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송산리고분군을 구경하고나서
연못이 있는 예쁜 길을 약 400m 가량 걷다보면
국립공주박물관에 다다릅니다.
공주여행중에
송산리고분군을 보고나서
국립공주박물관도 들려보길 권합니다.
지금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기획특별전 '충청감영' 전시를 볼 수 있거든요.
▲송산리고분군에서 국립공주박물관으로 가는 길
▲국립공주박물관
2016년, 올해는 국립공주박물관이 개관한지 7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민간단체가 운영하던 공주박물관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 된 것은 광복 직후인 1946년 4월 1일입니다.
특히 국립공주박물관은 옛 충청감영의 관찰사가 집무를 보았던
선화당 건물에서 출발했습니다.
충청감영과 국립공주박물관은
이런 인연을 시작으로 7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충청감영 전시
충청도 전 지역을 관할했던 충청감영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전시, 충청감영.
전시는 '충청감영과 공주', '충청감영과 사람들', '충청감영과 사건들'로 구분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충청감영에서 사용했던
금영측우기(보물 제561호)가
100여년만에 귀향해 일반에 공개되었고,
옛 선화당 건물에 있었던 목가구를 최초로 전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충청도 지도, 조선, 종이에 채색, 국립중앙박물관
1리를 기준으로 모눈을 그린 군현지도첩입니다.
지도에는 성읍, 산과 하천, 사찰, 창고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도의 뒷면에는 민가, 창고, 군사시설 등이 적혀있습니다.
조선 태종대에 이르러 지방행정제도가 정비되고
8도제와 군현제가 확립되었죠.
경기, 충청, 경상, 전라, 강원, 함경, 황해, 평안의 8도에는 감영을 설치했고,
감영의 수장으로 관찰사(현재 도지사에 해당)를 파견했습니다.
충청도는 태조 4년(1395년) 충주목과 청주목의 머리글자를 따는데서 시작했습니다.
충청도는 지금의 충청남북도를 포괄하는 개념이었고,
충청감영은 충청도 내 총 54개의 고을을 관할했습니다.
충청감영은 처음 청주에서,
임진왜란때는 공주로,
공주 안에서 몇 차례 이전한 끝에
1707년에 봉황산 아래 터(현 공주사대부고)를 잡았으며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기전까지
약 330년간 충청도 수부의 역할을 했습니다.
대전에 1년간 살았지만서도
충남도청이 왜 대전에 있는지조차 생각도 안하고 살았었네요.
여행을 하면서 새로이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전시실 내부
▲금영측우기, 1837년, 청동, 기상청
비가 내린 양을 측정하는 기구로,
세종 때 처음 만들었던 측우기.
이것은 관상감과 각 도의 감영에 설치했는데요.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측우기는
헌종 3년(1837년)에 만들어진 금영 측우가기 유일합니다.
금영은 충청감영의 별칭으로, 금영측우기란 충청감영에서 사용했던 측우기라는 말이죠.
금영 측우기는 1910년 감영 암뜰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일본인 와다유지가 1915년 일본으로 반출했고,
1971년 3월에 반환되어 현재까지 기상청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유물이다보니 박물관에 있을 것 같은데,
기상청에서 보관한다니 이것도 놀라웠습니다~
▲윗닫이, 조선, 목제, 공주시청
선화당 건물에 보관되어 있던 윗닫이입니다.
몸체에 목공예품에 장식적으로나 기능적인 필요에 의해 붙이는 금속인 장석을 붙여
미적, 기능적 요소를 가미했습니다.
▲관안, 조선, 종이에 먹, 국립민속박물관
1961년부터 1864년에 걸쳐 작성된 충청도 수령 및 충청감영 관원 명단입니다.
충청 좌우도를 구분해 기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충청북도, 충청남도라고 부르지만
이때에는 충청좌도, 충청우도라고 불렀던 게 특이했습니다.
▲ 벽돌과 기와, 공산성 성안마을 2,3차 출토, 조선
앞에서도 말했지만 충청감영은 공주 내에서 몇 차례 이전했습니다.
제민천변과 공산성을 여러 차례 오갔고, 마지막으로 이전한 곳이 봉황산 공주 사대부고 자리입니다.
충청감영 관련 유물은 감영이 있었던 곳 주변에서 찾아야 합니다.
제민천변에 자리잡은 공주감영은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없고,
공주사대부고 자리 주변은 초석과 용도미상의 석재만이 남아있을 뿐
현재까지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산성 내 충청감영 관련 유적은 공산성 성안마을 2~3차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던 것을
전시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신관도임연회도, 조선, 종이에 채색, 고려대학교박물관
새로 부임한 관찰사를 위해 열린 연회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차일을 친 건물 내부에 관찰사가 표피를 두른 의자에 앉아있고,
마당에서는 음악에 맞춰 무사의 모습을 한 무용수가
검무 공연을 하고 있군요.
주변에는 연희에 참석한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잠곡유고, 조선, 종이에 먹, 실학박물관
1638년 충청관찰사를 역임했던 김육의 상소문을 엮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대동법 시행 및 동전 유통에 관한 필요성을 제기하는 상소문 등
만년 관료시절에 올린 상소들이 연대기순으로 실려있었습니다.
▲송하한유도, 중국, 비단에 채색, 실학박물관
이 그림은 명나라 호병이 김육을 그린 초상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잠곡유고의 저자, 김육입니다.
김육은 충청관찰사로 부임하자 토지대장과 세금징수 상황을 조사했습니다.
민생안정을 위해 조정에 대동법 시행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김육은 관직에 있는 동안 줄곧 대동법 시행을 아주 적극적으로 주장했는데요.
김육이 영의정에 오르고 마침내 충청지역에 대동법이 시행되자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호서에서 대동법을 실시하자 마을 백성들은 밭에서 춤추고
삽살개도 아전을 향해 짖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공주쌍수산성주필사적비 탑본, 조선 1708년, 종이에 먹, 국립공주대학교 박물관
쌍수정사적비에는 이괄의 난이 일어난 과정과
인조가 공주로 파천한 행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숙종 34년(1708) 충청관찰사로 임명된 이선부가
인조파천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공주에 터를 잡은 충청감영은 지정학적 위치로 조선의 많은 역사적 사건과 만나게 됩니다.
이괄의 난 때에는 인조가 공주로 파천하여 많은 일화와 전설들을 남겼고,
19세기 말에는 보수와 진보세력 간의 치열한 다툼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감영은 왕실 정책을 펼치는 대리자였고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황새바위에서 처형당했고,
1894년 우금치를 넘어 충청감영으로 향하던 동학농민들을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충청감영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당시 충청도의 역사뿐만 아니라
조선의 시대적 상황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척사윤음, 조선 1893년, 종이에 먹,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기해옥사가 일어난 뒤 천주교를 사학으로 규정하고
박해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반포했습니다.
기해옥사는 충청관찰사를 역임했던 조병현이 1839년
앙베르주교, 정하상 등 70여 명의 천주교인을 처형했던 사건입니다.
▲십자가, 조선후기, 금동, 황새바위성지기념관
황새바위성지를 조성하기 위해 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발견되었다는 십자가가 눈에 띄었습니다.
십자가 하단에 부착된 해골의 의미는 라틴어로
'Memento mori'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화승총과 화약통, 조선, 나무금속(화승총), 가죽(화약통), 전주역사박물관
동학은 최제우에 의해 창시된 조선의 자생적 신앙이죠.
조정은 동학의 빠른 교세 확장에 위협을 느껴
사교로 규정하고 동학교도를 탄압합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은 일본의 내정간섭에 반발해 한양으로 북상하기 시작했고,
첫번째 전략적 거점으로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로 향했으며
조성은 관군을 공주로 급파합니다.
두 세력은 공주의 우금치에서 최대의 격전을 벌입니다.
동학농민군이 썼던 화약총과 화약통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농민군의 무기는 대부분 농기구와 죽창이었지만
관군과의 전투에서 화승총을 획득합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내려온 관군과 일본군의 최신식 무기 앞에
많은 농민군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우금치전투에서 신식무기에 무너졌고,
전봉준 등의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을 압송하면서 동학농민운동은 끝이 납니다.
▲도선생안, 일제강점기, 종이에 잉크, 충청남도역사박물관
1922년 편찬된 것으로 충청관찰사 314명의 명단을 수록한 책입니다.
1414년에 부임한 관찰사부터
1908년에 제수된 관찰사에 이르기까지의
305명의 관찰사와 1910년 이후 임명된 도장관, 도지사를 기록했습니다.
▲조선시대의 충청관찰사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이전해야한다는 논의가 일었고,
1932년 충남도청은 대전으로 이전했습니다.
남은 충청감영지에는 학교가 세워졌고,
공주는 충남도청 이전에 대한 보상물로 금강철교를 건설했습니다.
충청감영 선화당 건물은 봉화산을 떠나 중동으로 이전해
국립공주박물관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충청감영은 조선시대 역사의 굴곡을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공주와 충청도의 역사를 알고 조선시대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죠.
앞으로 충청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 지 궁금해졌습니다.
공주 여행을 간다면
국립공주박물관도 꼭 들려보시길 바랍니다~
*충청감영*
-국립공주박물관 기획전시실
-기간 : 2016.4.2~2016.5.29
-관람시간 : 평일 - 오전9시~오후6시/토,일,공휴일-오전9시~오후7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야간개장(4월~10월 중 토요일) -오전 9시~오후 9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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