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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두 여인의 맛있는 레시피 - 줄리 앤 줄리아

꼬양 2009. 12. 31. 12:54

뉴욕의 요리 블로거, 줄리.

뉴욕에 사는 그녀지만, 왠지 남같지 않은 그녀.

영화를 보기전부터 왜 이리 친근감이 드는지.

이윤? 나도 요리 블로거였다. 2년전만 해도... -_-;

최근 베스트 블로거가 되었지만 나의 추천 키워드는 "요리, 베이킹"이라는 사실...;;

난 여행이나 영화 이쪽으로 될 줄 알았으나... -_-;;; 어쨌든...

 

시간을 뛰어넘어 요리로 이어진 두 여자 줄리와 줄리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2년전 요리 블로거였던 내가 블로그 영화 줄리 앤 줄리아 리뷰를 끄적일줄이야 누가 알았던가.

 

 

줄거리

2002년 뉴욕 퀸즈. 텍사스 대학에서 연기와 극작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평범한 오피스 걸이 된 줄리 파웰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혼자만의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이름하여 ‘줄리아/줄리 프로젝트’로서, 1950년대 프랑스의 유명 주방장으로 명성을 떨쳤던 미국여성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에 소개된 524개의 요리법을 1년동안 직접 재현하여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처음 요리했던 감자 수프야 쉬었지만, 그 이후 요리들은 점점 복잡해지면서 많은 노력과 정성을 요구한다. 한밤중에 버터를 사기위해 남편 에릭이 출동하는 등 각가지 소동이 이어지는 동안, 줄리는 자신의 조그만 부엌이 창조의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로 바뀌어가고 동시에 자신의 인생에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한편, 과거의 줄리아 차일드 역시 처음부터 유명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1940년대에 미국 외교관인 남편 폴을 따라 프랑스 파리에 온 그녀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취미생활로 요리학원을 다니는데,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다. 때마침 미국에 분 ‘맥카시 광풍’은 남편 폴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고, 이에 줄리아의 가정도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맛있는 프랑스 요리가 스크린 가득

프랑스 음식이라는 맛있는 주제를 다뤘기에 이 영화에서 음식의 비중은 두 말 할 것 없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영화 속 수많은 장면이 음식을 준비하거나 먹는 장면이라서 그 수준과 정확성이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때문에 제작진은 수년 간 레스토랑에서 요리 만들었고 음식에 대한 기사를 써 왔던 요리 연구가 ‘수잔 스펑겐’과 수석 요리사 ‘콜린 플린’을 영입하였다. 이 두 사람은 영화에 나오는 모든 요리를 만들고 기술적인 자문을 제공했다. 특히, ‘수잔 스펑겐’은 캐릭터가 직접 요리를 하는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숙달된 요리사가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화면 속에 재현,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아닌게 아니라 영화를 보다보면 정말 주인공 줄리가 직접 요리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스크린을 수놓는 화려한 음식들때문에 침이 꿀꺽꿀꺽 넘어가기도!

솔 뫼니에르(버터에 구운 가자미), 뵈프 부르기뇽(부르고뉴산 와인을 넣은 쇠고기 찜) 등 각종 프랑스 요리들을 감상하다 보면 절로 입맛을 다시게 된다.

요리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영화
『줄리&줄리아』는 프랑스 요리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요리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고 본다. 영화에서는 살짝 스치고 지나갔지만 어릴 때부터 조숙했던 줄리 파월은 "프랑스 요리 예술의 대가가 되는 법"라는 두툼한 요리책의 첫인상을, 아버지가 욕실 서랍장에 감춰둔 성인책자를 몰래 훔쳐봤던 짜릿함에 비유한다. 골수즙 소스를 만들기 위해 소다리뼈를 절단할 때는 그 뼈를 강간하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다양한 프랑스 요리의 맛을 나레이션을 통해 줄리는 언급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 에는 줄리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끝없이 격려해주는 남편 에릭. 무모한 줄리의 시도를 말리려는 소심한 어머니. 하지만 이 이야기가 뉴욕을 배경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인물들은 줄리의 세 친구다. 하나같이 독특한 캐릭터를 자랑하는 이들은 주인공 줄리와 어우러져, 뉴욕에 살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생활과 생각을 잘 보여준다. 그 중에서 제일 밀리는 줄리. 왜 밀리는 지는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될 것이다. 너무나도 잘난 친구들에게 둘려싸여서 열등감을 느끼고 좌절, 실망하는 그녀의 모습. 

그녀의 친구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을 떠올리곤 했다.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다채로운 면면들과 어우러진 그녀들의 이야기는 ‘요리를 통한 성장’이라는 주제를 감싸면서 영화가 풍성해지지 않았나 싶다.

 

영화속에서는 현재형으로 펼쳐지는 줄리의 도전과 실패, 성공은 1948년 남편 폴(스탠리 투치 분)의 부임으로 떠난 프랑스 파리에서 요리를 향한 열정을 깨닫고, 르코르동 블루에 입학해 요리를 배우고 수년의 노고 끝에 요리책을 출판하기까지 줄리아(메릴 스트립 분)의 과거와 긴밀히 연결된다.

또한 주의깊게 봤던 점은 메릴 스트립의 연기다. 줄리아는 키가 188cm에 이르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스리랑카와 중국에서 전략정보국의 일원으로 복무했으며 30대 중반에 시인 겸 사진가와 결혼해 불현듯 요리의 매력에 빠져든 인물인데, 메릴 스트립은 이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 독특한 억양과 과장된 몸짓, 천진난만한 표정 등이 최고의 프렌치 셰프가 되기 위한 줄리아의 단호함과 서글서글한 호탕함, 내면 깊숙한 곳의 슬픔, 큰 덩치와 묘하게 어울리는 귀여움을 절묘하게 잘 표현해서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도 한 번 시작해볼까?
블로그를 안하는 관객이 제일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나도 한 번 시작해볼까?"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줄리 파월처럼 요리 프로젝트일 수도, 미뤄뒀던 외국어 공부일 수도, 꿈꾸던 순례여행일 수도 있다. 가슴을 뛰게 하고 마음을 움직여 행동으로까지 이끄는 것은 실화가 가진 고유한 힘일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이와는 다르다. 프로젝트가 아닌 단순 기억의 보물창고로 블로그를 운영했었기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찾게 되면서 내 자신의 창고가 아닌 사람들의 창고인 블로그가 되었지만 말이다.

비록 멀리 미국 땅에서 벌어진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나이 서른에 임시직을 전전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전망도 없는 한 여성이 자기만의 도전을 시작하여 지리멸렬한 일상을 이겨내는 과정이 이 영화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들의 힘겨운 현실과 맞물려 깊은 공감과 울림을 이끌어내지 않나 싶다. 

그리고 블로그를 하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본다면, "나도 요리나 해볼까?" 또는 "다시 블로그 관리를 할까" 이 정도가 될 듯 싶다. 물론, 이 리뷰를 적고 있는 나 역시 "다시 요리를 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은 나의 버터이자 숨

이 영화에서 키워드 대사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밥 줘” 대신 “저녁은 뭐야”라고 말을 건네는, 임신한 동생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줄리아에게 말 없이 어깨를 내밀 줄 아는 부부 간의 끈끈한 애정과 신뢰를 영화속에서 볼 수 있었다. 음식에 풍미와 고소함을 더하는 버터처럼, 남편은 삶의 걸림돌이 아니라 행복과 즐거움의 원천이라는 사랑 가득 담긴 이 문장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줄리 앤 줄리아.

시대를 뛰어넘은 두 여인의 맛있는 인생, 요리 레시피가 담겨 있는 영화.

감동적이며, 유머러스한 영화라 평가하고 싶다.

다만 에피소드가 별로 없기에 영화가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유의사항.

식사를 든든히 마친 다음, 관람하길 권한다.
(저녁도 안 먹고 7시 반에 홀로 이 영화를 관람한 꼬양은 서러움과 배고픔에 혼절할 뻔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