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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소소한 대통령의 모습 – 굿모닝 프레지던트

꼬양 2009. 10. 27. 13:42

 

대통령이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된다면? 홀애비, 아니 싱글남 대통령도 사랑을 하고 싶을까요? 대통령에게도 대출안내 전화가 올까요? 다소 엉뚱한, 아니 너무나도 엉뚱한 ‘장진감독 식 발상’을 엿볼 수 있는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 그의 유쾌한 시선을 통해 권위의 상징인 대통령을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 옆집 아저씨, 할아버지, 엄마 같은 존재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대통령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정치인 대통령과 인간으로서의 대통령의 모습을 세명의 대통령을 통해 보여주고 있네요. 과거의 대한민국 대통령과 현재의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모습을 비교하며 보게 되는데… 장진 감독은 청와대 안에 두 개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아주 특별한 대통령은, 아주 평범한 서민과 다름없이 가정을 갖고 있다는 것과, 우리들처럼 사랑을 하기도 하며, 똑같이 외로움을 느끼고, 슬퍼하기도 하며, 분노하기도 하고, 돈에 갈등하는 평범한 인간과 다름없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정치는 바로 그 시점과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영화 속에서 웃음과 함께 풀어나가고 있죠.

 

 

 

<짧은 줄거리>

로또 당첨금 244억 앞에 속앓이 하는 임기 말년의 대통령 김정호
퇴임을 딱 6개월 앞 둔 임기 말년의 대통령 김정호(이순재). 가정과 자신의 인생을 보살필 여유 없이 대한민국 국민대통합의 신념을 위해 싸워온 대쪽 같은 정치 원로. 민주화 투쟁에 젊은 시절을 바친 탓에 그 흔한 골프채 한 번 쥐어 보지 못한 그의 유일한 취미는 TV 일일 드라마 시청과 가끔 찾는 소주 한 잔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참석한 행사에서 응모한 로또가 1등에 당첨, 244억 대박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행사장에서 “당첨되면 모두 기부”라는 국민들과의 약속을 떠올리는데…안면몰수하고 그 돈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을 것인가, 한 번 뱉은 말을 지킬 것인가, 지급기한은 점점 다가오고 하루에도 수백 번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속앓이를 합니다.

강렬한 카리스마, 그러나 첫사랑 앞에선 한없이 소심한 꽃미남 싱글 대통령 차지욱
대한민국 헌정상 유례 없이 잘생긴 외모, 최연소 야당 총재에 이어 최연소 대통령 당선까지 기록을 달고 다니는 차지욱(장동건)은 다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청와대에 입성한 싱글 대통령. 임기 초기와 달리 하강 곡선을 그리는 지지율 탓에 보좌관들은 애가 타지만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그의 외교 스타일은 한반도를 둘러싼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도 물러설 기색이 없습니다. 이렇듯 정치에는 강성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짝사랑하던 정호(이순재)의 딸, 이연(한채영) 앞에서는 말 한 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연애에는 한 없이 약한 남자. 이래 저래 마음이 심란한 지욱은 행사장에서 괴청년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게 되고, 청와대 밖이 대통령 경호 실패로 시끄러운 가운데 청와대 안은 괴청년의 당혹스런 요구로 고민에 휩싸입니다.

서민남편의 대책 없는 내조로 이혼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최초 여자대통령 한경자
김정호(이순재) 정권 시절 법무부 장관, 차지욱(장동건) 정권 시절 야당 당대표를 역임한 한경자(고두심)는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완벽한 청와대 라이프를 꿈꾸죠. 그러나 갖가지 일정들로 빡빡한 청와대 라이프가 갑갑하기만 한 서민 남편 창면(임하룡)은 청와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며 경자를 대통령 재임 중 이혼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빠뜨리는데…

 

 

 

물오른 배우들의 연기력, 숨겨진 코믹 본능을 발견하다.
배우의 맛깔스런 연기도 관객의 영화몰입에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 영화에 몰입하게 된 이유는 아마 배우들의 물오른 연기력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자인적이 없었던 대통령 이순재. 우리에게 야동순재로 알려진 그. 이 영화속에서는 코믹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정말 그 연세에 귀엽다란 표현까지 쓰게 하는 그의 연기. 로또 당첨금에 행복해하고 남 몰래 노후설계를 짜며 고민하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시민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연기합니다. 퇴임 후에는 현직 대통령의 피부 좋아진 걸 질투하고 나는 왜 안해줬냐고 투정부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죠. 시트콤과 드라마를 초월, 영화까지 넘나들고 있는 이순재의 연기는 한층 더 물이 올랐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한편, 주사를 제일 무서워하는 젊고 한국의 존 F 케네디라 불리는 꽃남 대통령 장동건은 보는 것 만으로도 정말 행복합니다. 정말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생김에 기럭지까지…. 그를 보고 있노라면 신은 정말 불공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4년만에 영화계에 복귀한 장동건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숨겨왔던 코미디 본능을 유감없이 드러낸 것 같단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엄마 같은 존재, ‘국민엄마’ 고두심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여성 대통령과 재직 중 이혼이라는 사상초유의 상황에 직면한 모습을 잘 연기하고 있죠.

 

 

참, 주연 못지 않은 조연에 또 깜짝 놀라게 되는데요. 포스터만 보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는 영화 내내 놀라게 됩니다. 주연급 조연인 임하룡은 사람 냄새 물씬나는 남자 영부인역을 맡아 특유의 따뜻한 웃음을 선사하는데. 영부인 창면이 주부의 날 행사에 참가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정말 크게 너나할 것 없이 웃음보가 터집니다. 100분 토론 패러디 토론인 120분 토론에서 벌어지는 난상토론이나 비서관들이 주고받는 대화 장면 역시 큰 웃음을 주죠

또한 박해일부터 공형진, 이문수, 이해영, 주진모, 류승용 등 실력파 연기자들이 대거 등장, 개성넘치는 캐릭터들을 연기하는데요.

참,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채영의 연기. 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색이 있는 연기를 하지 못했던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옷은 분명 색이 있으나, 그녀의 연기에서는 그녀만의 색깔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연기자들은 짤막짤막하게 출연해도 색이 있고, 개성있는 연기를 한 반면 한채영의 연기는 어색하고, 그녀만의 색깔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게 참 아쉬웠어요.
 

 

 

대통령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따뜻한 이야기

장진 감독도 이 영화가 상업영화라고 했지만 영화 속에는 오락영화 이상의 것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감독 역시 풍자정신으로 뭔가를 꼬집거나 했다면 대중영화의 판도 안에서 살짝 건들고 가는 수준이라고 밝힌 바가 있죠. 다만 그것이 ‘살짝’인지 ‘큰 부분’인지에 대해서는 각자 나름의 생각으로 판단 하는 것일텐데요….

쓰러진 대통령의 모습과 쾌유를 바라는 시민들의 모습이 나올 때 쯤에는 머릿속에 어느 대통령이 떠오릅니다. 코끝이 찡해오면서 한 대통령의 모습이 영화 속 이순재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평생 민주화운동에 모든 것을 바치고 대통령이 된 김정호(이순재)라는 인물은 정말 어느 분과 닮았죠...

 

젊고 카리스마 넘치는 차지욱 대통령의 모습을 통해선 또다른 대통령의 서민행보가 그려집니다.

대통령 차지욱이 시장방문을 계획하는 비서관에게 "떡볶이를 먹는다고 정책이 달라지냐"라고 지적하는 장면은 유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볼 수 있죠. 게다가 이 차지욱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는 촛불시위인데요. 촛불 시위를 무서워했던 대통령. 또 다시 누군가가 떠오릅니다.

냉랭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모습은 다시 또 어떤 대통령과는 대조적인데… 일본의 군사적 도발에 북한이 맞서면서 동해상에 일촉즉발의 긴장이 형성됩니다. 차 대통령은 강대국 미국과 마찰을 무릅쓰며 군사 협조를 거절하는데요 그가 일본대사를 청와대에 소환한 자리에서 한 말이 잊혀지질 않는군요.

"한국정부를 우습게 보지 마시오. 굴욕의 역사는 가지고 있지만 굴욕의 정치는 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때까지 우리나라 정치는 굴욕의 정치였죠. 통탄할 일이지만, 앞으로 굴욕의 정치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게 되었네요.

 

어쨌든, 영화 속 대통령 3명은 각각 정치적 견해가 다릅니다. 그리고 빠르게 흘러가는 영화에서처럼 5년마다 정권교체가 자연스럽게 진행되구요. 우리가 늘 텔레비전, 신문속에서 보는 여야대치와 국회파행, 야당 저격수가 등장하기때문에 대통령들간에도 서먹서먹한 면이 없지 않아 있을것이다란 생각을 해보는데. 역시나 그건 현실이죠. 영화속에서는 대통령끼리는 다툼과 격식이 없고 너무나도 친합니다. 이 영화에서 표현되는 대통령들 간의 관계를 현실에 비추어본다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죠. 정말 이런 모습이 영화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인지, 왜 현실은 이러지 못하는 지 말입니다.

 

 
빠른 영화전개.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영화 전개는 아주 빠르게 흘러갑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지나가는 듯 132분 동안 대통령 세 명의 모습을 보여줘야하고, 5년씩 정권교체를 하기에 영화는 15년의 시간을 압축했다고 할 수 있죠. 이렇게 시간을 빨리 뛰어넘는 것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드라마에서는 어림없습니다. 토지같은 경우엔 그럴 수 있지만요. 어쨌든 이 영화는 대통령들의 얘기보다도 청와대 수석 조리장이 만난 대통령 3명의 이야기라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 영화 막바지에서 조리장은 영화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으로 나오거든요. 사실 그는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가장 옆에서 지켜본 한 사람입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과연 어떤 판단이 옳을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죠.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멘토인데. 청와대 수석 조리장은 대통령 3대, 15년을 이어가며 이 멘토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서 머릿속에 물음표를 하나 떠올려봐야 합니다. 주변에 똑똑한 참모들을 두고서 대통령들은 왜 조리실에 가서 조리장에게 답을 구할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조리장은 평범한 국민의 한사람이기 때문이죠. 정치적 판단이나 당리당략에서 따른 결정을 할 필요도 없고, 지극히 소시민적인, 그리고 그저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평범한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조리장은 대통령들에게 매우 상식적인 수준의 답을 해 줄 수 밖에 없는겁니다.

 

한밤중에 조리사들끼리 화투를 치는 조리실에 난데없이 찾아와서 라면을 끓여달라는 대통령, 끊었던 담배임에도 불구하고 조리장에게 한 개피를 달라는 대통령, 그리고 조리장과 함께 멸치를 다듬으면서 인생 선배이자 국민의 한 사람의 조언을 구하는 대통령이 나오는데요. 이들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적인 대통령의 모습들입니다.

대통령이기전에 엄마이고 아빠, 그리고 아내 남편이라는 사실을 그동안 잊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저 대통령으로 국가의 원수로 언제나 정갈한, 만들어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였기에 오히려 사람답지 않게 보였던 것 같단 생각을 해봅니다. 대통령의 규격화된 삶, 짜여진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 대통령들.

 

상상이라하지만 전직 대통령끼리 친분을 유지하고 사소한 것에 흥분하고 좋아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흐뭇함을 느꼈습니다. 상상속에서만의 대통령이 아니길, 지금 우리 대통령에게도 이런 소시민적 모습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