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4분의 일. 이 책은 독특한 실마리를 통해 풀어가는 서정적인 이야기와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는 결말의 단편 소설 4편을 모은 것이다.
공통점이라고 하면 4편의 소설 모두 모두 한결같이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1인칭 시점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 4편의 작품속에서는 작가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투영되어 있다.
보상받지 못한 엘리시오를 위해
비틀즈의 'If I fell' 노래.
fell이란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fell을 넘어진다고 번역해 망신당한 이야기가 책 속에 등장한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고 번역하지만 넘어진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그리고 내 마음을 울린 이 말.
'퀸이 오로지 킹을 지키듯이, 어쩌면 나는 지금의 너를 지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말인지도 몰라. 그리고 퀸이 모든 것을 걸고 그렇게 하듯 나도 전력을 다해 너를 찾아내서 구해내겠다.'
나를 지켜줄 단 하나의 말은? 어쩌면 지금까지 난 그 말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켄싱턴에 바치는 꽃다발
'지금의 나는 어떤 이에게 몇 기린일까?'
동물원에서의 거래는 기린이 화폐처럼 통화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동물은 기린을 통화로 해서 거래가 된다고 하는데.
누군가에게... 난 몇 기린일까?
지켜야 할 거리와 쌓여가는 짐의 무게만 주의하면 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서로에게 마음으로 의지하고 마음으로 안아준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슬퍼서 날개가 없어서
'만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랑스러워질 때도 절실할 때도
슬퍼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저에게는 날개가 없습니다.'
날개가 없어 마츠자키에게 날아가지 못한다는 마미
아무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를 만났을 때는 또 그사람을 위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가진 사랑.
그리고 그 남자의 좁은 방안으로 스며들던 햇살, 그 따뜻했던 방이 그리웠기에 눈물 흘려야 했던 마미.
마미와 마츠자키의 사랑은 편히 쉬고 싶은 가슴을 원하는 것, 그렇게 편히 쉴 수 있는 가슴을 온전히 상대방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였던가......
9월의 4분의 1
켄지와 나오의 사랑은...?
"몇 년뒤에 어디에서 다시 만나요" 라는 말은 영화나 소설속에서 곧 잘 등장한다. 나 역시 한때 누군가와 그런 약속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못한 채 영원히 가슴속에 묻혀버리고 마는데, 지켜졌기에 아름다웠던 사랑이야기가 있었다.
십년 뒤 오월, 피렌체 두오모에서 만나기를 약속했던 아오이와 쥰세이의 이야기 "냉정과 열정사이"는 예외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떠오르게 해 주었던 마지막 이야기 '9월의 4분의 1' 은 아름다웠다. 9월 4일에서 만나요, 라는 수수께끼같은 메세지를 남겨둔 채 떠나버린 나오를 9월 4일마다 기다렸던 겐지.. 만나지 못한채 13년을 보내버리고 다시 그녀를 처음 보았던 그랑 플라스.. 그리고 그곳에서 알아버린 9월 4일역까지.
똑같이 그녀를 기다리는 겐지.. 하지만 만날 수 없는 그녀, 나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게 있다. 안개가 낀 듯이 흐리든, 어쩌면 의식적으로 흐리게 했던 것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보이곤한다. 그것은 바로 과거이다. 과거의 일들이 더러워진 유리를 닦은 것처럼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나를 이루는 것은 다름 아닌 과거이며 기억이라는 것을. 그리도 현재의 나를 지탱시켜 주는 것은 무심코, 혹은 안타깝게 놓쳐버린 과거의 사랑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과거의 사랑속에서만 살아도 안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희망을 갖는다는 건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시도를 하는 건 실패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위험에 뛰어 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우린 소설속의 등장인물들과는 다르기에.
안타깝게 놓쳐버린 과거의 사랑은 기억속에 묻어둬야만 할 것이다. 나도 그러할 것이며...
잃어버린 사랑의 느낌이란 무엇일까?
짙은 회색 안개가 나를 감싼 듯한 느낌.
황량한 사막에 나홀로 버려진 느낌?
잃어버린 사랑은
철거된 건물처럼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잔상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잔상이기 때문에 보다 더 선명하게
마음에 계속 투사되는 면도 있다.
남겨진 건물보다도
철거된 건물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듯이.
이렇듯, 잃어버린 사랑은 잔상만이 남아있는 느낌이다.
9월도 다 지나간 11월의 중간에서 9월을 떠올리는.
같으면서도 묘하게 다른 빛을 뿜어내는 4가지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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