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탐구생활/전라도

은빛모래, 푸른바다에 발걸음도 쉬엄쉬엄 - 우전해수욕장

꼬양 2010. 5. 12. 09:00

 빨리빨리가 대세인 요즘,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무색할만큼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게, 하루 역시 빠르게 지나간다. 바쁘지 않으면, 빠르지 않으면 질 것만 같은 요즘 세상에 잠깐 가쁜 숨을 내쉴 게 아니라 느긋하게 호흡을 해보길 권한다.

물론, 도시 빌딩 숲이 아닌 자연 속에서.

 

서울생활에 익숙해지다보니 어느새 내 발걸음은 빨라졌다. 하지만 그 빠른 발걸음도 이곳에서 만큼은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은빛 모래, 파란 바다의 매력에 빠졌는지 내 발걸음은 더디어졌다.

한 템포 쉬어가자는 바다의 손짓에 바람의 속삭임이 들렸던 곳.

바로 증도의 우전해수욕장이었다.

 

 

버스를 타고 얼마나 왔을까.. 두근두근 설렘을 안고  출발한 여행. 여행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아니, 바다는 나를 설레게 한다. 3월말에 완공된 증도대교를 지나 도착한 증도. 아담하니 소박한 섬은 그 자체로 느림이었다. 증도안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우전해수욕장.

우전해수욕장하면 먼저 슬로 시티보다도 여름철, 제일 먼저 개장하는 해수욕장이라는 생각이 앞섰었다.

올해에도 가장 먼저 개장할 것인가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직 물놀이를 할 철이 아니지만 바닷가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봄바다의 정취를 만끽하는 사람들로 바다는 시끌벅적. 이런 요란함조차 바다는 그대로 즐기는 듯 했다.

 

 

봄날의 해수욕장은 연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자체로 추억? 아니, 사랑이겠지.

 

 

물이 빠져나가고 들어오고를 반복.  모래 사이로 돌이 삐죽삐죽 보였다.

오히려 그 돌들이 해수욕장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물론, 여름철 이 돌들은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겠지만. 뾰족한 돌에 발을 찔려보지 않은 이들은 그 고통을 모르리라.

 

 

천천히 느긋하게 하얀 백사장을 걷고 있었다.

이때, 카메라를 들고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내 눈에 들어온 부자.

밀려오는 파도를 앞에 두고 나란히 서 있는 아버지와 아들. 신발이 젖든 말든 파도를 기다리는 두 부자의 다정스러운 모습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은색 백사장에는 바닷물이 밀려오고 들어오고를 반복.

철썩철썩 파도소리와 더불어 관광객들의 웃음소리도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총총총 백사장 걷기. 문득 떠오른 영화속 한 대사.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 영화에서 모래사장을 걷던 맹인 검객(?) 황처사는, 멈칫 거리며 뒤에 있는 백지를 의식하며 걷는 견자에게 말한다.

"뒤를 봐, 니 놈 발자국이 어지럽제? 그게 니 맘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어지러운 마음도 발자국과 함께 두고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에게도 바다는 사색의 공간인가 보다. 내 렌즈에 잡힌 어린이. 바다를 보며 걷는 모습이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다시금 백사장을 총총 걷다보니 그물을 걷고 있던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다.

허리만큼한 깊이에서 점점 뭍으로 그물을 걷으며 천천히 나오는 어르신의 모습 그 자체가 느림이었다.

큰 배로 밑바닥까지 훑어 고기를 싸그리 잡는 것과 달리, 아주 천천히 파도와 함께, 그물을 걷어내는 모습에서 정말 기다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내 발걸음은 백사장 끝에 다다랐고, 발길을 돌려 소나무로 가득한 숲으로 향했다.

 

 

 

요즘에는 많은 것들에게 이름을 붙이곤 한다. 심지어는 골목길 하나에도 이름을 붙이곤 하는데, 그래서 주소가 더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길에도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전해수욕장의 해송숲의 이름은 철학의 길. 말 그대로 사색하기 괜찮은 길이다.

 

 

푸르른 소나무들이 반겨주는, 길 양옆으로는 솔방울이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왼쪽으론 하얀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보이는 길.

나처럼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길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곳곳에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표지판도 있다. 자신이 어디를 가야할지 모른다면 이 이정표를 참고하길. 취향따라 선택할 수 있다. 나무가 좋다면 철학의 길로, 갯벌이 좋다면 짱뚱어 광장으로, 바다가 좋다면 해수욕장으로~

 

 

짭쪼롬한 바다 냄새에, 솔향기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덧 소나무 숲도 끝에 다다른다.

 

 

 

 

하지만 이게 또 끝은 아니다. 다시 또 시작되는 해송숲.

표지판에 써 있듯 이 숲은 우수상을 수상한 곳이다. 진정한 해송숲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2007년 12월 아시아 최초로 담양 창평, 완도 청산도, 장흥 등과 함께 슬로 시티에 선정된 증도.

환경과 자연을 보전하고 전통적 삶의 방식을 지키며 느리게 살자는 슬로 시티의 모토를 그대로 안고 있는 섬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 가쁜 숨을 잠재워 준 바다. 우전해수욕장.
아직도 귀에는 바다의 철썩거림이 들리고, 손에는 하얀 모래의 촉감이 남아있는 것만 같다.

 

바쁜 도시생활이 지겹다면 잠시 휴식을 위해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곳에서 만큼은 그 "빨리빨리"라는 말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