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자신을 소개할 때 “화가 겸 정원사”라고 말했다고 하죠. 모네는 화가로서 인정받은 후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집을 샀고, 이 집에 딸린 정원을 가꾸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모네의 후기 작품 대다수는 지베르니의 정원과 연못을 그린 회화죠.
그리고 자신의 묘비명에 “작가 그리고 러너”라고 쓰고 싶다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그에게 달리기는 소설쓰기의 또다른 이름이죠. 어쨌든 이렇게도 좀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하루키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게 한, 이 유명한 작가의 “댄스 댄스 댄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상, 하권으로 나뉘어 있어서 읽는데도 한참이 걸렸더랬죠-_-;
리뷰도 한참 걸렸습니다. 아, 힘들어-_-;
참, 이 책을 골랐을 때 서점아저씨의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계산 하려고 하자 대뜸 하시는 말씀.
“춤 배우시게요?”
가볍고 즐거워 보이는 책 제목과는 달리 작가는 이 책에서 환멸로 가득찬 이 세계 속에서 “존재의 정당성”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열정의 이데올로기 시대를 지나 무료한 고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느끼는 “존재의 가벼움”에 접근하고 있지요. 운동권 출신인 30대 남자의 방황을 통해 잃어버린 이념의 실체를 확인하고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줄거리>
주인공 '나'는 잡지사의 자유 기고가입니다. 더불어 운동권 학생 출신의 이혼 경력이 있는 남자죠. 친구와 애인, 정치 이념은 물론 젊음마저 잃고, 상실의 시대를 살며 관념의 세계를 방황합니다. 그런 '나'에게 '양사나이'는 "춤추어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되도록 멋있게 춤을 추어라"라고 말합니다. '나'는계속 춤을 추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과 쾌락을 추구하다 시련도 겪지요. '키키', 청순하고 조숙한 열세 살 소녀 '유키', 그녀의 어머니 '아메', 학창 시절 동창생 '고혼다' 등을 둘러싸고 파란만장한 사건과 의문의 죽음이 이어지는데...
책 속 “나”의 이념운동. 전.공.투 학생운동이란?
60년대 말, 저자 하루키도 참여했던 `전공투` 학생 운동. 이 운동은 반미 반체제적인 정치 투쟁입니다. 한국의 운동권 학생들과 비슷한 성격의 투쟁을 전개했었죠. 일본의 전공투 학생들은 경찰에 대한 투석과 화염병 공격을 자행했고, 경찰은 최루탄과 진압봉 세례로 맞섰죠. 결과는? 경찰이나 학생 모두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60년대 말 마침내 전공투 학생 조직은 붕괴되고, 이념과 정치와 애인, 그리고 친구 등 모든 것을 잃게 된 주인공인 `나`는 갈 길을 잃고 방황을 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와 그 안의 삭막한 인간관계를 빗대어 묘사하다.
책을 읽다보면, 고급 콜걸도 회사돈으로 처리하고, 회사 돈을 쓰지않는다고 회계사에게 한소리를 듣기도 하고. 룸싸롱에서 손님 접대를 하고, 경비를 쓰지 않는 다른 회사의 이야기에 고급차인 마세라티를 구매하기도. 자신의 딸을 돌봐준 남자에게 경비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며 30만엔의 수표를 보내고 심지어 일본에서 하와이까지 여자까지 보내는 이런 식의 이야기를 소설에는 접하게 됩니다. 회사 돈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조차 돈으로만 계산되는 현실을 작가는 비판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주인공 “나”는 돈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습니다. 통장엔 늘 돈이 여유로웠죠. 그리고 주는 돈마저도 거절합니다. 또한 그는 돈 욕심조차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항상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내가 나사못과 같은 존재, 태엽과도 같은 존재인 것 같죠.불안과 불만을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 그런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는 약간 다른, 아니 많이 다른 주인공 “나”의 모습을 소설 속에는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연히 만난 유키라는 소녀를 무사히 도쿄로 데려다준 일을 계기로 엄마도 아빠도 신경을 쓰지 않는 유키를 때론 친구처럼, 때론 보호자처럼 챙기기도 하지요. 그에게 돈으로 보답을 하려는 유키의 아버지에게 “돈으로 얽혀 의무감으로 만나기보단 자신도 그녀와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그녀도 자신과 만나는 것을 원한다면 언제나 만날 것”이라는 그의 말을 통해 그의 정말 독특함을 알 수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맞죠. 하지만 비현실적인 세상에서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의 세계, 그의 관념속에서는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에겐 관계없는 문제다
그것은 '나의 문제' 라기 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문제' 인 것이다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죄다 고독하고 도시에서 혼자 살아갑니다. 그러나 많이 외로워 하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지키면서 쿨하게 살아갑니다. 남들과 엮이지 않고 다른 이의 호의에 기대지 않고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벽을 치기도 하구요. 어김없이 그런 주인공이 나옵니다. 나를 어떻게 본들 전혀 거리끼지 않고 나를 보는 그들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리는.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비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춤을 추어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되도록 멋있게 춤을 추어라
댄스 댄스 댄스의 매력적인 테마라고 할 수 있는 이 문구. 춤을 춘다는 것은 분위기에 맞는 춤을 춰야 하기도 하며, 나와 같은 춤을 추는 파트너의 발을 밟지 말아야 하고 또한 같은 공간의 다른 커플들과도 부딪히지 말아야 하죠. 이 소설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나”자신이 자기 이외에 모든 사람들과 관계성을 회복하고 새로이 정립해나가는 적극적인 행동의 비유를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삶을 유독 춤에 비견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을 쫓는 모험”이나 제가 읽은 “댄스 댄스 댄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서 보면 “삶이란 춤을 추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삶과 춤은 참 닮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만의 춤을 추며 살아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죠. 때로는 타인에게 다가가 함께 춤을 추기를 권하기도 하고 느낌이 통하면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춥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이렇게 춤은 삶을 의미하기도 하며, 책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섯 구의 백골, 죽음이란?
누구의 탓도 아니야. 사람이 죽는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아.
뿌리와 마찬가지야. 위에 나와 있는 부분을 조금이라도 끌어당기고 있으면 질질 딸려나오는거지.
인간의 의식이란 건 깊은 어둠속에서 살고 있는거야
과거, 환상을 떨치고 현실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도대체 답이 안 나오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하루키는 이런 해답을 내놓습니다. 죽음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는거죠. 죽음을 거치지 않고서는 현재로 현실로 돌아갈 수가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리하여 나온 게 여섯 구의 백골입니다. 다섯구의 백골은 누군지 알 수 있으나 한 구의 백골은 누구건지는 독자의 해석 나름입니다. 저는 알아챘죠. 하지만 이 글에서는 쓰지 않겠습니다. 책을 읽었다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거예요^^ 상실과 절망으로 가득찬 삶에 있어 부정적인 부분이 죽음으로써 사람은 누구나 재생이라 할 수 있는 새 출발을 할 수가 있겠죠.
이 책에서 하루키의 문체는 돋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의 일본적 감수성이 뛰어나게 보여지는 소설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울하고 불안한 현대인의 일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 것은 높이 살만 하구요. 그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그의 특성도 '상실의 시대'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은 그가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부터의 정리가 아니라 일정한 거리로 과거 경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지 않은가하는 질문도 해보게 되지요.
상실한 것을 찾기 위해. 아무하고도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한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탈피하기 위해 추는 춤.
하지만 이렇게 춤추는 일은 갖가지 시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시련을 겪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높다란 빌딩 숲 사이에서 기계의 부속품처럼, 시계속 태엽처럼 느껴지는 나의 존재를 찾기 위해 나는 어떤 춤을 추어야 할까요?
어쨌든 나는 삶이 있는 세계, 관념과 허상 속이 아닌 생존이 곧 현실인 현실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지루함으로 가득 찬 평범한 세계일지라도 그것은 나의 세계이고, 내가 살아갈 곳이겠죠.
존재의 의미,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새롭게 느꼈던, 그리고 삶이란 곧 춤이란 사실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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