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 알려진 소설가 코맥 매카시. 그의 작품 "로드"가 영화로 돌아왔다.
2007년 퓰리처상 수상,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 1위,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스티븐 킹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 모두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를 수식하는 경력들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 국내에 먼저 알려진 소설가 코맥 매카시는, 저명한 평론가인 해럴드 블룸의 극찬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이다.
그는 이 작품을 어린 아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을 때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매카시에게는 아홉 살 어린 아들이 있다. 낡은 호텔에 머무르던 어느 밤, 잠들어 있는 어린 아들을 보며 그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오십 년 혹은 백 년 후엔 이 마을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하다가, 산 위로 불길이 치솟고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렇게 해서 소설 "더 로드"가 탄생했다.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판권을 사지 못해 아쉬워하던 존 힐코트 감독이 "더 로드"의 판권을 사고, 그의 손을 통해 "더 로드" 영화는 탄생하게 되었다.
<줄거리>
대재앙으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지구. 폐허가 된 그곳을,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걸어간다. 남쪽을 향해가는 그들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얼마 안 되는 물품들을 담은 카트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살용으로 남겨둔 총알 두 알이 든 권총 한 자루가 전부다. 남자와 소년은 밤마다 추위에 떨었고, 거의 매일 굶주렸다. 식량은 늘 부족했고 숲에 만드는 잠자리는 춥고 불안했다. 수일을 굶다가 운 좋게 먹을거리를 만나면 그들은 주린 배와 카트를 채운다. 남자와 소년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잇따르는데...
배우들의 연기.
어두운 영화를 빛나게 하다.
"더 로드" 이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색은 회색, 잿빛, 검은색의 무채색이다. 때문에 황량하고 광대한 영화의 비주얼에 눌려 배우들의 연기는 묻힐 공산도 있다. 이렇듯 무미건조한, 피상적인 영화가 될뻔할 찰나, 이 영화를 살린 공신이 있다. 바로 배우들의 연기.
비고 모텐슨의 연기력이야 이미 다들 아는 사실일테지만 말이다. 비고 모텐슨은 극한의 상황속에서도 아들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역을 맡았다. 우리나라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김명민이 체중감량을 한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라 고생했다. 마찬가지로 비고 모텐슨 역시 굶주림 때문에 점점 말라가는 상황에 처한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대역 없이 20kg을 감량했기 때문이다. 역시, 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하다!
또한 박수를 쳐 주고 싶은 배우는 소년 역의 코디 스미스 맥피이다. 포스터에는 분명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나, 이름은 크게도 나오지 않은 아들, 코디 스미스 맥피. 하지만 코디 스미스 맥피는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유승호' 같은 존재로 한국 관객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나 싶다. 이미 사라진 문명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문명이 존재하던 “예전 사회”에 대한 어떤 기억도 지식도 체험도 없는 아들을 연기했다. 살아남은 모든 사람을 경계하는 아버지와 그 사람들에 대해 다가가려 하고 도와주려 하고 껴안고자 하는 아들의 역을 잘 소화해냈다. 정말 순수한 눈망울로, 선을 대표하는, 마음속에 불씨를 간직한 천사같은 아들을 연기한 코디 스미스 맥피.
악몽같은 여정을 통해 희망을 느껴가는 영화
정말 많은 재난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가깝게는 중국 쓰촨성 지진, 동남아를 강타한 쓰나미, 멀게는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미국의 뉴올리언즈 등을 보며, 우리는 묵시록적 세계의 어떤 전조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안고 오늘을 살아간다. 때문에 이 영화가 그리는 세계가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미래의 황폐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 세상이 온통 폐허가 되었는지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선문답 같은 대화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데다가 영화는 우리가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보다 한 걸음 더 깊숙이 나아간다. 이 가혹하고 악몽 같은 여정을 스크린을 통해 따라가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옛 세상의 기억을 간직한 생존자가 한편으론 그 기억을 견디고 한편으론 생존이라는 현실을 버텨야’하는 걸 지켜보면서는,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하지만 고통스럽고 음울한, 악몽같은 여정을 통해서 그 끝에서 만난 희망, 그렇게 힘들게 만난 희망은 더욱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 로드", 이 영화를 많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 남자의 세상 방랑기, 어느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옥으로 가는 여정을 담은 또 하나의 단테의 『신곡』”, “사무엘 베케트 식으로 다시 쓴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영혼의 여정을 다룬 작품 등 다양한 말을 하곤 한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을 뒤로하고, 작가는 이 작품을 “아버지와 아들이 길을 떠나는 이야기”라고만 말했다. 실제로 매카시는 이 작품을 어린 막내아들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아버지와 아들의 절절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남자는 아들이 더 큰 고통을 겪기 전에 아들을 죽이고 자신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극도의 공포에 시달린다. 죽음 직전에 다시 살 길을 열어주는 행운을 만나게 돼도, 남자는 “진짜 행운이란 이런 게 아닐지 모른다”며 죽은 자들을 부러워한다.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들 아버지와 아들에게는 최소한 서로가 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서로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세상은 잿빛. 불에 탄 세상은 온통 재로 뒤덮였고, 하늘 가득 떠도는 재에 가려 태양도 보이지 않고 한낮에도 흐리고 뿌연 빛만이 있는.
무채색의 황폐하고 고요한 땅,
신은 사라지고 신을 열렬히 찬미하던 이들도 사라진 땅.
이런 죽음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일,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던 영화
더 로드.
포스터의 문구대로.
어쩌면 인류 마지막 사랑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관람 전 유의사항>
1.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하는 데 살짝 어려울 수도 있음.
But, 주의깊게 본다면 별 무리는 없음.
2. 재미 < 감동
재미를 원한다면 이 영화는 살짝 무리가 아니라 아주 무리임. 일단, 재미보다는 감동이 더 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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