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긴 하나 솔직히 일본작가의 소설은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
추리소설의 경우, 가끔 읽는 편인데... 요즘엔 스릴러물, 추리소설 이쪽에 좀 빠져살고 있어서 읽게 된 책이라고 할까나...
작가가 많은 상을 받기는 했다. 그리고 유명한 작품도 있기에 기대를 하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출판사에서 홍보하기 위해 내논 글귀도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006년 나오키 상 이후 출간한 첫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용의자 엑스의 헌신 이후로
그의 작품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 있어서는 이 작품은 화제가 될 법도 하다.
<줄거리>
조명기구 회사에서 일하는 47세의 중년 가장 아키오. 퇴근 무렵 그는 아내로부터 긴박한 전화 한 통화를 받고 급히 집으로 간다. 집에 도착하니 컴컴한 집 안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그제서야 아내 야에코로부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정원에 방치된 어린 소녀의 사체. 중학생인 그의 아들 나오미가 소녀의 목을 졸라 죽인 것이다.
경찰에 자수할 것을 원하는 아키오와 아들의 살인죄를 덮어서 무마하려는 아내 야에코의 실랑이가 한참 진행되는 동안, 정작 살인을 저지른 아들 나오미는 제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런 아들의 행동이 못마땅하지만 아키오는 야에코의 심한 반대 때문에 결국 사건을 은폐하기로 결심하고 사체를 공원에 내다 버린다.
이 소설은 ‘어린 소녀의 죽음’이라는 살해사건을 중심으로 세 가족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려는 아키오의 가족,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신참 형사 마쓰미야의 가족, 그리고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왕래조차 하지 않는 네리마 경찰서의 노련한 형사이자 마쓰미야의 사촌형인 가가 교이치로의 가족이다.
자식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은 옳지 않아
"그게 뭐가 잘못됐어? 나는 언제 어떤 경우에라도 엄마인 나만은 그 애 편이 되기로 마음먹고 있어. 나오미가 무슨 짓을 했더라도 내가 지켜줄 거야. 가령 살인을 했다고 해도.부탁이니까 오늘 밤은 가만히 놔둬. 부탁이야. 내가 이렇게 부탁할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무서운 범죄를 꾸민다. 시체를 유기하고 알리바이를 만들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게 살인죄를 뒤집는 무서운 행태까지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족, 우리아이" 라는 빗나간 가족애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 일으키는지 느낄 수 있다. 부모님이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고 싶은건 당연하지만, 이런 식의 사랑은 비뚤어진 애정에 불과하겠지.
진실을 은폐하려는 가족,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형사-그들이 벌이는 두뇌싸움에선 긴장감을 느꼈다.하지만 이 소설의 묘미는 역시나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는 것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치고는 너무나 미약한 반전이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개인에게 잠재된 가족애를 자극한 이 반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붉은 손가락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소설을 다 읽고서도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니 말이다.
사건을 은폐하려는자, 스스로 숨겨진 이야기를 토하라
"이 집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어. 이건 경찰서 취조실에거 억지로 실토하게
할 이야기가 아냐. 반드시 이 집에서 그들 스스로 밝히도록 해야 하는 거야."
다른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이 소설 속의 형사는,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 스스로, 그 진실의 무게에 짓눌려 숨겨진 이야기를 토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추악한 살인사건. 그러나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형사의 방법은 지극히 인간적이였다. 또한, 자식 앞에서 한없이 추해진 부모의 모습은 악인이기보다도 가련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의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이 소설속의 부모는 현 시대의 부모와 자식의 모습을 날카롭게 비추고 있었다.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까지.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은 각각 나름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이 세상에 '평범한' 가족은 찾기가 힘들 것 같다.
모두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기들만의 아픔과 상처를 감싸안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아픔과 상처를 만들어내는 걸지도.
이 씁쓸한 소설속의 모습이 우리네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더 나를 씁쓸하게만 만든다.
섬세한 플롯과 반전을 통해 느끼는 감동. 그리고 독특한 구성
다른 추리소설들이 사건의 범인을 결말에서 알려주는 것과 달리, "용의자 X의 헌신"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입부에서 이미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과감한 구성을 취한다.
읽으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힘 안 들이고 풀어가는 사이, 곳곳에 허를 찌르는 반전이 나온다.
정말 혀를 내두를만한 반전들. (반전들에 대해서는 얘기를 다 못하겠다. 스포일러가 되는 것 같아서-_-;)
하나의 반전으로 끝을 맺는가 싶더니, 이내 또 다른 반전이 불쑥 튀어나온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슬픔으로, 몇 번이나 거듭되는 반전의 반전.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너무나도 슬펐던...
나에게는 슬픈 추리소설로 기억되는 붉은 손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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