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이다. 물론 나는 그때 당시 기억이 흐릿하다. 어렸을 적 기억이기에 그냥 기억하는 거라곤 텔레비전에서 온통 박수소리, 환호소리가 들렸다는 것.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의 모습?
그리고, 책을 통해서는 1980년대를 거슬러 도쿄올림픽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아닌 1960년대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도쿄올림픽을 배경인 소설
세계대전이 끝난, 종전시대를 배경으로 소설은 펼쳐진다. 실재했던 1964년(쇼와 39년) 도쿄올림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패전 이후 다시 태어난 지 19년밖에 되지 않은 사춘기 소년으로 비유하자면 질풍노도 시기의 도쿄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도쿄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이유도 있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우리가 서울올림픽을 한마음 한뜻으로 치뤄냈듯이 도쿄올림픽 역시 야쿠자마저 알아서 도쿄를 떠날 만큼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방해하려는 자가 나타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몸값도 아니고, 올림픽을 개최하지 말라는 것도 아닌 ‘올림픽의 몸값’이다. 국가를 상대로, 올림픽을 완벽히 개최하고 싶으면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한다. 경찰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경찰은 쉬쉬하면서 철저히 극비리로 수사에 착수한다. 그리고 추적에 추적을 거듭한 끝에 경찰의 용의선상에 한 청년이 오른다. 영화배우, 가수를 닮은 귀공자 스타일의 외모에 학벌까지 완벽한,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인 엘리트. 졸업만 하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 하숙집 주인을 비롯해서 서점주인까지, 모든 사람들로부터의 평판이 칭찬 일색인 모범생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그는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걸까?
소설속에서 발견하는 작가의 꼼꼼함, 그리고 리얼리티
이야기는 방화로 인한 폭발사고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담무쌍하게 경시청에 협박장까지 보내는 방화범의 요구는 용감(?)하다못해 당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올림픽을 무사히 치르고 싶으면 몸값을 지불하지만, 경찰은 외부에는 가스폭발, 일반 화재라고 말을 하고 철저히 기밀로 하고 수사를 진행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고 방화는 계속되는데...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범인은 잡지 못한 채 점점 올림픽 개회식 날짜는 다가온다.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했던 것은 오쿠다 히데오가 쓴 첫 번째 서스펜스 소설이랄까. 그의 소설은 이때까지 캐릭터의 힘으로 진행된 게 보통이었다. 남쪽으로 튀어, 공중그네 등 캐릭터가 끌어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서스펜스 소설이다보니 플롯의 힘, 스토리의 힘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 점에서 오쿠다히데오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단순한 사건들만 열거된 것은 아니다. 교묘한 트릭, 반전 등을 곳곳에 장치시켜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준다. 또한, 작가가 얼마나 많이 이 시대에 연구를 했는지를 소설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마치 내가 1964년 도쿄에 온 것만 같은 느낌으로, 내가 일본인인것 같은 느낌으로 내용에 몰입하게 된다.
소설 속 3명의 중심인물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각 장마다 중심인물을 달리했다. 집안 배경, 환경과 처해 있는 상황, 성격, 직업까지 아주 다른 세 명의 중심인물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각자의 방식대로 사건에 가담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첫번째 인물, 시마자키 구니오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 아키타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출중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로 도쿄대에 입학하며 가족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엘리트 코스의 탄탄대로의 미래가 대기중.
두번째 인물 스가 다다시
중앙 텔레비전 방송국 예능국 PD. 부유한 집안에서 평생 부족한 것 없이 살아왔다. 경시감인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가족이 관직에 진출했기에, 집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 시마자키와 도쿄대 동기.
세번째 인물 오치아이 마사오
경시청 수사1과 5계의 형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올림픽 개최일에 태어날 둘째 아이를 위해 도쿄 근교의 아파트로 이사하며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희망에 부푼다.
이렇게 3명의 중심인물이 나오지만,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내가 봤을때는 시마자키 구니오보다는 스가 다다시인 것 같다. 읽으면 읽을 수록 뭔가 헛점이 보이는, 가장 인간답다고 할까나? 시마자키 구니오에게는 처음부터 흠뻑 빠져들지만, 스가 다다시의 경우에는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그런 매력을 가진 캐릭터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 소설은 이야기가 플롯 중심으로 힘차게 나아가지만, 그래도 재미삼아 읽기에는 묵직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책 곳곳에서는 마르크스를 인용하고, 자본주의의 양면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밝고 활기차며, 엄청난 번영을 이뤄가는 도쿄, 그리고 뒤쪽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시골이 있는데... 도쿄를 묘사한 부분에서 난 서울의 모습을 떠올렸다. 올림픽을 개최한 지 20년이 지났지만서도 아직도 달동네가 있고, 쪽방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기에.
도쿄 올림픽의 빛과 그림자를 그렸지만, 현대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그린 소설처럼 보이는 책, 바로 올림픽의 몸값이다.
오쿠다 히데오가 처음 도전한 서스펜스 소설을 재밌게 읽은 나지만,
난 다시금 그의 경쾌하고 유쾌한 소설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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