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나 이거 읽었어-독서

나라는 빼앗겼지만 근대화의 씨앗은 움트고 있었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

꼬양 2012. 6. 7. 06:30

[서평]
우리나라 근대사를 접하며 빠지기 쉬운 함정. 우리의 근대화가 일본으로부터 이식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근대화의 징후와 현상들이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이뤄진 게 아니라

근대의 씨앗이 우리 안에 자라나고 있음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례들을 보여주는 책이 있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일제의 조선강점기 역사 속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일제강점기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의 근대가 결코 일본 제국주의에 빚져 있지 않음을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무심히 잊혀가는 우리 역사에 대한 건강한 시선을 확산하기 위해 전문가 특강으로 마련한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집적한 것이 "이토록 아찔한 경성"이란 책이었다.

 

근대 문명의 전파, 학산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분야를 선택해서 그 속에 담긴

우리 근대 문명의 속살을 강의 형태로 엮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는 정치적으로는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대였지만,

그 속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신문명과 구질서가 충돌하는 개화된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욕망했다.

우리 근대의 확산과 전파 과정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광고, 대중음악, 사법제도, 문화재, 미디어, 철도’라는

여섯 가지 주제들을 통해 근대 조선인들의 삶과 욕망, 신세계 조선의 변화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광고, 대중음악, 사법제도, 문화재, 미디어, 철도.
키워드로 읽는 우리 근대의 아찔한 뒷모습!

책은 여섯가지 파트로 나뉘어있다. 각 파트마다 전문가의 강의로 이뤄진다. 이해하기 쉬운 어투로 책은 술술 풀어나간다.

‘근대 광고’ 파트에서는 신문과 잡지 광고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의식주를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의 광고를 보면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일제강점기의 사람들도 맥주와 청주를 즐겼으며, 자동차 드라이브를 선망하고 "젠틀맨, 신사"가 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뽕짝, 엔카, 트로트... 음악분야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트로트". 이 장르가 뿌리내리고 우리가 한 때 힙합이 세련된 도시젊은이들이 즐겨 듣는 노래였듯, 그 당시 세련된 도시청년들이 듣는 노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그때와 달리 이제는 트로트가 엄마, 아빠가 듣는, 나이든 음악이 되기까지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트로트 가사 내용에 묻어 있는 비극적이고 신파적인 느낌의 분석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유추한 것도 흥미로웠다.

 

신문과 전화, 라디오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며 이 미디어들이 우리 삶에 어떤 식으로 뿌리 내렸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뉴스거리가 없는날엔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습니다.”라고 방송한 경성방송 이야기는 신문명이 전해지던 당시의 들뜨고 혼란스러운 시대 분위기를 짐작하게 했다.

 

조선인들의 눈물과 고통으로 부설한 철도... 철도는 조선인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조선인들의 땅을 빼앗고, 강제로 공사장에 동원해서 만든 철도로 사람들은 창경원에 벚꽃을 보러 갔고, 일본 유학길에 오르며, 그 철도로 해운대로 휴가로 떠나는 등 조선인들은 새로운 문명을 만끽했다. 그리고 철도때문에 조선인들은 시간관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지지 않았으면 경의선이 그대로 있었을 것이고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되는 철의 실크로드를 꿈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철도는 공간과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을 하나로 연결해서 근대 사회를 만들어냈다.

 

일본순사가 제일 무서웠던 이유

여섯가지 키워드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근대 사법제도"였다. 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일본 순사’가 세상에서 제일 밉고 무서운 존재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이 파트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경찰이 사람을 아무이유 없이 잡아서 때리고 가둔다면 큰 일이 되지만 일제강점기 경찰은 사람을 잡아서 합법적으로 때리고, 가둘 수 있었다. 억울하고도 기가막히는 이 당시의 사법제도. 그리고 그 사법제도가 지금까지 뿌리깊이 박혀서 빼지도 못하고 지우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현실까지... 

 

일본은 더 착취하려야 착취할 수 없고 압박하려야 압박할 수 없는 시스템을 조선에 만들어놓았고 이 영향은 상당히 컸다. 물론 일본이 독일의 사법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여왔고, 독일의 사법제도는 사실 좋지만은 않았다. 당시 일본은 아시아에서 선진국이라고 자부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뒤떨어진 후진국으로 빨리 근대화를 해야했다. 때문에 검사와 경찰의 힘이 강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1930년대 군국주의 체제를 갖추면서 힘이 최고로 달했다. 독일도 사법 시스템을 만들때는 유럽에서는 후진국이었고 독일역시 급속도로 근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의 힘을 키워야했기 때문에 검사와 경찰의 힘을 강화했던 것이다. 때문에 일본은 더 검사와 경찰의 힘을 강화했고 조선에서는 훨씬 더 심각했다.

 

판사와 검사, 경찰 피고인으로 이뤄지는 삼각형 구도를 일제강점기에는 판사와 검사, 경찰이 한통속이 되어 삼각형 구도가 아니라 국가기관 대 피고인이라는 1대 1 구도가 되었다. 불과 10년전까지만해도 이와 유사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불식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죄를 지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해 수사해서 재판하면 유죄를 받을 확률은 99%였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확률은 97.5%다. 일제강점기 재판과 지금의 재판에서 가장 큰 공통점은 서류에 의한 재판이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면서 일본인들에게 받던 차별은 없어졌지만 한국인들의 인권 수준이나 권리는 사실상 일제강점기 때와 그렇게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일본의 사법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해방이후에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그대로 약자,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고 조선인 변호사들만 다시 통치기구로 들어가 기득권을 지킨 것이니... 이땅에 새로운 사법제도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지 1세기가 지났지만 당시의 모순과 불합리함이 여전히 해결해야하는 과제로 남아있는 지금. 후대의 사람들은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지켜볼 지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제2, 제3의 간송이 나타나길 바랄 뿐...

어마어마한 감동을 불러왔던 간송 전형필의 이야기. 일제강점기에 전 재산, 지금 시세로 따지면 6천억원에 해당하는 재산을 바쳐 우리 문화재를 수집했던 간송. 지금은 예술품 수집을 개인의 안목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재테크의 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부자도 많고 그런 부자들이 운영하는 미술관도 많이 있는 이 현실 덕분에 간송의 이야기는 더 감동을 전해왔다. 

 

우리나라에 있지 못하고 해외에 머물고 있는 우리 문화재들의 현황을 통해, 한 사람의 관심과 열정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간송은 언제 독립이 될지 모르는 일제 강점기 당시 문화재는 우리의 얼과 혼이 담긴 민족의 자존심이라면서 소중한 재산을 바쳐서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았고 이미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 중에서도 꼭 우리나라에 남아야 할 문화재는 찾아왔다. 아직도 이국땅을 떠돌면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문화재들... 이 문화재들이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까?

조상들의 얼과 삶이 살아숨쉬는 문화재,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줘야할 유산이기도 하다. 빼앗긴 유물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감상적일 수도 감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문화재는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가장 빛이 날텐데...

제2, 제3의 간송 전형필이 나타나길 정말 간절히 원할 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인 ‘덕상 세창양행’의 광고.

이 광고를 보면 당시 독일을 비롯한 서구에서 우리나라를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일본이 아니더라도 근대화의 물결은 우리나라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도 역시 일본이 부설하였으나, 조선인들도 철도의 필요성을 이미 크게 느끼고 있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고, 역사는 미래를 향해 흘러간다.

가슴이 저릿저릿 아파오는 이윤...

아마도 슬픈 역사 속 조선인들의 모습에서 서글픈 우리의 현실까지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아찔한 경성

저자
한성환 (엮음) 지음
출판사
꿈결 | 2012-05-1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여섯 가지 풍경으로 살펴 본 우리 근대 역사의 순간들!여섯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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