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충청도

구석기시대로의 여행. 구석기축제 전에 미리 가본 공주 석장리박물관. 공주여행

꼬양 2016. 4. 26. 23:30



[공주 여행]

2016년 5월 5일부터 8일 일요일까지

석장리박물관 일원에서는

2016 석장리세계구석기축제가 열린다.


세계구석기문화를 석장리에서 만나고,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축제 전에 미리 석장리박물관을 찾아서

구석기시대로 여행을 떠나보았다.






입장료 1,300원으로 즐기는 구석기시대로의 여행~

박물관 앞에는 이렇게 세계구석기축제를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은 필수~



선사공원은 막집을 중심으로

구석기시대 선사인들의 생활을 복원해놓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과거 구석기인들은 어떻게 생활했는지 알 수가 있다.



석장리 박물관은 전시관과 파른 손보기 기념관, 선사공원,

석장리구석기유적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리고 생명이 지구에서 자라나

최초의 인류에서 지금까지 인류는 진화했고, 

현재의 우리가 되었다.



인류의 진화모습을 살펴보는 시간.


채집과 사냥을 하고 살았던 이들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인류사의 99.8%가 구석기시대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있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석장리를 배경으로

구석기인의 일과를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뗀석기 연구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손보기 박사는

석기를 바탕으로 옛 사람의 행위와 삶을 밝히고

다시 나타내보자는 것이 석기연구의 주된 목적이라 말했다.


옛사람이 어떻게 석기를 만들고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그들이 지녔던 사회의 삶을 제대로 밝혀야할 것이라며

석장리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했다.


그 결과로 인해 교과서가 달라졌고

우리는 지금의 구석기시대를 배우게 된 것이다.



석장리에서 처음 석기를 발견했던

알버트 모어와 손보기 교수가 나눈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석장리 유적은 1964년부터 2011년까지 총 13차례에 걸쳐 조사되었다고 한다.

조사를 통해 전기~후기에 이르는 많은 양의 석기, 후기 집자리, 문화층 등이 연구되었다.


석장리유적을 통해 공주지역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오랜 터전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전시관에서 석장리 발굴에 사용되었던 도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땅을 고르게 펴기 위해 사용되었던 발굴도구 트롤,

못꼬챙이, 조각도, 대나무 주걱, 붓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1964년부터 시작된 발굴의 모든 장면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되었고 고유번호가 매겨져 대장에 기록했다고 한다.


발굴의 하루하루를 기록한 일지들은 40년이 지난 현재에도

당시 발굴현장을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하다.


모든 기록은 연구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구석기를 알리는데 활용되었다.


발굴하면서 얼마나 설렜을까.

돌 하나에 인류의 시작과 삶이 담겼으니 말이다.



1974년 교과서에 한국의 구석기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우리나라 교과서에 구석기가 등장한 이유가 석장리때문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의 구석기는 없다고 부정되던 시절

편견을 딛고 지속한 10여 년간의 연구결과로

1974년부터 구석기, 석장리가 최초로 실리게 되었다.


난 이곳을 오기전까지는

그렇게 구석기에 흥미를 갖고 있진 않았다.


내가 주로 보던 특별전시도 신석기시대였고,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더라도 선사관은 대부분 건너뛰었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이 작은 박물관은 나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다같은 구석기시대 유적지라 할지라도

이곳이 갖고 있는 의미는 아주 컸다.



구석기의 한글화도 손보기 교수가 이루어낸 것이라 한다.

중국, 일본에서 쓰는 용어는 발음도 어렵고 얼른 개념이 떠오르지 않았고

영어나 불어를 그대로 쓸 수도 없었다.

석기 제작 실험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가며

우리가 쉽고, 빨리 실감할 수 있는 우리말을 찾아 영어, 약간의 불어와 대비했다고 한다.






작년 6월부터 이곳 석장리박물관에는

'또따벨 사람, 60만년의 여정'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인 아라고 유적은

"또따벨 사람'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최고 인류화석을 비롯해 65만여점의 유적이 발견된 아라고 유적은

석장리유적과 같은 해인 1964년 발굴을 시작해

현재까지 50년동안 매년 발굴을 하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전시였고,

유럽 구석기 연구와 발굴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적임을 알 수 있었다.




아라고 동굴 유적은 프랑스 남부인 피레네 오리앙탈 주의 페르피냥에서 북서쪽으로

33km 떨어진 또따벨 마을에 있다.


피레네 산맥에 있는 카르스트 지형의 동굴유적이고,

70만년전에서 10만년전까지

약 60만년동안 장기간 살림터로, 때로는 임시 야영지로 오랜기간 지속적으로

인류에 의해 사용되었다.


해발 80m 높이의 가파른 곳에 위치한 그곳은

생태 환경이 다양하고 주변을 둘러보기에 좋은 입지를 갖고 있어서

오랜세월동안 살림터가 되었다.


이 유적은 19세기에 알려졌지만 본격적인 발굴은 1964년부터라고 한다.


이후 해마다 발굴을 했고,

현재까지 확인된 유물은 65만여점에 이르는데

유적이 위치한 마을 이름을 따서 '또따벨 사람'으로 불리는

인류화석은 45만년전 유럽형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화석이라 한다.




아슐리안 문화층에 발견된 뒤랑달 석기가 눈에 들어왔다.


석기에 전설적인 검의 이름 '뒤랑달'이 붙었다.


뒤랑달은 프랑크 왕국 샤를마뉴 대제의 12기사 가운데 한 명인

영웅 롤랑의 전설적인 검 이름이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 석기는 변성암 암질로 만든 길이 36cm의 창끝 모양 양면 석기다.


유럽에서 발견된 양면석기 중 가장 큰 것으로,

기술적 연모이면서도 예술작품으로서의 문화적 의미도 가졌기에

뒤랑달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싶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슬기롭게 활용해

서로 공생하고 있는 또따벨 마을과 아라고 유적.


사실 전시를 관람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또따벨 마을이었다.


석장리유적이 있는 공주 역시

이렇게 잘 되어야 할텐데...

이건 좀 아쉬운 부분이다.


또따벨 마을은 1964년 발굴이 시작된 후 박물관과 연구센터가 들어서고

젊은 고고학자들이 늘어나면서 마을은 활기를 되찾았고,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구석기 유물을 마케팅에 활용한 포도주와

축제 등도 관광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또따벨에 포도주가 있다면,

공주엔... 뭐가 있을까?

공주 알밤?


알밤막걸리가 맛있긴 하지만,

축제가 다양하게 열리기도 하지만

뭔가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

그래도 앞으로의 공주 석장리 유적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야외로 나와보면 탁트인 경관이 눈을 사로잡는다.




선사유적지를 둘러보며

선사인들의 삶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고~



무엇보다도 강변에 펼쳐진 노란 유채밭이 압권이었다.

예전에 찾아갔을땐 너무 휑한 느낌이었는데


노란 유채꽃이 반겨줘서

무엇보다도 사진찍을 맛이 났다.


커플이나 가족이 박물관에 놀러 가면

이 유채밭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구석기시대로 떠나본 여행.

박물관 관람료도 저렴했고,

주변에 유채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봄도 만끽할 수 있었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축제기간에 이곳을 찾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한다.


이곳에 잠시 머물렀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