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스크린 세상-영화보기

더이상 어둠과 무지가 아닌 블랙, 진한 감동의 영화

꼬양 2009. 9. 7. 13:00

 블랙. 개봉 전부터 기대를 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헬렌켈러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이미 어느 정도는 보였던 영화이기에....

 

그리고 타임지 선정 최고의 영화 BEST 10에 선정되며 전세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휴먼 감동 드라마라고... ‘탄탄한 시나리오, 수려한 영상미, 흡인력 있는 음악, 감동적인 연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며 BBC가 극찬했던 작품이니까요. 

인도 최대의 영화제 제51회 ‘Filmfare Awards’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등 11개 부문 주요 상들을 휩쓰는 기록을 경신, 뿐만 아니라, 제7회 International Indian Film Academy에서 5개 부문, 제54회 National Film Awards에서 최우수 작품상, 제12회 Screen Weekly Awards, 제9회 Zee Cine Awards에서 각각 1개 부문씩 수상했는데요...

뭔 상을 이리 많이 받았대-_-; 상에 대해 언급만 해도 벌써 몇 줄이군요.

 

아무튼 이리 많은 상을 받았는데, 과연 어떻게 연출했길래,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길래, 말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런 암흑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너무 궁금했던지라 약간 삐딱한 시선(?)과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보자" 이런식으로 색안경을 쓰고 봤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 점점 중반으로 치달을수록... 이 영화에 대한 제 색안경은 점점 벗겨지기 시작했죠.

 

 

△사하이 선생님과 미셀의 플라잉 키스(호오~) 장면

 

이 영화에 대한 줄거리는 다들 아시겠죠.

2살 때부터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8살 소녀 미셸 맥널리가 있었죠. 그녀는 짐승처럼 마음대로 생활하며 가족 또한 그녀를 짐승처럼 대하죠. 그러던 어느날 미셸에게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옵니다. 자신을 ‘교사’가 아니라 ‘마법사'라 부르는 데브라지 사하이(아미타브 밧찬)입니다. 사하이의 집요한 노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미셸은 어둠속에서 언어를 배우고 세상을 배우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숙녀로 거듭난 미셸은 대학 진학의 꿈을 꾸고, 사하이는 미셸의 곁에 머물며 그녀의 눈과 귀와 입이 된다. 그러던 중 사하이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스스로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되죠. 그리고 그런 어둠속의 사하이를 미셀은 빛으로 이끌어냅니다.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죠? 어릴 적 우리가 읽었던 헬렌 켈러가 생각날 수밖에요. 맞아요~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미셸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고 주위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는 짐승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나 사하이가 사물을 미셸의 손에 쥐어주며 단어를 익히게 한 것, 그리고 미셸이 물(water)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면서 언어체계를 습득하기 시작한 것 등 영화 속 이야기의 상당수는 19세기 미국의 감동 실화를 배경만 인도로 옮겨 그대로 재현한 것이죠.

 

근데.. 이런 헬렌켈러 이야기도 모르는 사람이 있더군요. 제가 아는 사람중에-_-# 영화이야기 하다가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그 이야기를 모를 수가 있지!!!! 사회에 찌든 삶을 살아서 그렇다고 치기로 했고요. 암튼 다시 블랙 이야기로 넘어와서.

 

영화의 처음 시작은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또한 역순행적 구성방식을 띠고 있습니다. 현재에서 과거의 얘기를 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죠.

나레이션, 참 생소합니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자의 나레이션이라?

바로 미셀의 마음의 소리로 영화는 시작되는 거죠.

영화제목에서처럼 블랙,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을 따라가며 시작합니다. 소리는 침묵, 빛은 어둠이 되는 세상 블랙에서요.

그리고 주목해야할 것이 이 빛이 영화 곳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유의하면서 본다면 영화는 더 재밌어 집니다.

 

 

 

영화 속 감동깊은 장면들 어떤 게 있을까요?

 

미셀이 사하이 선생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장면. 둘의 악수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플라잉 키스, 우리가 다친 곳에 "호오~" 불어주는... 그런 장면이죠~ 선인장 가시에 찔린 미셸의 손을 치료해주는 사하이, 그리고 그런 사하이의 손을 잡는 미셸. 그들의 첫 악수이자 미셸이 사하이를 선생님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 엄청나더군요. 아미타브 밧찬(사하이)의 모습은 물론이고 성숙한 미셸 역의 라니 무커르지, 그리고 어린 미셸을 맡은 아예사 카푸르까지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정말 실제인 듯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미셸에게 눈이 되고 귀가되고 입이 되었던 아미타브 밧찬의 연기, 나중에 가서는 그에게 다시 눈, 귀, 입이 되는 역할을 하는 라니 무커르지 이 둘의 연기는 정말 극찬을 받을 만 하단 생각을 합니다.

 

 

물의 개념을 깨닫는 이 장면.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미셸의 물을 말했던... "워-"라고 말했던 이 장면. 정말 가슴이 뭉클했었죠. 케이크란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가져온 케이크를 먹어버리고, 새라는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새를 미셸의 손에 쥐어줬드만 날려버리는 등 미셸은 말 그대로 사고뭉치였죠. 온갖 고생끝에 미셸이 말한 단어 워터는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엄마, "마-"라고 말했던 그 장면도 가슴이 쨘해오더군요. 엄마를 엄마라고 말할 수 있었고, 엄마 역시 딸에게 있어 엄마란 존재를 가르쳐 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근데 이런 명장면을 "워-" 이렇게 웃으면서 따라하는 개념 상실의 녀석들이 있었죠. 개념은 어디 안드로메다보다 더 먼 은하계로 날려버린 듯한 여학생들. 철이 없는건지 사람이 아닌건지. 심지어는 드러누워서 영화를 보는... 도통 이해가 안되는 애들과 같이 영화를 보았다는 꼬양입니다.. 왠간해선 버럭안하는데... 정말 성질 머리끝까지 났었죠.)

 

아무튼 짐승같이 몸에 종을 매달고 지내온 미셸. 밥을 먹을 때도 손으로 집어먹고, 전혀 예절이란 걸 모르던 미셸이 스푼을 쥐고 밥을 먹는 장면도 베스트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육의 힘이란... 대단한거죠. 아니, 사하이 선생의 집념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 블랙, 점자 포스터

 

이제는 영화속에 나타난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장애에서 비롯된 어둠 속에 있는 미셸과 알츠하이머병에서 유래된 어둠에 빠진 사하이. 어둠에 빠진 이 둘은 서로에게 환한 빛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두 사람의 이러한 노력은 아가페적 사랑에 가깝죠.

하지만 아무리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 할지라도... 스승과 제자 이전에 남자와 여자입니다. 특히 미셸이 점점 숙녀가 되어가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사랑이 들어갈 여지는 점점 커지게 되죠.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회피하지는 않습니다.

"오아시스"처럼 솔직하지는 않지만, 미셸이 사하이에게 ‘키스’를 원하는 장면을 통해 이 영화 또한 장애인의 사랑에 대한 욕망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사하이는 떠나게 되죠. 뒤늦게 미셸이 깨닫게 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며... 이미 실수한 뒤고, 그 후로 사하이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 사하이가 떠나고 추운 겨울날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는 미셸

 

사하이가 이렇게 말했죠.

"인생은 아이스크림이죠. 녹기 전에 먹어야 하니까요"

인생은 아이스크림. 그렇죠. 차갑고, 달콤하고, 그리고 녹기 전에 먹어야 하는. 때가 있는 거라 생각해도 되겠죠?

 

이렇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영화에서는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감독은 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않고, 듣지를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교육을 받지 않은 것과 같은 문맹 상태와 같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요.

이른바 이 영화 계몽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었습니다.

미셸에게 언어를 가르침에 있어서 사하이는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뺨을 때리기도 하고, 물을 붓기도 하고... 그런데요, 이렇게 강제적으로 강압적으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절박감이 인도 전체 혹은 감독에게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어를 모른다면 야만의 사회를 헤맬 수밖에 없다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계몽을 통해 개발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게 영화가 인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하이가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과 함께 촛불을 키며 주인공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밤에 향한 곳은 성당이었죠. 인도의 종교는 다양합니다. 힌두교가 80%, 이슬람교가 13%, 그리스도교가 2% 정도를 차지하는데요. 엔딩장면에서 성당으로 가는 많은 인도인의 모습은 좀 아이러니 하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촛불, 빛은 아마 교육, 계몽으로 향한 진출 그런 걸 의미하지 않나 싶구요.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모습들도 그렇습니다. 제가 보편적으로 생각해왔던, 여행잡지를 통해 봐왔던 인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영화속에서는 펼쳐지지요. 십자가를 비롯해, 대학, 재즈 음악이 흐르는 파티장, 그리고 결혼식 모습까지. 전통의 인도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할까요? 서구를 상징한다고 하는 게 옳겠죠. 어쩌면 감독은 이런 공간으로 상징의 의미를 나타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부터 헬런 켈러 재단과의 연계를 드러낸 자막에서 알 수 있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도전-사하이 선생과 제자 미셸을 통한-, 그리고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역경을 뛰어넘는 성공 이야기는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이에 더하며 타인을 위한 노력 역시 이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죠. 사하이와 미셸 이 둘의 쓰러져도 넘어져도 주저 앉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12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어 어둠속에서 빛을 찾은 제자와 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해 자신의 과거를 모두 잊게 된 말 그대로 빛에서 어둠으로 변한 스승을 위해 그를 가르치려는 제자의 마음은 단순히 주고 받는 인간관계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도전이자 인간적 내면의 아름다움을 나타난다고 봅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미셸이 낭독(?) 아니 발표했던, 졸업 소감문을 떠올려 봅니다. 

"선생님께선 검은색의 새로운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검은색은 어둠과 갑갑함 뿐이 아닙니다

그건 성취의 색입니다

지식의 색입니다

졸업 가운의 색입니다 "

 

 

그렇습니다. 영화를 통해 저도 검은색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았죠.

블랙. 참 중요한 요소구요. 이 영화에서는요.

영화에서 시작이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 실루엣으로 시작되었죠?

엔딩에서는 전체 화이트 속에 작은 점으로 남는 블랙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검은색의 재발견!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며 영화관을 나왔습니다.

또한 배움의 재발견까지.

 

진한 감동의 영화. B.L.A.C.K, 블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