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30대 나이에 무명 연기자로 살아간다는 것. 아주 힘든 일이다. 연기에 대한 열정, 사랑, 의지 하나만으로 버티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영화배우 고 김석균의 자살소식은 그것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연기자. 전문적으로 연기를 하는 사람.
배우, 희곡에 나오는 인물의 역을 맡아 무대에서 표정 ·몸짓 등의 동작과 대사로 극적 행위를 해 보이는 사람.
연기자, 배우의 사전적 정의다. 서양에서는 배우라는 직업이 노예적 지위였거나 혹은 유랑의 예인이었다. 그러므로 사회적 지위가 낮았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게 된 것은 19세기 말 이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배우는 천인출신으로 광대라고 하였다. 배우라는 이름이 굳어진 것은 한말 원각사가 창설되면서부터이다.
이렇게 천대받던 배우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배우가 되는 건 아주 힘들다. 작게는 수십대 일, 크게는 몇 천대, 혹은 몇 만대 일의 경쟁율을 뚫어야 배우가 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속에서 배우의 꿈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배우 지망생을 만났다. 꿈많은 10대도 아니며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20대도 아닌, 30대 나이에. 연기에 대한 꿈을 10년 넘게 이어온, 연기에 대한 집념을 보이는 최리호씨의 얘기를 듣다.
배우라고 해야할까요, 아님 연기자라고 해야할까요?
그냥 배우지망생으로 불러달라. 아직 이렇다할 작품을 한 것도 아니고, 신인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아직까지는 연기를 배우는 단계이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다.
연기자,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경남 진주가 고향인데 고등학생 때 꿈은 가수였다. 댄싱팀을 결성, 나름대로 경남 진주에서는 유명세를 탔었다. 어느날 극장에서 본 최민수 주연의 "테러리스트" 영화는 나에게 연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 호기심이었던 연기가 나중에는 열정,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더라... 13년 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돌아가지 않기 위해 일부러 편도편 차비만 들고 상경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던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있나요?
보조출연이란 걸 알게 돼서 처음 출연한 드라마가 "용의 눈물"이었다. 새벽 5시반까지 KBS 별관 집합이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 출연한 것이라서 그런걸까? 촬영 당일 아끼는 흰색 운동화를 신고 흰색 티셔츠와 진한 청바지를 입고 택시를 타고 여의도에 갔다. 그때 택시 기사에게 들었던 말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여의도로 가달란 나의 말에 배우냐고 묻더니. 나에게 "열심히 하면 크게 될 것 같아요. 열심히 하세요" 그 말이 정말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KBS 별관앞에서 한시간 정도 기다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한시간을 이동해서 도착한 곳이 한국민속촌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백마 탄 유동근 뒤에서 깃발들고 가던 기억이... 출연료는 5만원이었다.
그리고 경험삼아 재연드라마에도 출연했었고, 각종 CF와 영화에 참여를 했었다. 영화속 단역이었지만 배우 스크롤 올라갈 때 내 이름이 석 자가 보일 때 그 느낌이란 이루 말할수가 없다.
막연히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살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렇다. 연기를 하고자 하지만 돈이 가장 큰 문제다. 연기에만 몰두하려니 돈이 문제더라. 돈이 없어서 직업소개소도 가봤다. 허름한 2층 직업소개를 정말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돈 때문에 정말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 해봤다. 모텔에서 청소 아르바이트, 주차관리 아르바이트, 전자상가에서 호객행위 등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그 모은 돈으로 방송아카데미 연기쪽을 등록해서 다녔다. 또한 틈틈이 오디션을 보고 나중에는 직접 기획사를 찾아다녔다. 내 사진과 프로필을 들고 말이다. 하지만 연락 오는 곳은 정말 별볼일 없는 곳, 이름 없는 곳 의심스러운 곳들이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중간에 사기도 당했었다.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자신을 어느 기획사 관계자라고 소개하고 나에게 명함을 주었다. 그리고 나를 키워주겠다고 하면서 트레이닝 명목으로 돈 300만원을 요구했다. 바보같게도 나는 그말을 곧이 듣고 카드 일시불로 300만원을 결제했다. 1주일 후 그 사무실을 찾아가보니 사무실은 없더라. 그때 정말 망연자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의 꿈이 어떤 사람에게 이용당한 것 같아 정말 서글프기도 했다. 알고보니 그런 사기꾼에게 당한 사람이 나뿐만 아니었다.
배우의 주 수입원은?
극단에 들어가서 연기연습도 참 많이 했는데. 연습을 죽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오르지도 못하고 묻혀버리고... 다시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알다사피 배우의 수입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학력, 이른바 연기로 유명한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연기자를 지망하는 입시생을 가르치면서 수입이 좀 있지만 나처럼 학벌도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가끔 들어오는 CF 서브도 수입이 되긴 한다. 영화 출연은 약간 힘들다. 직접 제작사에 프로필을 찾아가거나 매니저를 둬야 출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불규칙하다. 돈이 부족하여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하지만 연기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서 다시 일을 그만두고... 이런 일이 지금까지 반복되었다. 심지어는 실업급여를 받은 적도 있다. 금전적인 문제는 연기를 할 때 참으로 많은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 같다.
오디션은 자주 보나요?
오늘도 오디션을 보고 왔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듣는 얘기는 이거다. "이미지는 좋다." 하지만 나는 이미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연기가 좋다라는 말이 듣고 싶다. 이미지가 연기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연기는 이미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속 배우의 길을 갈건가요?
당연하다. 오디션도 계속 볼 것이고 연기연습 또한 계속 할 것이다. 연기에 대한 열정, 사랑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왔다. 비록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나에게 맡겨지는 것이 아주 작은 역이라도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나는 배우의 길을 갈 것이다. 주변에서는 그 나이 먹도록 뭐하는 짓이냐고 말하지만 내 의지는 변함없다.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나에게는 연기에 대한 꿈이 있다.
최리호 씨의 동의를 얻어 글을 썼고, 그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연기에 대한 열정, 꿈만으로 살기 힘든게 현실이지만 꿋꿋하게 꿈을 위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그에게서 더 많은 얘기를 들었으나 이 정도로만 올립니다.
영화배우 고 김석균님의 사망소식을 접하자 잠시 멈칫했습니다. 그 소식이 혹시라도 연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입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빕니다.
그리고 꿈이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 이유, 존재의 이유가 되는 것이니까요. 힘든 현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도 연기를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는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돕니다. 브라운관, 스크린에서 당신을 보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이제는 '배우 지망생'이 아닌 '배우' 최리호씨를 만나게 되네요. ^^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는 최리호씨, 응원합니다~
'일상 탐구생활 > 일상속에서 이런 일도, 생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가기록원 넷띠가 되다! (0) | 2009.04.22 |
---|---|
소근소근 재잘재잘, 난 블로그와 수다떠는 중. (0) | 2009.04.06 |
몹쓸 감기 (0) | 2008.12.09 |
카페라떼 한잔과 함께... (0) | 2008.12.07 |
변화 중? (0) | 2008.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