕을 고하지만. 사람을 자르는 직업을 가진 그는 정작 자유롭다.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여행가방 하나에 넣은 채 1년 322일 비행기 여행을 하는 그는 세상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롭다. 절대 무겁거나 깊지도 않고, 얕을 뿐이다. 울거나, 화내거나 혹은 자살을 하겠다고 하는 해고대상자를 상대해야 하는 그이기에 관계로부터의 자유는 직업의 조건일수도 있겠다. 

자유로운 해고전문가의 이야기, 인디에어. 이 영화는 무엇을 담고 있는 걸까?

<줄거리>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날아다니며 1년 322일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미국 최고의 베테랑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그의 특기는 완벽한 비행기 여행, 유일한 목표는 천만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 7번째로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것. 텁텁한 기내 공기와 싸구려 기내식 서비스에 평온함을 느끼고, 모두가 싫어하는 출장 생활이 집보다 훨씬 편하다는 그. 12살 때, 할머니가 양로원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사람은 혼자 죽는다’ 라는걸 이미 깨달았고, 오지랖 넓은 누나의 잔소리를 용케 피해가며 여동생의 결혼식에서도 손은 잡아주지 않을 예정이다.

 천만 마일리지 달성을 앞둔 어느날, 온라인 해고시스템을 개발한 당돌한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등장한다. 만일 이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해고 대상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을 여행할 필요가 없게 된다. 무엇보다,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화상채팅으로 해고를 통보하는 것은 베테랑 해고 전문가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 결국 라이언은 당돌한 신입직원에게 ‘품위있는’ 해고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생애 처음 동반 출장을 떠나게 된다.

 한편, 라이언은 호텔 라운지에서 자신을 꼭 닮은 여인 알렉스(베라 파미가)를 만난다. 자신처럼 마일리지 카드에 흥분하고, 달라붙지 않는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자칭 ‘여자 라이언’이 등장한 것! ‘사람의 눈을 볼 때 상대가 내 영혼을 보듯 고요해지는 느낌’을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라이언 빙햄은 알렉스와의 만남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진실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배낭을 맸다고 상상하세요! 못 움직일 정도로 짐을 넣고 걸어가는 게 삶이랍니다.

"가방에 가진 걸 모두 넣어보세요!  배낭을 맸다고 상상하세요  어깨 위의 끈이 느껴지나요? 가진 걸 모두 넣으세요 . 선반과 서랍 속의 물건들부터 넣어 보세요. 무게를 느끼세요.배낭에 다 넣으세요. 걸어 보세요. 힘들죠? 이런 게 일상이죠. 못 움직일 정도로 짐을 넣고는 걸어가는 게 삶이랍니다" 강연장에 선 그는 자신의 배낭을 놓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는 자유분방한 그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때론 모든 걸 달관한 스님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각각 다른 크기의, 무게도 다른 배낭을 메고 삶이란 길을 걸어간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내 등에는 대체 어떤 짐이 있길래 이렇게 가는 길이 힘들까하며 좌절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영화 중간중간의 라이언 빙햄의 대사는 삶에 대한 교훈을 준다. 특히 누구나 다 짊어지고 있는 그 무거운 배낭을 태운다고 생각한다면? 뭘 뺄 것인가? 사진을 싫어하는 그는 사진은 머리 나쁜 사람들이나 찍는 거라고 치부한다. 그러면, 사진을 주로 찍고 글을 쓰는 나는 머리 나쁜 사람인 것인가? 나를 좌절케 하는 그의 대사.

마치 나에게 충고하는 듯 하다.

"머리 좋아지는 약 먹고 사진을 태워요 모두 다 태우고 상상해요. 내일 아침… 빈손으로 깨어난다고  기분 좋지 않아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나 머리 좋아요. 그렇지만 상상할게요. 내일 아침 빈손으로 깨어난다고요"

 

 

실제 해고대상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살아 숨쉬는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인 디 에어. 실제 해고대상자와 인터뷰 촬영을 했다는데...

영화 속 등장하는 해고대상자의 대부분이 영화 출연을 자진한 일반인들이라고 한다. 불황의 시대, 해고전문가라는 독특한 주인공의 직업으로 미국의 자화상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위해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은 당시 취업난이 가장 극심했던 미국 두 지역의 광고란에 실제 실직자 구인광고를 실시했다.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은 “사람들을 모아 해고통지를 받은 날 뭐라고 말했는지, 아니면 뭐라고 대답하고 싶었는지 물었다. 놀라웠던 건 카메라 앞에서 긴장해서 아무것도 못할 것만 같았던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솔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나 역시 영화 속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미국 상공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들의 감정, 기분을 쏟아내는 부분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해고를 당할 때의 심정을 쏟아내는 해고대상자들의 모습에서 눈동자 색은 달랐지만, 그들의 막막함과 절절한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독의 독특한 시도는 시나리오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날것으로 담는데 성공했고, 이 영화의 리얼함과 작품의 신뢰감을 높이는데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인생은 괜찮은가요?

1년 365일 중 322일을 여행하는, 특기는 완벽한 비행기 여행, 인생 목표는 천만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 7번째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 것인. 텁텁한 기내 공기와 싸구려 기내식 서비스에 평온함을 느끼고, 모두가 싫어하는 출장 생활이 집보다 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생활을 뒤 흔드는 위기도 나타난다. 효과적인 온라인 해고방식을 개발한 영특한 신입과 자신을 너무나 닮은 여자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사람의 눈을 볼 때 상대가 내 영혼을 보듯 고요해지는 느낌’ 따위는 모른다며 어떤 구속도 거부하는 철없는 남자, 여동생의 결혼식에서 손도 잡아주지 않으려는 남자에게 사랑이 다가온다. 그리고 몇 십년을 모른 척하고 살아왔던 가족들에게서도 정과 사랑을 느끼고...

자기 혼자만 알아왔던, 깊은 관계는 딱 질색인, 어쩌면 요즘 인간관계를 표방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는 라이언 빙햄을 보면서 나의 인생은 괜찮은가?, 나의 삶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은 미국 지역 곳곳의 모습을 담는데,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의 끝에서 주인공처럼 관객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각각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 새 배낭이 있습니다. 이번엔 사람을 넣으세요. 남편, 아내, 남자친구, 여자친구

모두 배낭에 넣어요. 태우라고는 안 할게요. 무게를 느껴 보세요 .삶의 가장 무거운 부분은 인간 관계죠 . 수많은 타협과 논쟁, 비밀과 화해… 다 들고 다닐 필요 없죠. 가방을 내려놓으세요.

며칠 전 뉴스를 보았다. 대졸여성 실직자가 통계 수치 중 최고를 이르렀다는 기사였는데... 이 영화는 미국의 자화상을 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주인공은 우리나라에 없는 해고전문가이지만, 어느 나라든 상황은 비슷한 것만 같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들고가는 가방.

너무나 무거운 짐들이 들어있다. 가족, 공부, 꿈, 욕심 등등...

과연 나는 이것들을 내려놓을 수가 있을까?

모두 다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거운 마음의 짐은 하나 둘 내려놓기를 바라면서 이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