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의 남동쪽에 위치한, 서쪽 가까이로는 무위사가 자리잡고 있는 월남리.
이곳에 오롯이 절터를 지키는 외로운 탑이 하나 있습니다.
보물 제298호 월남사지 3층석탑입니다.
규모가 상당히 크죠? 사람이 한없이 작아보이는....
뒤에는 월출산이 보입니다. 그리고 작은 월남사가 보이네요.
월남사의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시대에 진각국사(1178~1234)가 세운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경내 삼층석탑의 규모나 양식으로 보면 그 이전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측합니다.
안타까운 건 폐사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는단 거죠.
하지만 이 일대의 절이 정유재란 당시 병화로 소실되고 ‘무위사’만 남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뿐입니다.
월남리의 돌담길을 약간만 걸어가면 월남사지 3층석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와에 낀 이끼가 세월을 말해주는 걸까요...
표지판도 빛이 바래있습니다. 아... 관리 좀 해주세요. ㅠㅠ
가뜩이나 외로운 탑 보러가는 길인데 더더욱 외로워집니다.
△월남사 터 3층석탑.
좀 독특한 양식이죠?
단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인데요.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모양의 돌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 윗돌을 얹어 조성했습니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고,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탑과 함께 월남사 터를 지키는 멍멍이.
약간 꼬질꼬질해보였으나..
그래도 이뻐해줄게 누나가...ㅎㅎㅎㅎ
물지만 마... -_-;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했구요, 밑의 받침은 3단을 둔 게 보이시죠?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고,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습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입니다.
탑의 머리 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있구요.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해서 그런걸까요? 아니면 다른 비밀이 숨겨져있는걸까요?
월남사 터 3층석탑은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함을 말해줍니다.
백제의 대표 탑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전 정림사지 5층석탑요~ 근데 그건 국보인데요... 이 탑은 보물이고...;;
그리고 나이 차이가 600년이나 납니다. 월남사터 3층석탑이 600년 어린셈이지요.
그리고 하나 더!
예전에는 이 탑을 월남사지모전석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전탑의 외모를 지녔다고 하여...
하지만! 결구 수법을 보면 전탑이라 볼 수 없었기에 월남사지 3층석탑으로 명명했습니다.
이게 2002년 3월의 일입니다^^
고려시대의 월남사는 웅장했다고 합니다.
절이 어찌나 컸던지 밤이 되면 사찰 문을 닫기 위해 스님들이 말을 타고 다녀야 했다고 할 정도로요.
월출산 일대에 한 때 10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하는 사찰과 암자의 총본산이었다고 하구요.
경주 불국사 다음으로 큰 절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때문에 쇠락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월남사 스님 30명을 가마솥에 삶아 죽였다는 말도 전해옵니다.
(으으... 소름이 쫘악...어떻게 사람을 삶지? -_-;)
능소화가 예쁘게 피었습니다.
이 능소화가 핀 곳은?
바로 월남사의 담벼락입니다.
담 너머 작은 사찰이 보입니다.
월남사안을 소심하게 찍어 봅니다.
안에 들어가서 찍어도 될텐데 괜히 눈치보고, 엄한 다른 분을 찍고 있습니다.
2001년경에 종명스님이 민가를 사들여 이 월남사를 지키고 있다고 하네요~
월남사 터에 와서 3층 석탑만 보고 가면 섭합니다. 또하나 볼 게 남아있어요~ㅎㅎㅎ
버스 정류장으로 왜 가냐구요? 이쪽이 목적이 아닙니다.
두둥! 월남사지 진각국사비(月南寺址 眞覺國師碑)입니다.
근데 비석에... 왜 글이 하나도 없냐구요?
세월을 머금었기때문이죠. 세월에 마모가 되어서 그렇습니다.
이 비는 월남사를 창건한 인물로 전해지는 진각국사 혜심을 기리는 겁니다~
비문은 누가 지었을까요?
고려시대 소문난 문장가였던 이규보가 지었습니다. 뒷면에는 제자 118명의 이름이 있지요.ㅎㅎㅎ
그리고 여기에는 고려 말기 4대에 걸친 무인정권 시대를 열었던 최씨 일가의 3대 최고실력자 최항의 이름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지만 ...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어요..,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었죠? 제대로 볼래야 볼 수가 없네요. ㅠㅠ
혜심이 누군지는 아시죠?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죠~
지눌을 이어 조계산의 수선사 2대 사주를 지낸 인물로, 인기가 많은 스님이었습니다.ㅎㅎㅎ
정말 엄청난 인기로 인해 수행자들이 너무 몰려서 절을 여러번 넓혔다고 하네요.
그리고 최충헌의 아들 최우는 최고실력자가 된 뒤 소문을 듣고 혜심을 초청했지만 혜심이 정중히 거절하자
두 아들을 제자로 넣었어요. 그래서 최항이 비문에 들어가게 되는거죠.ㅎㅎㅎ
이 최항이 팔만대장경을 완성하는데 기여도 하구요... (갑자기 국사시간이 되어버렸군요... 아하핫;;;)
터만 남은 절을 지키는 외로운 탑을 두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처음에 나를 반겼던 담벼락이 이젠 잘가라고 인사를 하네요.
수백년 동안 혼자였던, 절터만 지키던 외로운 탑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아프지만...
탑 뒤엔 달이 떠오르는 월출산이 있고,
그리고 그 앞의 작은 월남사엔 스님도 있고.
꼬질꼬질하지만 나름 빛나는 눈을 가졌던 멍멍이가 탑 주변을 맴돌고 있기에...
석탑은 그리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해봅니다.
'여행 탐구생활 > 전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도대교의 낮과 밤. (0) | 2009.09.20 |
---|---|
바다가 운다는 곳 명량, 거북배를 타고 그곳을 체험하다. (0) | 2009.09.14 |
청산도에서 만난 고운 몽돌 해변-진산해수욕장 (0) | 2009.09.01 |
달뜨는 산, 월출산자락에 가득한 초록빛 차밭-강진다원 (0) | 2009.08.19 |
눈이 부시게 푸른섬, 청산도. 돌담 길을 걷다 (0) | 2009.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