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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깊은 작은 울림은 안겨주다 - 마이 시스터즈 키퍼

꼬양 2009. 9. 28. 12:56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면서 받는(?), 아니 생기는 선물. 바로 아기.

그런데 이 아기가 우연도 아닌 필연도 아닌, 무언가 이용하기 위해, 계획에 의해서 태어난다면 어떨까요?


2000년경에 기사 하나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참, 몹쓸 기억력이죠? 9년전 기사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으니...)

어떤 기사냐면요... 미국의 콜로라도주에 사는 한 부부는 자신들의 딸이 선천성 골수 결핍증인 팬코니 빈혈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치료를 위해서는 유전형질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골수를 이식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8~9세가 되면 죽는다고 하니까요. 이 부부는 자신들의 골수나 줄기세포를 이식하려고 했지만 유전형질이 맞지 않았죠. 하지만 딸은 꼭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아이를 낳아보려고도 하지만 그렇게 낳으려는 아이도 같은 질병을 가진 아기를 출산할 확률이 25%나 됐다고 합니다. 결국 이들은 이 병에 걸리지 않고 딸의 세포조직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유전형질을 지닌 배아를 선택, 출산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기사에서 말하는 맞춤아기란 사실 정식 학술용어가 아닙니다. 이는 대중과학 및 생명윤리 관련 문건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로 유전자 기술을 사용, 원하는 대로 선택 및 재조합된 유전형질을 지닌 아기를 말할 뿐이죠. 또한 이 맞춤아기의 목적은 희귀 유전질환이나 혈액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즉 자녀의 세포조직과 완전히 일치하지만 질병 유전자가 없는 배아를 골라 임신, 줄기세포를 제공할 아기를 낳는 것이기에요.


이 논란이 많은 맞춤아기가 등장하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조디 피콜트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휴머드라마입니다. ’노트북’(2004)의 닉 카사베츠 감독이 연출을 맡았죠.

 

 

먼저 늘 그랬듯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간단줄거리>

 

사라 부부는 백혈병을 앓는 딸 케이트(소피아 바실리바)를 치료하기 위해 맞춤아기 ’안나’(아비게일 브레슬린)를 낳습니다.

이로 인해 세포조직이 언니와 똑같아진 안나는 어렸을 적부터 언니에게 백혈구 등을 제공해왔으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언니를 위해 조만간 신장 이식도 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지요. 신장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던 그때, 안나가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수년간 각종 이식을 강요한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정말 간단한 줄거리죠? 너무 줄였나-_-;

 

 

 

 

△ 언니 케이트(소피아 바실리바)와 동생 안나(아비게일 브레슬린)

 

삭발투혼, 눈썹까지 밀다!-배우들의 열연

영화에서 중요한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배우들의 연기죠. 이 영화 역시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 발랄하고 당찬 이미지의 카메론 디아즈가 삭발투혼까지 불사르며 엄마인 사라 역을 소화했죠.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 가꾸지 않은 머리(부스스하고 가끔 머리끈 하나로 질끈 동여맨)와 의상 등 외모보다는 아픈 딸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건 진한 모성애를 보여줍니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고집스럽고 헌신적인 엄마 사라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카메론 디아즈는 실제로 아픈 자녀들의 엄마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진심을 다해 자신이 맡은 인물을 만들어 나갔다고 하지요. 그리고 백혈병을 연기한 소피아 바실리바의 투병연기도 정말 사실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 ‘예약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지요. 그녀는 암으로 죽어가는 연기를 위해 삭발과 눈썹까지 미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요.

 


△ 알렉 볼드윈과 아비게일 브레스린

 

또 하나. 안나를 도와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 캠벨 역의 알렉 볼드윈도 능글 맞은 연기로 즐거움을 줍니다. 다만 그의 분량은 너무 짧아요~ 또한 존 쿠삭의 누나이기도 한 조안 쿠삭의 인간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법조인 연기, 듬직하고 자상한 아버지 연기를 보여준 제이슨 패트릭 등 중견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무게감을 한층 실어주고 있지요.

 

△ 제일 왼쪽 오빠 제시를 연기한 에반 앨링슨, 그 옆 땡땡이 레깅스를 입은 분은 이모입니다~

참, 당돌한 꼬마 아가씨를 빠뜨릴 뻔 했군요! 귀여움과 성숙한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아비게일 브레슬린 역시 빼놓을 수 없어요.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이니 그녀의 연기는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나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아픈 동생으로 인해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소외받았다고 생각하는 큰 아들 제시를 연기한 에반 앨링슨 역시 절제된 감정 연기로써 캐릭터가 지닌 복잡한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주인공이 따로 없는 영화-5명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스토리

이 영화가 주목받았던 이윤 언니의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맞춤아기로 태어난 동생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부모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인다는 내용의 독특함 때문만이 아닙니다. 물론 열세 살의 아이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는 것에 대하여 미국의 언론과 일상에서 무수한 논쟁과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지요. 이 영화의 독특성은 소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개방식에 있습니다.

원작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은 모두 5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평범한 부부에게 첫째 아들과 둘째로 딸이 있지요. 그런데 딸에게 혈액암인 백혈병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딸을 치료하기 위해 부부는 세 번째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셋째가 바로 맞춤아이 안나였죠.

이렇게 이 영화는 가족 각각의 시각에서 전개됩니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는 셈이죠. 안나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물론 심지어 판사의 시각까지 모두 그려내고 있기에 어쩌면 집중을 하고 영화를 봐야합니다. 반대로 이해가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름의 입장이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서서 다른 사물들과 관계를 형성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입장이란거죠. 어디에 서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범위가 다르고 그것에 의해 의견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 영화는 각각 다른 입장에서 심층적인 심리를 세밀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안나 : 십 년 후에도 난 언니의 동생이고 싶어...

케이트: 미안해, 아프게 해서.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아픈 언니를 위해 모든 것을 준 동생 안나는 내 몸의 권리를 찾겠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고소합니다. 시종일관 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내는 이 아이가 왜 대체 부모님을 고소한 이유가 뭘까요? 안나의 절박한 선택 뒤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지 관객은 궁금증을 갖게 되지요. 언니를 이처럼 사랑하는데 사랑한다면 언니에게 모든 걸 줘도 될 것 같은데, 안나는 뭔가 사연이 있는 듯 보이죠.

그리고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언니 케이트는 엄마에게는 인생 전부를, 아빠에게는 첫사랑을, 오빠에게는 엄마를, 동생에게는 몸을 빼앗은 것만 같아서 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는 가족들에 대한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뿐이죠.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 정도면 참 괜찮은 인생이었어”라며 초연한 미소를 짓지요.

삶에서 죽음은 그 삶의 일부분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물음은 어떻게 죽느냐와 상통하는 말이기 때문이겠죠.

 

 

 

영화 속 균형감은 약간 불안불안.

영화는 겉으로 화목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가는 한 가족의 균열을 담을 것처럼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들 간의 갈등과 모순, 복잡한 감정을 살짝살짝 건드립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각각의 회상 장면을 통해 이 다섯명의 가족 구성원들이 느꼈던 결핍과 아픔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케이트의 사랑이야기를 길게 집어넣어 영화의 균형감을 무너뜨리지요. 이 스토리 때문에 극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안나와 난독증에 걸린 오빠 제시(에반 엘링슨)의 사연, 심지어 정상적이지 않은 세 남매를 키우는 사라 부부의 어려움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게 되죠. 그냥 말로만 쓰윽 지나가게 되는... “아메리칸 뷰티”처럼 냉정한 시선으로 미국 중산층 가족의 모순을 헤집거나 “맞춤아기”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과 법적 공방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니의 치료를 위해 태어난 맞춤형 아기라는 존재와 자신의 인간적인 삶을 위해 부모를 고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한 질문들이죠. 영화를 보는 내내 깊은 고민과 혼란스러운 생각들에 잠겼습니다. 맞춤형 아기라는 소재, 부모를 상대로 재판을 하게 된 13살짜리 소녀라는 설정에 대한 고민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본질, 그리고 그것들을 이야기하는 존재가 다름 아닌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요.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 뻔해서 지루해서 감동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할 듯 합니다. 무언가 깊은 의미를 준, 작은 마음의 울림까지 안겨 준 마이 시스터즈 키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