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10살 여자아이 사키와, 이야기꾼(작가)인 사키의 엄마가 함께 겪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열두 개의 콩트로 나누어 담은 책입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형식을 띠며, 이러한 모녀의 이야기를 통해 애틋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동시에 삶의 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애절하고, 때로는 배꼽을 쥐고 웃을 만큼 귀여운 에피소드들이 그림 작가 오나리 유코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책 속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된 비교적 짧은 이야기들이 엮여져 있지만 느리고 더딘 호흡으로 읽고 싶은 작품이죠.
이보다 천진난만할 수 없다. 사키의 독특한 상상력
태풍 오는 날 창문을 열어뒀던 꼬맹이 사키. 유리창이 부셔지고, 화분이 날아가고.. 집안은 온통 아수라장.
아니나다를까 엄마에게 혼이 납니다.
사키는 왜 창문을 열었을까요? 사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너무너무 걱정이 되는 거야. 그래서, 집 안으로 바람을 들어오게 하면 조금이라도 바람이 가라앉지 않을까 해서 창문을 열었던 거거든. 그러면 바람을 가둘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평상시 내리는 빗방울이 아이라고 치면, 태풍 오는 날 비는 뚱뚱한 아저씨같은 빗방울이겠죠? 뚱뚱한 아저씨 빗방울이 창문을 세차게 내리치던 어느 비오는 날. 갑자기 수돗물을 틀던 사키.
사키가 물을 튼 이윤? 엄마에게 사키는 조용조용 말합니다.
"난 수돗물이라는 게 강하고 바로 연결된 걸 줄 알았어. 강에는 물이 많잖아. 그래서 강물이 넘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도꼭지를 열었던 거야."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소리지르는 건 안되는걸 느꼈죠. 어리다고 무시해서도 안되는 거고, 아이들도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거죠.
그리고 사키의 대답. 웃음을 머금게 하죠? 사키는 바람을 배려할 줄도 알고, 넘치는 강물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생할까봐 걱정도 하는, 마음씨 고운 아이죠.
그 고운 마음씨에 읽으면 읽을수록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됩니다. 이 아이가 이대로 작은 것에 마음 쓰는 고운 아이로 잘 자라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구요.
사키는 날마다 자라고 있지요. 날마다 엄마랑 이야기를 하면서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만큼씩 자라고 있습니다. 키도 자라고, 생각의 키도 자라구요. 조금씩, 조금씩. 그 순수함은 그대로.
편모가정 아이의 아픈 마음
딸과 엄마, 사키는 편모가정에서 자라고 있죠. 이야기꾼인 엄마는 사키가 무의식중에 생각하는 것들, 혹은 상처받지 않을까하는 걱정도담백하게 풀어나갑니다.
하지만 엄마가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곰군의 이야기는 사키의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아픔을 건드립니다.
곰군(엄마와 사키의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곰을 말합니다)의 성(姓)이 바뀐 것에 사키는 신경을 씁니다.
여기서 일본의 문화에 대해 하나 알고 가야하는데요. 일본에서는 결혼을 하면 여자의 성이 바뀌는데 이혼을 하면 다시 여자는 본래의 성으로 돌아옵니다.
곰군 역시 성이 바뀌었단 사실을 엄마가 나중에 사키에게 말하게 되는데,엄마와 둘이 사는 것에 대해 그다지 표현하지 않았던 아이의 아픈 마음을 툭 건드리게 되지요. 아버지가 궁금하지만, 엄마가 아파할까봐, 엄마가 곤란해할까봐 애써 외면하는 모습에선 엄마의 사랑으론 부족한 부분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면, 10살이지만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세상 보석보다도 예쁘구나란 생각도 하게 되구요.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고등어 조림이 지나가네요.
원래 가사는 “달의 사막을 멀리멀리 낙타를 탄 나그네들이 지나갑니다” 이게 됩니다.
달의 사막을 멀리멀리... 이 동요는 다이쇼 시대에 발표된 것이죠.
근데 왜 갑자기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이 제목일까요?
이윤 따로 있습니다. 사키의 엄마는 음치죠. 찬송가를 부를 때, 사키조차 하느님에게 "엄마가 노래를 너무 못해 죄송해요" 이렇게 죄송한 말씀을 드리긴 하지만... 그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그 노래만큼은 사키도 좋아하게 됩니다.
사키의 엄마는 부엌에서 고등어조림을 만들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엄마의 주특기인 음정, 박자 모조리 무시. 심지어 개사까지.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고등어 조림이 지나가네요."
이리하여 탄생된 노래죠^^ 고등어가 종종거리면서 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상당히 귀엽죠? 특히 사박사박이란 표현. 사박사박이란 말은 배나 사과, 바람이 든 무 따위를 가볍게 자꾸 씹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또는 모래나 눈을 잇따라 가볍게 밟는 소리. 또는 그 모양을 일컫죠.
하지만 "달의 사막을 고등어 조림이 지나가네요."라는 재밌는 노래의 가사보다는 "달의 사막을 멀리멀리 낙타를 탄 나그네들이 지나갑니다." 라는 원동요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조용한 일상이, 친구같은 엄마와 아이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만, 어딘지 조금은 외로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훌륭하게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일반의 책들과는 달리 극적인 갈등이나 강도 높은 카타르시스는 없는 게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모녀의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일상과 그 일상의 영위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삶의 기쁨을 느끼고, 그리고 점점 이 책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너무 사랑스러운 사키를 보면서 어릴 적 나도 이렇게 예쁜 딸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게 나를 꼭 닮은 딸 아이를 낳아서 사키 엄마처럼 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기도 하단 생각도 듭니다. 매일 매일이 너무너무 신나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겠죠?
그리고 요즘은 가족구성이 많이 바뀌었죠. 한부모 가정이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역시 상황은 다를 게 없죠.
한부모 가정이라고 하지만 세상의 편견, 아픔속에서도 사키와 엄마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세상의 선입견에서도 모녀가 행복한 일상들을 살아나가길 바라며. 그리고 그 순수함과 고운 마음씨도 그대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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