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동부산업도로 버스를 타고, 97번 국도를 따라, 아니 동부산업도로라는 말이 더 익숙하겠지. 동부산업도로를 따라 도착한 성읍. 성읍은 민속마을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성읍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내가 갈 곳은 서쪽으로 몇 킬로를 더 가야 다다를 수 있는 곳. 마치 고려가요의 가시리를 연상케 하는 곳. 가시리다.
가시리는 요즘 많이 유명해졌다. 조용한 중산간 마을이 국책사업 3개를 따내면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지만, 그보다도 이 가시리에 더 정감이 가는 이유는 아마 이 갤러리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남제주군 표선면 가시리 1920번지.
옛 가시초등학교의 주소다. 현재 이곳은 가시초등학교가 아닌 자연사랑갤러리 명패가 달려있다.
가시초등학교. 4.3사건으로 인해 폐교되었다가 다시 개교를 했으나 2001년 다시 문을 닫게 된 비운의 학교다. 하지만 이 학교는 이제 그렇게 슬프지는 않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이곳은 다시 빛을 찾고 있다.
자연사랑이라는 말처럼 이곳은 제주의 자연으로 가득하다. 제주의 사계가 담긴 사진을 볼 수 있는 이곳은 갤러리 25년간 신문사 사진 기자로 재직한 서재철씨가 버려진 초등학교를 멋진 사진 전시관으로 꾸몄다.
전시장은 90평 규모의 바람자리 전시관과 60평 크기의 따라비 전시관으로 나뉘어 있다.
전시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제주의 풍광에 빠져본다. 20년 넘게 제주도를 살았지만서도 사진속의 멋진 풍경은 다 보질 못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비경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기다렸을까?
제주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돌담.
바람자리는 제주의 사계 풍광을 담은 사진들이 상설 전시 중이다. 따라비는 오름 해녀 옛포구 등 제주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와 자연의 역사를 테마로 담은 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기증받은 카메라들도 전시되고 있었다. 미놀타, 펜탁스... 손때가 묻은 카메라들이 교실 가운데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연사랑 갤러리에서는 옛 가시초등학교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이 복도에는 55년간 이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졸업사진이 걸려 있다. 그 추억의 사진 속에는 시대에 따라 건물에 새겨진 슬로건들도 눈길을 끈다.
‘사랑의 학교 믿음의 교육’, ‘상기하자 6·25 구출하자 북한동포’ ,‘늘 새롭고 즐거운 학교’ 등..
옛 가시초등학교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뒤뜰로 나가본다. 뒤뜰에도 소박한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새를 연상케하는 돌들이 전시돼 있고. 그냥 무심결에 보면 그냥 돌멩이지만, 찬찬히 보면.. 영락없는 새다. 돌이 참 신기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고.
언제적 책상일까? 초등학교 1학년까지만 해도 이런 나무 책상을 썼던 것 같은데... 책상을 보며 잠시 초등학교의 추억속에 오롯이 빠져있을 때, 관장님이 오셨다.
차 한잔 마시라며 손수 커피를 타 주셨다. 나른한 오후, 커피가 너무나도 마시고 싶던 때, 너무나도 맛있는 커피까지 얻어마시고. 온기가 남아있는 커피잔을 손에 쥐고 파릇파릇 초록으로 뒤덮힌 뒤뜰을 살펴보고 있었다.
관장님은 마침 제주시로 나갈 예정이었고, 가시리가 교통이 불편한 곳이다보니 어디까지 나가는지 물어보셨다. 물론 나는 제주시로 갈 예정이긴 했지만 버스를 타고 중산간 마을 한 군데 들릴 예정이라,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커피를 마시고 일어서자 눈에 들어온 수돗가. 학교였다는 걸 이 수돗가도 증명을 해주지만, 이 수돗가의 주인은 수석이 차지한지 오래인 것만 같았다.
자연사랑이란 나무 명패를 보며 갤러리를 걸어나와 본다.
소박하고 정감어린 갤러리. 버스로 찾아가는 길은 어려우나, 마음만은 훈훈했던 곳.
제주의 자연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곳 자연사랑 갤러리.
제주의 자연을 더더욱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소박한 갤러리까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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