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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전우치전을 생각하면 오산! 2009년 새롭게 태어난 악동 전우치

꼬양 2009. 12. 24. 16:45

전우치전 내용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 말고, 바로 고전 소설 전우치전말이다. 홍길동전에 밀려서 전우치전은 늘 2인자였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전우치전은 매우 흥미진진한 고전소설로 꼽힌다. (나의 주관적인 기준인가?-_-;)

특히나 홍길동전보다 더 흥미로운 이유는 주인공 전우치가 부리는 갖가지 기기묘묘한 도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우치의 매력도 그 흥미를 돋운다. 바로 그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기에.

여러 문헌에 이름도 田禹治, 全禹治, 田羽致 등 각각이고 그의 도술 및 행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다.

손오공도 아니면서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제철도 아닌데 순식간에 나무를 키워 온갖 진기한 과일을 따오거나 그림 족자에서 미인이 나오게 재주를 부리기도 하고 중국을 무대로 도술을 펴고 나중에는 왕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리고 전우치는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살았던 실존인물로 추정된다. 정통 역사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가 살았던 무렵부터 그의 뛰어난 재주와 도술에 대한 여러 가지 짤막한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우치에 대한 문인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전우치를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재주는 있으되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아라고 말이다.

일반 민중이나 스스로 그와 처지가 같다고 생각한 일부 선비들은 전우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대신 드러냈다.

가령 전우치의 도술로써 못된 관리나 양반들을 혼내면서 통쾌하게 세상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전우치는 그가 실제로 어떤 도술을 부렸는지와는 상관없이 입에서 입으로, 즉 구전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신비로운 인물로 다시 창조되어 갔다.

 

그리하여 2009년에 이르러 최동훈 감독의 손으로 전우치전은 다시 태어나는데...

고전소설과는 다른, 스크린에서 새로 태어난 전우치를 만나볼 수 있었다.


 

 

 <줄거리>

500년 전 조선시대.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이 요괴 손에 넘어가 세상이 시끄럽자, 신선들은 당대 최고의 도인 천관대사(백윤식)와 화담(김윤식)에게 도움을 요청해 요괴를 봉인하고 ‘만파식적’을 둘로 나눠 두 사람에게 각각 맡긴다. 한편, 천관대사의 망나니 제자 전우치(강동원)가 둔갑술로 임금을 속여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자, 신선들은 화담과 함께 천관대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천관대사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피리 반 쪽이 사라졌다!
범인으로 몰린 전우치는 자신의 개 초랭이(유해진)와 함께 그림족자에 봉인된다.

요괴 잡는 도사도 어느덧 전설이 된 2009년 서울.
어찌된 일인지 과거 봉인된 요괴들이 하나 둘 다시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제는 신부, 중, 점쟁이로 제각각 은둔생활을 즐기던 신선들은 다시 모여 화담을 찾지만, 500년 전 수행을 이유로 잠적한 그는 생사조차 알 수 없다. 고심 끝에 신선들은 박물관 전시품이 된 그림족자를 찾아 전우치와 초랭이를 불러낸다. 요괴들을 잡아 오면 봉인에서 완전히 풀어주겠다는 제안에 마지 못해 요괴 사냥에 나선 전우치. 그러나 전우치는 요괴사냥은 뒷전인 채 달라진 세상구경에 바쁘고, 한 술 더 떠 과거 첫눈에 반한 여인과 똑같은 얼굴을 한 서인경(임수정)을 만나 사랑놀음까지 시작한다. 전우치 때문에 골치를 앓는 신선들 앞에 때마침 화담이 나타나지만, 화담은 만파식적의 행방을 두고 전우치와 대적하는데...

 

 

동양 고유의 철학이 담겨있는 도술. 스크린에 화려하게 담기다.

헐리우드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이때까지 많은 영웅을 봐왔다. 그런 영웅들에게 있어서 특출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수퍼맨은 초능력을, 스파이더맨은 아주 강력하고 유용한 거미줄, 배트맨은 첨단무기를, 아이언맨은 말 그대로 강철의상을, 그리고 해리포터는 마법을 지녔다.

이 서양 영웅을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들은 못하고 우리만 할 수 있는, 한국 영웅이 내세울 수 있는 것, 바로 도술이 있기에.

마음을 다스리는 ‘도’에 기반한 도술은 동양 고유의 철학이 담겨 있는 신비로운 소재이며, 친근한 소재이기도 하다.

부적을 써서 환영을 만드는 둔갑술이나 복제술,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동술, 자유자재로 주변 사물에 모습을 숨기는 은신술, 앉아서 삼천리를 내다보는 투시력,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 등 각종 신기한 술법들에, 축지법, 경공술 등 신출귀몰한 동양무공이 가미된 도술액션까지, 서양의 과학적 무기, 마법 등과는 차별화된 매력의 독특한 세계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제작비도 거대하게 들어간 만큼 도술을 부리는 전우치의 모습, 그리고 요괴들과 맞서 싸우는 액션 씬 등은 심심치 않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력도 좋았지만 주연보다도 조연들에게 박수를.

영화를 보면 빠짐없이 언급하게 되는 배우들의 연기력.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헐리웃 영웅들에 반해, 전우치는 자신의 도술실력을 널리 알리고 뽐내고 싶어한다.

자유롭고 솔직하다 못해 뻔뻔하기 그지 없을 때도 많으며, 술과 풍류를 즐기고 여자를 좋아해 바람둥이 기질까지 있다. 봉인에서 풀어주겠단 말에 마지못해 요괴 잡는 임무를 맡았을 정도로, 대의명분 따윈 관심도 없다. 사명감이나 의무감 따위가 거의 없는 대신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자기 명성에만 신경쓰는 천방지축 히어로. 강동원은 정말 잘 어울렸고 캐릭터를 무난하게 잘 소화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전우치전은 개봉전부터 험난한 와이어액션을 모든 배우들이 소화했다고 해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고생은 모든 배우, 스텝들이 다 했지만 영화 속에서 제 몫을 해낸 것은 주연보다도 조연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특히 초랭이 역의 유해진.

도사가 아닌 개인간이므로 특별히 부릴 줄 아는 도술은 없으나, 힘 하나는 천하장사 전우치의 친구이자 조력자인 초랭이는, 시공을 초월한 모험을 함께 하는 전우치의 유일한 길동무이다. 이름처럼 촐랑거리고 말 많은 수다쟁이에, 가로등을 뽑아 무기로 휘두를 수 있을 만큼 힘이 어마어마하게 센 캐릭터. 이 캐릭터를 유해진은 아주 잘 연기했다. 웃음의 절반은 이 유해진으로 온 것으로 보기때문이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 역할을 누가 했을까? 정말 떠오르는 배우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유해진은 이때까지 본적 없는 개인간 초랭이의 역할을 아주 잘 해냈다.

리뷰 제일 상단의 세 분.

아니 세 신선.  중, 무당, 신부의 모습으로 은둔 생활을 하는 세 신선은 전우치의 감시자이자 조력자 역할을 한다. 요괴를 찾아내고 주문을 외워 봉인하지만 가장 큰 약점은  잡는 법을 모른다는 것! 신선들은 500년 후에 전우치를 족자에서 불러내 감언이설로 꾀어 요괴 잡는 일을 맡기지만, 망나니처럼 사고만 치는 통에 골치를 앓는다. 요괴를 잡기 위해선 전우치를 도와야 하는 조력자이자, 한편으론 전우치를 감시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자들이다.

중 역할은 송영창씨가, 무당은 주진모씨가, 신부 역에는 김상호씨가 맡았다. 이 세 사람의 연기 조합은 정말 환상이다.
송영창씨의 경우에는 신선일행의 대장노릇을 하는데 능구렁이처럼 전우치를 꼬셔대는 수준급 아부가 장난아니다.

까칠한 성격의 둘째 무당을 연기한 주진모씨.  요괴 잡는 것이 급하다고 꽁꽁 숨어버린 화담 대신 전우치를 불러낸 중과 신부를 못마땅해 한다. 시종일관 툴툴거리는 캐릭터를 연기.

그리고 호우시절에서도 봤던, 정말 또다시 보니 반가운 김상호씨. 신선일행의 막내이고 형들에 비해 다소 어리버리하지만, 신선 셋 중 전우치를 가장 따뜻하게 대하고 믿어주는 착한 마음씨를 지닌 역할을 아주 잘 해냈다. 이 캐릭터들은 각각 떼어내면 평범하지만 뭉치면 엄청난 웃음을 주는데, 이 세 신선 역시 전우치전을 빛낸, 박수를 받아 마땅한 조연들이라고 생각한다.

그외 선비같은 악마의 모습을 연기한 김윤석씨, 그의 연기를 늘 기대를 하곤 한다. 타짜에서 그의 연기에 완전 빠져버려서일까, 이번 전우치전에서는 뭔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우치의 스승을 연기한 백윤식씨. 아주 짧게만 나와서 아주 아쉬웠다. 또한, 안하무인 공주병 톱스타를 연기한 염정아씨의 연기도 웃겼다. 몸을 사리지 않는, 망기지는 연기가 일품이었던.. 더 망가지면 좋았을지도?

 

 

 

2009년 새롭게 태어난 전우치. 살짝 아쉬운 점도...

영화 전우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아 있는 영화다. 도적의 무리를 벌하거나 임금을 속여 황금 들보를 얻어내어 그것으로 쌀을 사서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는 등 뛰어나고 재미난 도술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그 밑바탕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을 찾아 새로운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깔려 있는 고전과는 달리, 이 영화는 무엇이 담겨있는걸까?

화려한 영상만 있고, 주제는 없는 게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고대소설 전우치전을 통해 우리 정치, 역사, 사회 등을 한번쯤 돌이켜보고 우리 사회를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다지만 영화를 통해서는  우리는 대체 무얼 생각해봐야 하는걸까?

화려한 액션, 음악,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영화를 보고 뒤돌아서면 허전한 속마음은 가눌 길이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