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탐구생활/2010,11 전주세계소리축제

당신 마음에 꽃비를 내려줄 공연 하나 - "천년의 사랑여행"

꼬양 2010. 10. 2. 11:22

나에게 누가 물어줬으면 좋겠다.

 

"오늘의 날씨는 어떤가요?"

아니, 하늘의 날씨 말고 마음의 날씨 말이다. 왜 오늘 날씨는 물으면서 마음의 날씨는 묻지 않는지, 다들 마음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서 그런거 보다. 어쨌든, 현대인들의 마음의 날씨는 대부분 낙뢰, 아니면 비, 흐림?

 

누군가를 생각하면 마음의 날씨가 쨍쨍 맑음, 더불어 시원한 바람도 불고, 마음의 언덕은 초록으로 물든다.

자다가도 웃음이 나고, 누가 허락치도 않았는데 마음의 절반은 아니 마음 전체가 온통 그 누군가로 가득 채워질 때가 있다. 사랑. 이 사랑이란 단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만약 사랑이 우리 사람들 마음에 없었다면 세상은 아름답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세상이 변해서 그럴까? 아니면 사람이 변해서 그런 것일까? 요즘 사랑은 단순하기도 하며 일회성에 치부되기도 한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미칠듯이 증오하고 미워하며 죽이기까지 한다. 이런 우리들에게 시간을 초월하여 세대를 이어가는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작품을 전주에서 만났다.

 

이름하여 "천년의 사랑여행",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 공연 시작 전 티켓 예매 모습

 

공연은 총 서장과 종장을 비롯해서 11장으로 이뤄졌다. 당산여신(안숙선 명창)과 도깨비들 (홍깨비, 청깨비, 황깨비)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그 중심에서 백제의 옛 가요 속에 살아 숨쉬는 애특하고 간절한 사랑이야기가 섬세한 감성터치와 독특한 음악 구성, 시원한 판소리, 웅장한합창에 담겨 아름답고 장대하게 펼쳐진다. 더불어 중국, 인도, 캄보디아의 신비로운 전통 춤과 음악을 통해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존재했던 "사랑"의 다양한 형태들이 여러 움직임을 통해 보여진다.

 

 

 

 

▲ 서장 (당산여신과 도깨비들이 여정을 떠나기 전의 장면)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세대와 시대를 초월하여 이어져 내려온 사랑을 말해줄 수 있는 전달자로 당산여신을 그리고 극을 이끌어가는 축에는 도깨비들을 해설자로 삼았다. 또한 합창과 독창, 무용, 영상이 어우러진 종합음악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당산여신 역의 안숙선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이다. 영원한 춘향이라 칭송받기도 하며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이래 매년 다양한 창극과 판소리 무대로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기도 하다.

 

천년 전 사랑여행을 떠나기전에 안숙선 명창, 아니 당산여신은 도깨비들 아니 관객들에게 말한다. 옛날, 아니 퍽퍽한 이 시대가 오기전에는 사랑으로 넘쳐났다고. 가족사랑, 이웃사랑이 넘쳐나는 곳이었다고. 나 뿐만 아니라 남의 문화도 사랑하던 땅이었다고.

 

 ▲ 용왕제

 

그리고 너무나도 빠르게 천년 전으로 온다. 온 들녘에 꽃이 핀 것 마냥 산유화가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리고 처녀, 총각의 봄날처럼 아름다운 사랑이 펼쳐지는데...

 

 

 

 

사랑의 결실은 무엇보다도 결혼, 혼례라고 할 수 있다. 장엄한 합창에 맞춰 신성한혼례청이 이뤄지도록 쑥을 태워 정화하며 솟대를 세워 혼례를 하늘에 알린다.

태양의 빛이며 신성한 결혼. 태양의 빛이며 새 희망의 희망인 혼례.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다. 달이 비추는 밤에 님이 진(더러운) 곳을 밟을 까 걱정하는 여인의 마음을 담은 정읍사 노래가 펼쳐진다.

1장 산유화가에서 이름만 전해오는 백제의 산유화가를 이 개막공연에서는 멋지게 불러냈듯 마찬가지로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백제의 노래 정읍사를 공연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출항. 백제시대의 전라도는 이미 국제적인 문화와 문물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다. 극에서는 배를 타고 수 천, 수 만리 길을 따라 중국, 타이완, 인도까지 다다른다.

중국 절강성의 소주 곤곡단의 <모란정> 중 '유원'장면과 타이완 루카이 족 여성들의 베 짜는 노래 '와띠누띠누노', 백합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노래하는 '따뚜르 쓰나쓰나이',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 '와자라자라이'의 선율을 들려준다. 그리고 망망한 바다위의 배가 풍랑을 만난 후 다다른 뒤 만나는 캄보디아. 캄보디아 궁중무용단은 신과 왕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담은 전통음악과 춤의 공연을 보여준다.

이처럼 배를 타고서 도깨비들이 만난 여러 민족들은 시대를 초월하고, 나라, 민족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 타이완 루카이 족의 공연

 

그리고 귀향과 재회. 배를 타고 나간 남정네를 기다리는 여인들의 화려한 무용이 끝나고 마지막 종장으로 치다른다. 당산여신과 도깨비들과 소리꾼, 합창단, 해외출연자들이 차례로 나와 대합창을 한다.

당산나무에 꽃도 만발하고 세상을 꽃으로 가득 채우려는 듯 꽃비도 내린다.

현대인들의 마음은 삭막해지고 황폐해졌다. 이런 마음에 사랑의 회복이라는 씨앗을 심어줄 수 있는 공연이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 당신 마음의 날씨는 어떤가요? 사랑의 꽃비가 내리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