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이"를 떠올리며 읽다 - 최숙빈

평소엔 제대로 읽지도 않는 역사책이지만... 드라마의 힘은 참 대단하다. 사극은 역사책을 다시 들춰보게 하니 말이다.

요즘 방영 중인 사극 "동이" 속 주인공 최숙빈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숙종시대 여인천하를 평정한 그녀는 단지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립 구도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인물인 것일까? 영조의 어머니지만서도 그녀에 대한 기록은 역사속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만은 않다.

그래서 읽게 된 책, 최숙빈. 역사 속의 그녀를 추적해가다.

 

 

동이, 최숙빈 - 걸어서 하늘까지 간 사람

조선 21대 임금 영조의 어머니 최숙빈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부모를 잃은 고아로, 천한 노비 출신이라 한다. 하급 궁녀로 시작해 임금의 승은을 입고 정1품 빈의 지위에 올랐다는 점에서 조선 최고의 신데렐라임이 분명하다. 신데렐라는 맞긴 하나, 오히려 걸어서 하늘까지 간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하다. 그 엄격한 유교질서, 신분사회에서 엄청난 지위로의 상승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신분 상승의 주인공이고, 영조의 어머

니이기도 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도 작다. 조상이 해주 사람이며 최씨 성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동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최숙빈의 이름은 동이가 아니라는 사실!

당신은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책 속에서는 정읍과 담양지역에 전해오는 최숙빈 출생에 대한 설화와 궁녀의 계급, 선발, 생활모습과 하는 일, 숙종을 만나게 된 과정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특히 후궁이 되고 영조를 출산하는 과정을 비롯해서 복잡한 당쟁사, 인현왕후-장희빈-최숙빈의 대결, 장희빈 아들 경종에 이어 최숙빈의 아들이 영조가 되는 과정까지 최숙빈에 대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숙종시대 역사적 사건들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

위인전은 그 한 위인만 다룬다. 이를테면 이순신전에는 이순신만 나오듯.

그렇다면 문제.

"최숙빈" 이책에서는 최숙빈만 나올까?

 

정답 :  아니다.

 

제목과 다르게 최숙빈이라는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그녀의 삶만을 보여주지 않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저자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위인전이나 전기가 안고 있는 중대 결함 중 하나가 한 개인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다 보면 객관적인 역사적 상황이나 다른 인물들의 역할을 간과할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인공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혹은 업적을 객관적 시각에서 인식하기 보다는 오로지 주인공의 탁월한 능력의 결과로 인식할 가능성이 생기기에 저자는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주변인물들과 역사적 사건까지 풀어내는 것을 택했다.

때문에 이 책을 읽다보면 동이, 아니 최숙빈, 그녀를 알기보다는 숙종시대 역사적 사실 제대로 알아보기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인물을 볼 수 있기에 더 좋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 이 책은 소설책인가?

아니다. 드라마 동이를 떠올리며, 책 제목만 봐서는 소설책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소설은 결코 아니다. 소설임을 생각하고 이 책을 덥썩 읽는다면 난감할지도 모르겠다. 소설이 아니라 역사책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역사의 조명이 비껴간 한 여인의 일생을 간접 사료와 당대의 사건, 동시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재구성한 역사책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최숙빈이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이에서 어부지리로 숙빈이 된 것만은 아니었던 사실을 책은 말해주고 있다. 최숙빈은 서인과 남인 세력이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쟁패를 벌인 붕당의 시대, 색깔없는 사람, 현재로 말하자면 무소속(?). 그리고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한 치의 양보 없이 싸우던 숙종조 여인천하의 향배를 가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었음을 차근차근 말해주고 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깨방정 숙종과 동이 한효주 얼굴이 문득문득 떠올라서 피식피식 웃음도 나긴 했다. 이 책이 만약 소설이었다면 드라마 동이와 너무 비교가 되어서 어쩌면 어느 것이 진실인지 헷갈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 책이 역사탐험서(?)라 더 좋았다. 최숙빈이라는 여인을 역사적 기록, 사건들 속에서 찾아가며 퍼즐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역사적 맥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 책은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최숙빈에 대해 자세히 알고 드라마를 본다면 드라마는 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