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탐구생활/나 이거 읽었어-독서

원한과 설움이 맺힌 눈의 공포와 저주, 다잉아이

꼬양 2011. 2. 9. 07:30

[책 리뷰] 눈은 마음의 거울. 사람을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은 눈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눈은 어떨까? 강렬한 삶의 의지를 가진 자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어갈 때, 그 때 원한과 설움, 한이 맺힌 눈… 그런 눈을 본 적이 없으나, 본다면 그 충격은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보다도 차가 우선인 요즘,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내가 아는 대학원 선배만 해도 서른 살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이 세상을 하직했다. 새벽에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보행신호가 켜지자 길을 건넜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들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할 시간에 혼자 정직하게 녹색불, 횡단보도로 길을 건넜지만 과속으로 달리던 택시가 선배를 보지 못했고 결국에는… 어쨌든 선배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피지 못한 꽃이라는 말을 그런 때 써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이 책은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강렬한 생의 의지를 가진 여자가 교통사고가 나면서 죽고, 그리고 이후 그 운전자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해주면서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간다.

 

줄거리
바텐더로 일하는 아메무라 신스케는 어느 날 퇴근길에 누군가에게 둔기로 머리를 맞고 정신을 잃는다. 다행히 지나가는 행인에게 빨리 발견되어 목숨을 건진 그는 병원으로 찾아온 형사들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는데, 자신이 과거에 교통사고를 내 한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스케는 사고 당시의 정황에 관한 기억을 떠올릴 수가 없다.
며칠 후 그를 습격한 범인이 밝혀지지만 그 범인은 시체로 발견된다.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 채 기억까지 잃어버려 답답해하던 신스케는 교통사고 당시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찾아다니는데, 그러는 가운데 점차 그들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며칠 후 그와 동거하던 나루미마저 실종되고 만다.
사고 후 한동안 일을 쉬던 신스케는 다시 자신이 일하던 칵테일 바 ‘양하’에 출근하는데, 출근 첫날밤 12시 가까운 시각에 묘한 분위기의 여자 손님이 혼자서 바를 찾는다. ‘양하’의 마담 치즈코는 그녀의 분위기에서 오싹함을 느끼지만 신스케는 첫눈에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이때까지 많은 추리소설을 읽었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많이 읽기도 했다. 치매노인과 핵가족과 제멋대로인 아이에 주목한 “붉은 손가락”, 살인자의 악의 평범함에 눈길을 준 “악의” 등.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대부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소설은 독자와 심리게임을 해보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그의 소설의 특징은 전반부에는 사건의 내용을 풀어나가고, 중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틀어지고, 변화된 사건을 찾아가면서 곳곳에서 이야기가 뒤집어지는 편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로 후반부에 들면서 다시금 교통사고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 사건에 숨겨진 인간의 악, 죄책감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연의 원리를 비롯해서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듯, 미스터리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원인과 결과가 있기는 마련이다. 이것을 추론해나가는 것은 작가와 독자인데, 독자를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지가 가장 큰 관건일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추론하는 작가답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건 말도 안돼”라고 외칠법한 비현실적인 상황을 최대한 납득 할 수 있게 풀어간다. 이러한 모습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이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죽음과 삶,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이 말조심을 하고 살았던가. 무심코 내 뱉는 말에도 큰 에너지가 있듯이, 인간의 시선에도 큰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물며 동물의 시선은 어떠랴. 문득 최근 구제역 때문에 죄 없이 죽어갔던 소들의 슬픈 눈망울과 그 소들을 바라보며 오열하던 축산업자들의 눈빛까지 떠올렸다.
잊고 싶은 기억을 잊지도 못하고, 그 당시로 되돌아가 없애고 싶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못이 박힌 채로 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을 보며, 내 마음 속의 죄책감과 도덕의식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멀리 있을 것만 같은 죽음은 내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강렬할 것만 같은 슬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희석돼 옅어진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사고와 죽음을 통해 다시금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죽음이란 것이 누구 특정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많은 사고가 일어나고,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생명을 잃는 사건들도 발생하기도 한다. 그저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시시각각으로 세상은 죽음과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 한동안 일에 빠져서 잊고 살던 삶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책을 읽은 후 많이 떠올랐다.
 

 

선보다는 악이 강조되는 현 세태에서 악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이 없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서도 악의 곁에 있으면 악에 대해 둔감해지고, 당하고 그러다 보면 따라가는 경향도 있다. 양심과 도덕, 그리고 현실. 막상 그 상황에 닥쳤을 때,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도덕에 따라 움직일 이가 몇 명이 있을까.
책 속에서 도망치고, 외면하고, 회피하려는 마음을 지닌 이의 최후는 작가의 생각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의 소설 중에서 가장 강렬한 엔딩이지 않았나 싶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죠? 그러니까, 불쾌한 기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이 말입니다."
  "어떻게 하고 말고가 있겠습니까. 빨리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죠. 그 뿐입니다."
  

"다잉아이" 책 속에서 인용

 

 

 


다잉 아이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재인 | 2010-07-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잊지마, 당신이 나를 죽였다는 사실을.제134회 나오키상 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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