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인천

녹음에 푸르렀던 화도진지, 그 여름날의 추억

꼬양 2011. 11. 17. 06:30

 [인천여행]

FTA때문에 요즘 많이 문제죠.

문득 강화도 조약이 떠오릅니다.

당시 강화도 조약으로 인해 많은 시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 하나가 화도진지입니다.

강화도 조약이후에 무리하게 개항하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당시 고종이 1878년

어영대장 신정희를 파견하여 진과 포대를 설치하여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화도진지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여름날 찾아갔던 화도진 공원, 그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본 포스팅은 FTA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 화도진공원 입구

 

 화도진 공원의 폭포

 

 돌인줄 알았는데? 어머, 스피커였구나!

 

 음수대

 

시민들의 휴식처, 디자인 센스까지 돋보이는 화도진공원

아파트단지 사이 푸른숲이 보이는 공원. 이 화도진공원은 시민들에게 아주 친숙한 공원입니다. 여름이면 나무 그늘 밑에는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삼삼오오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 엄마와 아이가 함께 산책을 하는 산책로, 또는 연인들이 팔짱끼고 걷는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공원은 공원의 기능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입니다. 마치 자연의 한 부분이 되고 싶은 돌 모양의 스피커와 버섯까지. 곳곳에 숨겨진 스피커를 찾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때문에 돌에 앉으려다가 스피커에 앉게 되는 현상도 벌어지게 되죠. 쉴 때, 의자에 앉도록 쉬세요^^ 

 

이국적인 시계

 

 석지

 

10세기 후반 화도진영에서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석지가 보입니다.

전통 건축의 정원이나 건물 사이에 배치해서 물에서 자라는 식물을 기르거나

맑은 물을 담아 투영미를 감상하는데 사용하거든요.

화도진영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석지도 화도진 공원 한 켠에 자리해서

오며가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 효도권장비

 

 

부채를 들고 나무그늘 밑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어르신들.

녹음이 넘치는 공원이지만,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은 아이러니하게 가을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경청하다.

 

 

 

어려운 역사이야기도 해설사의 설명이 있다면 이해가 쏙쏙~

오후시간, 화도진공원에는 시민들이 산책 겸 찾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제가 찾은 시간이기도 하죠. 무더운 여름날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는 진지에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리고 해설사의 설명이 시작됩니다. 국사시간에 배웠던 그 기억을 더듬더듬 찾아가면서 경청합니다. 때는 1876년 강화도조약까지 거슬러가고 병인양요, 신미양요까지, 우리나라를 탐했던 일본, 프랑스, 미국의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화도진은 고종 15년 1878년 당시에 건설을 시작해서 이듬해인 1879년에 완성되었습니다. 화도진이란 이름은 고종이 지어줬고, 서해안의 방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 화도진이 주목받는 일이 또 하나 발생합니다.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이곳 화도진에서 체결되거든요. 고종의 전권대신 신헌과 미국의 전권대사 슈베트 사이에 체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 우리는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이권을 미국에서 넘겨줘야했죠.  

 

이후 친위전영, 좌영으로 이속되다가 갑오개혁으로 군제가 개편됨으로 인해 화도진은 불타 없어지고 그 후 주택이 이 자리를 대신했다고 하는데요.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비를 세우고 6년 후인 1988년에 복원이 됩니다.

 

 

 

 

 

 

 

복원된 화도진을 통해 옛모습을 상상해본다

동헌과 사랑채, 안채(내사) 등이 복원이 되었는데요. 특히 동헌에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어려운 국사공부를 이곳에서는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죠. 내사라 불리는 안채에는 보료와 반짇고리, 병풍과 머릿장, 버선장, 삼층장, 반닫이 등 각종 생활유물들이 진열해 놨습니다. 그리고 대청마루에는 찬장과 뒤주, 탁자들을 두어 당시의 생활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참, 사랑채는 병영 건물로 꾸며져 있구요, 역사가 서린 장소가 전시관도 마련돼 있습니다. 전시관에는 옛 군인들의 모자와 갑옷, 화포 등 600여 점의 유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동헌의 모습

 

 

 

 안채 모습

 

 

 

 

 

 

 

 

 

 

화도진공원의 또다른 명소, 야외전시장

동헌과 사랑채, 내사 등을 살펴보고 나가면 산책로를 만납니다. 다정스레 걷는 연인들을 볼 수 있고, 운동을 나온 시민들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화포들도 함께 만날 수 있죠.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화포들을 공원에서 본다는 게 독특하고 새롭습니다. 전시된 포들은 홍이포, 중포, 소포랍니다. 과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었던 무기가 이런 것이라니... 국사속에서, 역사 기록속에서 봐 왔던 그림 한장면이 머리속을 스쳐갑니다.

 

 

 화도진 복원기념비

 

 

 

 화도진의 쌍우물 중 하나

 

 

 

쌍우물과 빨래터, 그 곳의 의미는?

화도진 공원에서 50m정도 걷다보면 우물을 만나게 됩니다. 1800년당시 이 화도진에 주둔하던 병사와 인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곳으로 원래 두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1960년대 초에 한 개의 우물이 메워지고 1개의 우물만이 남아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10월이면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쌍우물제를 열어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기도 합니다. 비록 두 개의 우물 중 하나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지만 마을을 생각하는 주민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쌍우물을 배경으로 화도진에 배속됐던 군졸 "동이"와 동이를 사랑한 "정이"의 사랑이야기는 벽화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화도진이 있는 동구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동이'를 캐릭터로 형상화해 동구의 상징물로 사용하고 있구요.
  

 

 

동이와 정이의 사랑이야기는 벽화속에서 만나세요~

 

1800년 당시 화도진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화도진 공원에서 만나는 역사속 일은 그 중 몇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해안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곳이기도 했고,

아무런 준비없이 멋모르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던 슬픈 장소이기도 하며

동이와 정이의 사랑이 담긴 곳이기도 했습니다.

 

200년이 지나 복원된 화도진은 비록 현대적인 모습이지만

그 속에 녹아든 사연과 역사는 우리가 기억해야하지 않을까요.

 

 

 

* 본 포스트는 인천관광공사로부터 컨텐츠 제작지원을 받습니다.

 

많은 사진과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추천한방 센스도 부탁드립니다~

상콤한 하루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